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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사고(思考)의 관계에 관해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 먼저 하늘을 호수에 비유하든 거울에 비유하든 메타포 때문에 하늘에 대한 생각이 바뀌진 않는다는 의견입니다.
  • 반면 하늘을 호수로 설명할 때와 거울로 설명할 때 청자의 인지 과정이 변화되고, 결국 하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죠.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전 연재들에서 살펴본 것처럼 메타포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은 인지언어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되는 논쟁거리입니다. 오늘은 폴 H. 디보도 (Paul H. Thibodeau)와 레라 보로디스키(Lera Boroditsky)의 2011년 논문 [Metaphors We Think With: The Role of Metaphor in Reasoning]을 통해 메타포가 언어를 꾸미는 수사적 장치에 그치는지, 아니면 우리의 인지와 사고를 바꾸어놓는 심리적 실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메타포가 생각에 영향을 끼치다

범죄: 바이러스 메타포 vs. 맹수 메타포

먼저 원활한 설명을 위해 연구에서 사용된 예문들을 살펴봅시다.

[box type=”info”]

  1. a crime epidemic
    crimes plaguing a city
    crimes infecting a community.
  2. criminals prey on unsuspecting victims
    And criminal investigations are hunts where criminals are tracked and ca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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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1번은 범죄를 질병 혹은 바이러스에 비유하고, 2번은 맹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연구의 핵심 질문이 나옵니다. 범죄를 바이러스 메타포와 맹수 메타포로 제시할 경우에 사람들이 범죄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죠. 연구 참여자들은 한 마을에서 증가하고 있는 범죄에 대하여 대응책을 제시해야 하는데요, 동일한 상황을 다른 메타포를 통해 접한 두 집단이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면, 메타포가 사고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맹수와 바이러스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문제 검증을 위해 다섯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각각의 실험 결과와 이에 대한 가상 비판의 형식으로 연구를 살펴보겠습니다.

맹수는 잡아 가두고, 바이러스는 예방해야

첫 번째 실험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문을 줍니다. 괄호 안에는 두 가지 표현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범죄를 맹수로, 두 번째는 바이러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체 실험 참가자 중 절반은 맹수 비유를 포함한 지문을, 나머지 절반은 바이러스 비유로 된 지문을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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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e is a {wild beast preying on/virus infecting} the city of Addison. The crime rate in the once peaceful city has steadily increased over the past three years. In fact, these days it seems that crime is {lurking in/plaguing} every neighborhood. In 2004, 46,177 crimes were reported compared to more than 55,000 reported in 2007. The rise in violent crime is particularly alarming. In 2004, there were 330 murders in the city, in 2007, there were over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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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범죄율 증가 통계가 제시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실험 참여자에게 동일한 표를 줬죠. 지문과 표를 살펴본 참여자들은 이 도시의 범죄를 해결할 방법을 제안해 보라는 과제를 완수해야 합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맹수 메타포를 포함한 지문을 읽은 사람들은 범죄자들의 색출 및 검거를 가장 중요한 대처 방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바이러스 메타포를 포함한 지문을 살펴본 실험 참가자들은 빈곤 등을 포함한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고, 커뮤니티가 그 원인에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꼽았습니다.

하나의 메타포만으로도 사고의 방향이 바뀐다?

“비유적 표현들이 여러 번 반복되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잖아. 전체 지문에서 메타포가 딱 한 번만 나온다면, 사람들의 제안이 그렇게 갈리지 않을 거라고 봐. 메타포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효과야!”

위와 같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응하는 두 번째 실험이 준비되었습니다.

두 번째 실험의 진행방식은 이전 실험과 같았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첫 번째 실험의 지문에서는 바이러스와 맹수라는 표현과 함께 상응하는 동사(infecting, plaguing/preying on, lurking in)들이 사용되었음에 반해, 두 번째 실험의 지문에서는 단 하나의 명사구만이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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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e is a {beast/virus} ravaging the city of Addison. Five years ago Addison was in good shape, with no obvious vulnerabilities. Unfortunately, in the past five years the city’s defense systems have weakened, and the city has succumbed to crime. Today, there are more than 55,000 criminal incidents a year – up by more than 10,000 per year. There is a worry that if the city does not regain its strength soon, even more serious problems may start to devel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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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Crime is a beast/virus ravaging the city of Addison”에서 강조된 부분을 제외하고 완전히 같은 지문과 과제를 준 것이죠. 결과는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집단이 바이러스/맹수 메타포의 성격에 상응하는 대책을 제시한 것이죠. 단 하나의 명사구로도 참여자들의 해법이 확연히 갈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메타포의 힘

이 결과를 두고 역시 반론이 제기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래? 사실, 애초부터 바이러스(virus)나 맹수(beast)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 잘못 아닌가? 사람들이 그런 단어를 들으면 당연히 ‘바이러스는 막고, 맹수를 잡아들여야 해’라고 생각할 거 아니냐. 이들 단어를 지문 안에 직접 사용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야.”

그래서 연구자들은 다음 실험을 추가로 실시하였습니다.

세 번째 실험에서는 지문에 맹수나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직접 쓰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사용된 지문에서 “Crime is a beast/virus ravaging the city of Addison”마저 제외한 것이죠. 대신 지문을 읽기 전에 이 두 단어의 유의어를 말해보라는 과제를 줬습니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의 마음속에 바이러스나 맹수와 관련된 개념들을 활성화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집단은 바이러스/맹수라는 메타포에 해당하는 대처방안을 내놓았거든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지문을 읽기 전에 관련 개념을 환기한 것만으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셈입니다.

과제에 따른 차이: 해법 제시 vs. 추가 자료 확보

이런 결과를 보고도 다음과 같이 과제의 종류에 의혹을 제기하는 분들이 있겠지요.

“범죄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하면 방금 봤거나 다른 표현에서 유추한 메타포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최종적인 해법 제시가 아닌 다른 활동을 하도록 하면 메타포의 영향이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을지 모르지!”

(눈치 채셨겠지만, 과학자들 특히 심리학자들은 탄탄한 실험설계를 위해 비판적인 독자들과 가상의 논쟁을 자주 벌여야만 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 번째 실험이 준비되었는데요. 이번에는 지문을 제시하고 현 상황과 관련된 정보를 추가로 모아보도록 했습니다. 최종적인 해결책을 제안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보라고 한 것이지요.

결과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참여자들은 질병과 맹수 메타포가 구성하는 사고의 틀(frame)에 따라 정보를 검색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죠.

메타포가 텍스트의 해석을 ‘물들인다’?

그래도 다음과 같은 의견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아, 그게 말이지. 바이러스나 맹수라는 단어가 맨 처음에 나오니까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는 거 아닐까? 맨 처음 문장이 주제 문장인 경우가 많으니, 사람들이 그걸 보면 뇌리에 팍 박히는 거라구.”

메타포의 위치에 따라서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자세히 말하면 메타포가 그저 단발적인 정보를 전달한다기보다는 이후 제시되는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한 사고의 틀로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그래서 다섯 번째 실험에서는 이런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바이러스/맹수 비유를 글의 맨 마지막에 넣었습니다. 메타포가 처음부터 글에 대한 해석을 ‘물들이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실험에서만큼은 반론이 옳았습니다. 글의 끝 부분에 메타포를 배치하자, 바이러스/맹수 메타포에 따라 상이한 대책을 제안하는 경향이 사라진 것입니다. 여기에서 텍스트의 시작 부분에 제시되는 메타포가 이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무게중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메타포

본 실험 외에 실험 참가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왜 이런 제안을 하셨나요? 어떤 동기에서 이런 해결책을 주신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대부분 통계치와 같이 메타포와 관련 없는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하더라는 겁니다. 메타포 때문에 이런저런 해법을 제시했다고 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거죠. 결국, 참가자들은 메타포의 힘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이라면 범죄를 어떤 메타포로 묘사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무엇인가요? 고통의 바다인가요? 설레는 여행길인가요? 아니면 처참한 전쟁터인가요?

떨어진 물방울

오늘 살펴본 연구가 보여주듯 메타포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평소 삶에 적용하는 메타포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는 메타포가 삶에 대한 태도 및 관점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참고문헌

  • Thibodeau PH, Boroditsky L (2011) Metaphors We Think With: The Role of Metaphor in Reasoning. PLoS ONE 6(2): e16782. doi: 10.1371/journal.pone.001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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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댓글

  1. 비유는 수없이 많은데, 비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건 마치 카오스 이론을 보는 듯하군요. 설득력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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