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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니"라는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임시정부는 민족운동단체이지, 정부가 아닙니다.“
–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사진)은 2016년 3월 14일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기획특별전 개막 기자 간담회에서 “(1919년) 임시정부가 설립될 때는 일제 강점기여서 선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시정부는 선거를 치르지 않아 정부가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육군 차관이었던 드골이 잔여 병력을 이끌고 영국으로 망명하여 ‘자유 프랑스’라는 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자유 프랑스는 선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아닙니까?

결국, 자유 프랑스와 레지스탕스의 노력으로 프랑스가 재건되듯, 임시정부와 수많은 독립운동을 통해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습니다. 이를 계승하는 제헌 헌법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이 천명되었습니다. 어떤 근거로 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니라는 건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원 기념 사진(1919년 10월 11일). 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김 관장은 오직 선거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청교도 혁명이나 명예혁명, 즉 영국에서 근대적 입헌 군주제가 만들어질 때 선거는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내각제 시스템이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후에도 영국은 오랫동안 다수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했습니다.

19세기 차티스트 운동1이 그토록 거셌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참정권 운동이 강력했음에도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대적 의미에서의 참정권이 부여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국의 내각제 전통은 모두 의미가 사라지는 것인지요?

루이 16세에 반대를 하며 테니스 코트장에 모여서 국민의회를 선언할 때 그들은 얼마만큼이나 적법한 과정의 선거를 거쳤던가요? 미국 독립 혁명 가운데 진행된 두 차례 대륙 회의는 도대체 어떤 선거의 과정을 거쳐서 확립된 대표 기구였던가요? 아니, 그 이전에 김 관장께서 말씀하시는 선거란 대체 어떤 선거를 말하는 것입니까?

박정희 전두환 정부는 불법입니까? 합법입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는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제헌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거”이며 “당시 유엔에서도 감시단을 파견해 선거를 주관하는 등 국제적인 수준에 맞게 치르려고 노력했다.” (김용직)

결국, 김 관장의 발언은 건국절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주장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선거’를 했으니까 ‘선거’가 정부 수립에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주장을 하는 겁니다. 결과를 정해놓고 논리를 만든 주장에 불과합니다.

김무성 이승만

반대로 물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김 관장이 주장한대로 ‘국제적인 수준에 맞게 치’른 선거가 있어야 합법적인 선거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1952년 발췌 개헌으로 치러진 2대 대통령 선거,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치러진 3대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신지요?

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본인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국회의원들을 강제로 구속, 협박하며 관제 데모대까지 끌어들이고 경찰력까지 동원한 상태에서 구두 수준으로 자행된 발췌 개헌한 (헌법을 위반한) 헌법을 통해 진행한 선거는 그 자체로 불법이고 무효가 아닌지요?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에 따라 부결된 것이 적법함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3선의 기회를 열어준 ‘사사오입 개헌’과 그 역사적 연장선에서 치른 3·15 부정 선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승만 (1956)

이승만 (1956)

삼선개헌과 유신헌법 그리고 장충체육관에 모인 선거인단에 의한 7년 단임제 헌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위헌적이고, 불법적이며 초법적인 ‘선거’ 절차를 거쳐 선출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정당성에 관해서는 어떤 판단이십니까?

선거를 기준으로 본다면 중앙정보부를 동원해서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 의원들조차 남산으로 끌고 가 폭력과 구타를 일삼으면서 강제로 진행되었던 삼선개헌, 어느 날 모든 정치활동을 강제로 중단시킨 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대통령에게 안겨주며 자유민주주의의 기초 원리까지 무시하며 밀어붙였던 유신, 그리고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상태에서 초법적으로 강제된 전두환의 장충체육관 선거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설마 ‘선거만 하면 정당한 정부’식 주장을 하는 건 아니겠죠?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직후, 헌병 조장(曹長, 원사에 해당) 시절의 박정희[40], 이때의 계급은 일본 헌병 조장, 보직은 수습사관이었다. 그해 8월에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위키미디어 사진 설명 중에서)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A0%95%ED%9D%AC#/media/File:Park_Japan.JPG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1944)한 직후, 헌병 조장(曹長, 원사에 해당) 시절의 박정희. 그해 8월에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위키미디어 사진 설명 중에서 발췌)

전두환. 80년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 무수한 폭압으로 정권 내내 무고한 피를 뿌린 전두환.

80년 광주를 군홧발로 짓밟고, 무수한 폭압으로 정권 내내 무고한 피를 뿌린 전두환.

김 관장의 기준대로 한다면 박물관의 배치와 구성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그냥 독립운동단체이듯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은 일본 제국주의와 꼭 같은 불법 강점 권력입니다. 독재를 위해 헌법을 왜곡했고, 비정상적인 형태로 부정선거를 자행했으니 말입니다.

친일 경찰 없었으면 정부가 돌아가지 않았다? 

김 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다수 경찰들은 묵묵히 일하는 분들이었으나, 일부 친일 경찰들이 포함된 것. 그렇게 된 건 미국 군정의 책임”이고, “식민지에서 해방된 어느 나라나 식민지 치하 간부들이 활동했다 . 그러지 않으면 정부가 돌아가지 않았다.“

역사 왜곡입니다. 당시 대다수 경찰은 친일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그에 부합하는 근거와 증거 자료를 내놓으십시오. 본인이 역사학자가 아니라 정치학자(김용직 관장은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편집자)라는 것을 두고 문제 삼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간 축적되어온 학계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는 주장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연구 결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반대 논거도 없이 이런 주장을 하신다면 허위사실유포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또한, 친일 문제를 미 군정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 역시 역사 왜곡입니다. 물론 친일 권력의 보존에 있어서 미 군정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부 수립 후 반민특위를 비롯하여 적극적인 친일파 청산을 도모했던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더불어 이런 노력에 대해 이승만 정권과 경찰이 격렬하게 반발한 것 역시 역사적 사실입니다.

1949년 반민특위 재판 공판 모습.

1949년 반민특위 재판 공판 모습.

이승만 정권기 친일파의 활동은 이미 충분히 입증된 내용이며, 반민특위 기간 내내 이승만 정권이 국회의원들을 압박했다든지, 친일 경찰 노덕술이 잡혀가자 중부경찰서, 종로경찰서 등이 불법적으로 병력을 동원하여 반민특위를 습격했다는 것 역시 역사적인 상식입니다. 경찰 측에서 테러리스트 백민태를 고용하여 반민특위 지도자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고, 강원도 지역 특경대원이 매수되어 반민특위 위원을 암살하려고 했던 시도 등등 온갖 이야기가 널려있지 않나요?

명색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입니다. 어떻게 친일파를 두둔하는 발언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나요.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치욕의 역사’를 오히려 정당화하는 김 관장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의도는 뻔해 보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오직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 아닌지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오 

당시 상황상 1919년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선거를 통해 구성되지 못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김 관장 말씀처럼 일제 강점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임시정부는 그렇게 쉽고 엉성하게 만든 정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헌장 2조 ‘임시정부는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해 통치’하며 10조에는 국토를 회복한 이후 1년 내에 ‘국회’를 소집한다고 규정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 명칭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죠.

임시의정원은 ‘임시의정원법’을 통해 운영되었습니다. 위원의 자격은 중등교육을 받은 만 23세 이상의 남녀, 의원 수는 인구 30만 명 당 1인, 임기는 2년으로 하였습니다. 국호가 ‘대한민국’이었던 이유는 ‘대한제국’을 계승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정부 운영을 위해 이토록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운영한 것입니다.

사실 수많은 독립운동단체가 뚜렷한 강령과 운영원칙을 가진 상태에서 운영되었고, 임시정부는 더 분명한 정부 조직체로서 구성을 갖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던 단체입니다. 어떻게 이런 노력과 수준에 대해 고작 ‘선거 실시’를 운운하며 모욕적인 언사를 할 수 있는지 저로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처참한’ 현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설립 초기부터 역사학계에 의해 강하게 비판받았습니다. 외국인 여행객들조차 박물관을 구경한 후 ‘일제 강점기와 독재 정권’을 미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술회할 정도입니다.

독일에서 12년간의 토론을 통해 유사한 취지의 박물관이 만들어진 것에 비해 우리는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3년 8개월 만에 만들었습니다(2012년 12월 26일에 개관). 초기 전시 내용에서 숱한 오류가 지적당하기도 했지요. 지나칠 정도로 경제 성장만을 강조하는 전시 구조가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고, 민주주의의 성장이나 남북 화해를 비롯한 통일 문제에 대해서 도외시한 부분이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독재 정권 당시의 심각한 인권 유린이나 노동문제, 여성문제 등 대한민국 역사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지적 또한 끊이질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관을 빼려고 했다가 광복회 등의 반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임시정부관을 만들기도 했죠.

상식 이하의 전시 오류는 교학사 교과서 파동 당시 교과서 내용이 오류로 가득했던 모습과 닮았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고 독재 정권의 역사를 오직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는 정부 여당이나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임시정부를 없애고 건국절을 강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박물관장님의 생각이나 박물관 건립과정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탁합니다. 김 관장의 정치적 입장을 굳이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정치적 당파를 가졌는지 추궁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역사를 왜곡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역사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말아 주십시오.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합니다.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원본 이미지 합성) http://www.much.go.kr/museum/cnts/greeting.do

김용직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 (원본 이미지 합성)

대한민국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 19세기 중엽(1838~1848) 영국에서 있었던 사회 운동으로 영국 노동자의 참정권 확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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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심용환
초대필자. 역사 강사

역사 강사, 대학생 인문학 공동체 '깊은계단' 대표 → 블로그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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