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box type=”note”]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이 극심한 내홍에 빠졌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2015년 9월에 통과한 혁신안 실천의 방법론으로 ‘문안박 연대’(문재인·안철수·박원순 3인 임시지도 체제)를 안철수 전 대표에게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이를 거부하고 ‘혁신 전당대회를 열자’고 역제안했습니다. 위기의 새정연은 과연 어떤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슬로우뉴스는 다양한 기고와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box]

누가 좋다 싫다의 문제가 아닌 듯해서 펜을 들었습니다. 규칙과 약속의 의미에 대해 설파하시던 분께서, 그렇기 때문에 한명숙 전 총리 같이 위법한 해당 행위를 한 자를 즉각 당에서 제명할 것을 요구하셨고, 80년대 엄혹했던 민주화운동 시절에도 도서관을 지켰고 심지어 당시 민주화 투쟁에 대해조차 비판적인 언사를 하셨던 분께서 왜 스스로 규칙과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는지 심각하게 의문이 듭니다.

1. 반장선거에도 규칙과 약속이 있습니다 

저는 새정연 인사도 아니고, 정당 일에 관여해본 적도 없습니다. 새정연의 당헌·당규에 관해선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안 의원님의 모습은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를 해도 규칙과 약속이 있습니다. 정당을 운영하는 절차가 있고, 그 절차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여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만약 그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이의 제기를 하고 제도와 절차를 개선해야 합니다. 새정연의 내홍 가운데 ‘혁신안’이 마련되었고, 그것이 당헌과 당규가 규정한 적법한 절차를 통과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헌과 당규에 규정된 대로 적법한 동안은 ‘혁신안’을 실천하는 데 모든 노력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안 의원님의 위치나 직위가 무엇인가요? 왜 의결된 혁신안 그리고 그 이상의 제안들에 대해 거부하는 것을 넘어서 ‘역제안’을 하는 것이죠?

악수하는 손

과거 중국에는 ‘율령 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율령을 초월한 존재였습니다. 율령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때로는 율령과 상관없이 즉흥적인 법 집행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고대 로마에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때 완성된 만민법이나 나폴레옹에 의해서 완성된 근대 민법은 모든 사람을 ‘법 앞에 평등’한 존재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권력은 적법한 절차 안에서 운영되어야 하고, 대통령이나 총리도 법이 제한한 권한 내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님의 권한이 무엇이길래 이런 식으로 정당 구성원이 토론과 다수결을 거쳐 합의한 중론을 완벽하게 무시하는지 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권한 남용으로 비판받는 박근혜 대통령 조차 이 정도는 아니지 않나 할 정도로 당혹스럽습니다. 더불어 언론이 현 사태를 마치 흥미로운 정치 게임 정도로 보도하는 시각도 유감입니다. 

2. 1997년 이인제 의원의 길을 가실 겁니까?

안 의원님을 보면 이인제 의원이 떠오릅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인제 의원이 어땠나요? 당시 TV토론이 시작되면서 또박또박한 말솜씨와 젊은 개혁 이미지로 무장한 이 의원은 급속도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이 의원은 탈당해서 독자 출마합니다. 그 결과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여권은 분열했고, 500만 표를 이 의원이 가져가 버렸으니까요.

©중앙포토
©중앙포토

이인제 의원의 판단에 대해 가타부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가 처했던 상황 가운데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치적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새 인물’이라는 키워드를 박찬종 의원에게서 뺏어올 수 있었고, 인기라는 것이 언제나 유지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후 이인제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경선에서도 불복, 탈당, 불복을 이어오면서 정치적 존재감 자체를 잃어버렸습니다.

3. 국무총리 안철수를 원하십니까?

세간에 스산한 소리들이 떠돕니다. 헌법을 개정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재선시켜야 한다는 위헌적인 주장이 카톡을 통해 확산하기도 합니다. 이원집정부제 시스템을 만들어서 대통령은 반기문, 국무총리는 친박 인사 중의 한 명 혹은 내년 총선에서 170석 의석을 확보해서 내각제 개헌을 한 이후 일본 자민당같이 영구집권체제로 가겠다고도 합니다. 하 수상한 시절에 그저 뜬구름 같은 이야기고,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야 이런 발상에 결단코 반대하시겠지만, 심심찮게 이런 이야기가 도는 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새누리당 2016년 총선 180석 호언장담

저는 안철수 의원을, 그 인간성을 신뢰합니다. 안 의원님이 V3 백신을 만들고 회사를 일구어가던 시절의 그 신실한 모습을 신뢰합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재벌, 정경유착, 부정부패가 아닌 건전하고 건강한 기업과 정직한 CEO라는 새로운 사회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IMF를 극복하며 IT 강국이 되는데도 안 의원님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분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걱정됩니다. 풍설 170석. 개헌 가능 의석입니다.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여권이 유리한 형태로 제도를 뜯어고치는데 필수적인 의석수입니다. 아무리 야권이 지리멸렬하다고 해도 새누리당 의석이 2/3가 되는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야권의 많은 기회주의자가 안 의원님을 꾀어서 총선 이후에 10~20석 정도를 가지고 여권에 가는 일종의 3당 합당(?)이 일어나서 정말로 의석수의 2/3가 여당이 된다면? 그렇게 헌법이 개정돼 실권 없는 대통령 안철수와 실권 총리 OOO, 혹은 대통령 반기문과 국무총리 안철수.

하지만 과거 김종필 총재가 두 차례나 당했듯 결국 안 의원님이 버림받는 구조, 그래서 여권 중심의 일당 구조가 굳어지는 형태, 이런 (지금 생각하면 황당하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세간의 걱정을 들으면서 저는 무엇보다 인간 안철수의 진정성 자체까지 사람들이 의심하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안 의원님, 이런 풍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참 속상합니다. 인간 안철수에 대해서야 제가 얼마를 알겠냐만, 인간 안철수에 대한 ‘열풍’을 불게 한 국민적 열망과 국민적 기대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모습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4. 양보해야 할 때와 분노해야 할 때 

반대하고, 부정하고, 손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세력을 구축하고, 부추기는 세력과 조우하는 것만이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아닙니다.

1969년 김영삼을 기억하십시오. 최초로 40대 기수론을 외쳤고 최연소 원내총무가 되었음에도 이철승계의 견제로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습니다. 경선에 불복하여 윤보선 등 과거 민주당 구파 계열이 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은 경선에 승복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합니다. 밤마다 호텔 방에서 엉엉 울면서도 그랬다고 합니다. 결국, 그 김영삼이 김대중보다 먼저 대통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비판받을 일도 많았지만, 인간 김영삼의 매력 때문에 민주계 대부분이 호랑이 굴로 따라 들어갔고 국민은 결국 그를 찍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김대중을 기억하십시오. 대북송검 특검, 열린우리당 창당. 그것들이 정치적 돌파구이고, 과거 유산의 척결이라는 시대적 당위를 가졌다 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입장에서 어찌 달가웠겠습니까. 하지만 어땠습니까. 참여정부 내내 한마디 안 하시고 조용히 계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내 몸의 반쪽을 잃었다’고 하신 분입니다. 워낙 논리적이고 명석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회고처럼 주변 사람들을 주눅에 들게 만들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외모나 연설 능력에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인간미. 울어야 할 때 울고, 통곡해야 할 때 통곡했던 그 모습. 그것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제공=포커스뉴스
제공=포커스뉴스

때로는 물러나고,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더욱 크게 분노하며, 때로는 함께 행진할 때 구름 떼 같은 사람들이 안 의원님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거기에 훨씬 많은 인재가 있을 것이며, 훨씬 큰 가능성이 있을 것입니다. 안 의원님께서 이 길을 가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