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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강사다: 사회인 리그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9.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 사회인 리그 

2012년 봄, 나는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세상을 기웃거리다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의 근거가 없어짐과 동시에 학과 조교의 의무 역시 없어졌다. 50만 원의 보수에 내 청춘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하기에는, 어느새 갓 서른이 되어 있었다. 피어난 적 없는 내 청춘은, 이제 대학원 사회의 가장 밑단을 넘어 ‘논문’, ‘연구’, ‘강의’, 와 같은 아카데미의 정글에 던져졌다.

학진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해 좋은 평가를 얻으면, 강의하고 박사 논문 인준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쉽든 어쩌든, 잠시 접어두고, 좀 쉬고 싶었다. 이 시기의 나는 공부가 아닌 다른 세상에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집주변을 돌다 보면, 내가 몰랐던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었다. 서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내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여전히 연구실에 나갔지만, 논문이 급하지 않으면 집에서 저녁을 먹으려 노력했다.

자전거

 “저도… 같이 운동하고 싶어요” 

그러다가 집 근처의 초등학교를 지나던 중, 체육관처럼 생긴 건물에 환하게 불이 켜진 것을 보았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보았는데, 삑삑대는 운동화 마찰음과 건강한 웃음소리들이 새어 나왔다. 나는 체육관 문을 살짝 열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래 눈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문틈 사이로는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30대부터 50대까지의 남녀들이 모두 밝은 표정으로 어떤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쳐다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참 내성적인 성격인 내가 그렇게까지 했다. 그러자 운동하던 몇몇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저도… 저도 같이 운동하고 싶어요’라고 말해버렸다. 그들은 “와~ 신입회원이다!”하며 나를 반겼고 그중 총무라는 사람이 내게 입회원서를 쓰게 했다. 나는 다음날부터 저녁 7시마다 ‘츄리닝’을 입고 운동하러 갔다. 마침 학진등재지에 논문이 통과되어 주 4시간의 강의를 시작하게 된, 2012년 가을이었다.

체육관 헬스클럽

사회인 동호회, 눈물 날만큼 감사한 경험 

운동은 참 즐거운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내게 엄청난 에너지를 주었다. 말하자면, ‘사회인 동호회’라는 것이었는데, 그 운동을 좋아하는 그 지역의 젊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운동 클럽이었다.

어느 날은 야유회를 갔다. 버스를 타고, 잘 모르는 사람들과 근처 물가에 가서, 노래도 하고, 듣고, 술도 마시고, 놀았다. 그 경험이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났다. 클럽의 총무가 나를 따로 부르더니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운동할 공간이 부족한 데 초보자는 레슨을 받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고, 그래야 기존 회원들의 반발을 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레슨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 달치 밥값보다 많은 레슨비 

레슨비는 주 2회, 한 달에 12만 원이었다. 거기에 5만 원의 월회비가 있었다. 비로소 무언가 하려면 돈이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만 원이면 내 한 달 치 밥값보다 많았다. 나는 그래도 레슨비를 만들어 입금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배우는 것이 없었다.

코치라는 사람은 자신의 폼을 보여주고, 내 자세를 교정해주고, 그걸로 끝이었다. 무얼 더 바라느냐마는, 고작 10분도 안되는 시간을 봐주고 그만한 돈을 받아갔다. 두 달 정도 계속 레슨을 받다가, 아무래도 계속 받기는 힘들겠다 싶어서 총무를 만나 레슨을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는 웬만하면 계속하는 것이 좋을 텐데, 라면서도 좋을 대로 하라고 했다. 도저히 돈이 없어서 그만두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체육관 헬스클럽

40대 누님의 외마디 비명 

클럽 사람들의 직업은 다양했다. 공무원이나 선생님이 가장 많았고, 대략 회사원, 공단 생산직, 자영업자의 순이었다. 직장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 OO는 직장 어디 다니니?”  
“네, XX대학교에서 강의해요.”

얼마나 버는지 묻기에 대답해 주었다. 그때 그 분위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모두 나보다 형과 누나들, 30대 중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의 나이였는데, 40대 누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 것부터 시작해서 정색하고 나를 보거나 측은하게 보는 표정까지, 다양했다.

내 월급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왜 그들을 불편하게 했을까, 나는 친한 누군가 이외의 사람에게 내 직업과 보수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 후 그들이 나를 대하는 것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레슨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적당히 넘어가자…’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게 된다.

운동하며 친해진 동네 형들이 너무 좋았다 

운동을 하며 친해진 형이 몇 있었다. U는 나보다 다섯 살, S는 여섯 살이 많았다. 둘 다 ‘공무원’이었다. 그들은 운동이 끝나고 나면 나와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걸었다. 그러다가 종종 근처 슈퍼에서 시원한 맥주 몇 캔을 사서 같이 마시자고 했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누군가가 내게 술을 권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나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많이 바빠 보였지만, 운동을 꼬박꼬박 나왔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이면 함께 술을 마시자고도 했다. 집 근처에 그렇게 맛있는 치킨집이 있었던 것도, 곱창을 파는 맛집이 있었던 것도, 처음 알았다.

U는 장난스러운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다.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나와 S와 어떤 누님을 한 분 초대해 아침이면 “굿모닝!”하고 자주 자기 근황을 재미삼아 올려 분위기를 즐겁게 했다. 나는 동네에 그런 형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좋아서, 괜히 단체 카톡방을 열어 보고 웃고는 했다.

사람 우정 석양

“대학에서 공짜로 얻어먹는 거 가르치냐?” 

우리는 가끔이었지만, 운동과 관계없이 술자리를 따로 갖기도 했다. S의 제의로 나이트에 가기도 했는데, 경험이 처음인 나는 여기가 어디지 나는 누구지 하면서 S의 주도로 함께 마시고 놀았다. 나이트를 포함해 처음 두 번의 술자리는 U와 S가 나누어 냈다.

나는 세 번째 술자리를 대접하고 싶어서, 근처 치킨집에 자리를 만들었다.

“지난번엔 사주셔서 정말 잘 먹었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아이고, 고맙지.”

우리는 함께 좋은 술자리를 가졌다. 그런데 나가면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이미 U가 계산을 했다며 먼저 나와 있었다.

“어, 제가 산다니까 왜 그러셨어요, 형님”
“아냐, 뭘…”

우리는 웃고 서로 헤어졌다. 그런데 네 번째 술자리에서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하다가 내가 대학교에서 강의한다고 하니 U는 이렇게 말했다.

“야, 너는 뭘 가르치냐? 혹시 뭐 공짜로 어디 가서 얻어먹고 그런 거 가르치냐?”

나는 화장실에 간다며 일어나서 술값을 계산했고, 한 번 더 술자리를 갖자고 해 먼저 계산하고 나왔다. 다음날 단톡에서 나오고, 그 뒤로 체육관엔 가지 않았다. 1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그 말이 아직도 토씨 그대로 머릿속을 맴돈다.

사회인 리그, 내겐 용기 아닌 무모함 

생각해보면, ‘사회인’의 리그에 발을 들인 것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었다.

‘사회인 동호회’라는 것은 애초에 성실한 ‘사회인’을 대상으로 한 모임이다. 내가 한 달에 얼마를 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때 그들이 보였던 그 불편함은, 결국 내가 그들의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반사회적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고작 주 4시간을 일하며 월회비와 레슨비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근사한 2차, 3차를 가는 데 돈을 보태지 못하는 인간이 낄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적당히 나이를 먹고서도 제대로 사회인의 구실을 하지 못한 볼품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사회인’의 거리에는 그들 나름의 ‘문법’이 있었다. U와 S가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계산을 하고 나간 것도, 세련된 사회인이라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미리 계산해 대접받는 이들이 불편 없이 자리를 나가도록 배려했어야 한다. 그런 단순한 문법조차 모르고, 그들의 거리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는 ‘반사회적’ 인간이다 그래서 외롭다 

나는 반(半)사회적인 인간이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듯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내가, 혹은 내 또래의 대학원생이나 시간강사들이 겪는 외로움의 근원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반(反)사회적인 인간이다. 다른 노동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 표면적으로 노동하고, 사회가 원하는 소득과 소비 기준, 그 어느 것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일주일에 4시간 노동(강의)하고 월급을 받아 가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비난한다.

사회성의 결여, 사회에서 함께 동시하고 있으나 동시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동시성의 비동시성, 이러한 외로움은 연애나 우정이나 가족애 같은 것으로는 극복되지 않는다.

‘사회적’이지 못한 존재는, 외롭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연구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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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309동 1201호
초대필자. 대학강사

지방대 시간강사,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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