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과 원격진료 등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은 큰 반발을 불렀다. 이것이 사실상의 의료민영화라는 논란이 거세졌고, 의사협회는 이에 항의하는 뜻에서 집단 휴진 투쟁을 벌이기까지 했으며, 2차 집단 휴진까지 예고한 상태였다.

2014년 3월 20일, 정부와의 협상 결과 수용 찬반 투표 결과를 알리는 의사협회 보도자료
2014년 3월 20일, 정부와의 협상 결과 수용 찬반 투표 결과를 알리는 의사협회 보도자료

이 상황에서 나온 의협과 정부 사이의 합의, 소위 의정 합의는 많은 사람을 실망하게 했다. 특히 진보언론은 결국 의사들에게 국민들이 놀아났다며 분노하기까지 한다. 그럴 만하다. 의협이 지지를 받았던 건 ‘의료영리화 반대, 원격진료 반대’라는 기치 덕분이었다. 그러나 정작 의정 합의는 의료 영리화나 원격진료에 대한 내용은 구색이고, 대부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개편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box type=”info”]

참고글: 의료법인 자법인 허용, 의료민영화 때문일까?

[/box]

빛 좋은 개살구 합의

합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 원격진료 문제
  • 영리 자법인 설립 문제
  • 수련의 제도 개선 문제
  • 건정심 개편 문제

개중 국민들이 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앞의 두 가지 문제인데, 합의 내용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게 바로 개살구다. 살구보다 살구보다 맛이 시고 떫다. (...) (사진: televiseus, CC BY-NC-SA)
이게 바로 개살구다. 살구보다 맛이 시고 떫다 (…) (사진: televiseus, CC BY NC SA)

원격진료는 6개월 시범사업 후 이를 입법에 반영한다는데, 6개월 이내에 정책의 존폐를 달리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영리 자법인 설립에 대해서는 논의기구를 마련한다는 공허한 합의만이 남았을 뿐이다. 수련의 제도 개선 등은 물론 마땅히 필요한 일이지만 국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 남은 것은 건정심 개편 문제뿐이다.

건정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성되는가

건정심은 요양급여 기준, 비용, 보험료 등을 정하는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기구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총 25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기구가 중요한 까닭은 ‘4대 보험’으로 불리며 소득이 있는 국민 대부분이 납부 의무를 지는 건강보험료가, 그리고 의사들이 받는 의료수가가 바로 이 기구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기구의 구성을 보면, 위원장 1인, 공익대표 8인, 건강보험 가입자 대표 8인, 의약계 대표 8인으로 되어 있다.

이중 공익대표 8인은, 이름은 공익대표라고 붙어 있지만, 구성을 살피면 사실 정부 측 인사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4명은 아예 정부 사람이고, 전문가 4인도 정부가 추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국, 위원장을 제외하면 정부가 8, 의약계가 8, 그리고 건강보험 가입자들, 즉 보험료를 내고 그 수혜를 받는 국민들이 8의 지분을 갖는 셈이다.

건정심의 인적 구성
건정심(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인적 구성

이 구조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가입자는 보험료를 덜 내면서 더 많은 서비스를 받기를 원할 테고, 의약계는 보험료와 수가가 인상되길 바랄 것이다. 양자가 각자의 근거를 들어 수가 인상 폭을 제시하고, 여기에 정부가 양자의 주장과 근거를 비교하여 그 차이를 적절히 조율한다면, 이는 이상적인 구성이다.

문제는 과연 정부가 과연 그 조율 역할을 충실히 해 왔느냐는 점이다.

건정심의 문제, 정부를 믿지 못하는 의협

건정심의 위원 구성은 8:8:8의 이상적인 구성으로 보이지만, 만일 정부의 태도가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16:8로 급격히 추가 기울어진다.

건정심 구조는 '정부'의 선택에 따라 무게 중심이 한쪽에 쏠릴 수 있다. (사진: whittaker_colin, CC BY NC)
건정심 구조는 ‘정부’의 선택에 따라 무게 중심이 한쪽에 쏠릴 수 있다. (사진: whittaker_colin, CC BY NC)

그동안 의사협회는 정부가 이상적인 조율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정부가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와 의료 원가의 상승 추세 등 여러 이유로 인해 보험 재정이 압박받자 포괄수가제 도입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재정을 아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가입자의 목표는 같다. 보험료와 수가를 최대한 아끼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협회는 공익대표 8인을 정부가 추천하는 대신 가입자와 의약계가 동수로 추천할 것을 이번 합의문에 포함했다.

공익대표를 가입자와 의약계가 동수로 추천한다면 12:12의 구조가 될 것이다. 다만 이 경우 가입자와 의약계가 추천한 공익대표는 오롯이 공익을 추구하는 중립적인 역할을 하는 대신 자신을 추천한 측의 견해를 대변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조율은 안 되고 수가 결정 과정에서의 공방만 더 깊어질 우려가 있다.

건정심 개편, 의사 편만 든 것인가?

언론은 이 합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건정심 위원 구성 중 정부 몫을 의사에게 줘버렸으며, 이 때문에 국민을 소외시킨 채 수가 인상을 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굉장히 편파적인 보도라고 생각한다. 정부 몫은 의사에게만 주어진 게 아니다. 같은 몫이 가입자 대표, 그러니까 진보 언론의 논법을 따르자면, 국민대표들에게도 주어졌다. 명목상으로 볼 때 이는 8:8:8의 구조를 12:12로 바꾼 것이며, 어느 한쪽으로 추가 기울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런데 진보언론은 가입자 몫이 늘어난 건 은근슬쩍 묻어버리고 의사 몫이 늘어난 것만 강조하며 상황을 호도한다.

물론, 공익대표가 그간 사실상 가입자 편을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얘기는 다소 달라진다. 16:8 구조에서 12:12로 바뀐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의협의 주장에 힘이 더 실린다. 편파적이었던 구조를 공정하게 바꾼 셈이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무작정 돈을 아끼는 것이 정답인가

언론은 또 건정심에 참여하는 정부 측의 지분이 줄어들고 의사 측의 지분이 늘어남으로써 국민이 낸 소중한 보험료를 아끼려는 정부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보험료 인상을 요구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커졌음을 우려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일종의 복지 정책으로 생각할 때, 무작정 돈을 아끼는 것이 정답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복지에는 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돈이 얼마나 적절하게 투입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돈이 투입된다면 재정이 낭비될 것이고, 너무 적은 돈이 투입된다면 서비스가 떨어지거나 급기야는 제도가 붕괴할 것이다.

HikingArtist.com, CC BY NC ND
HikingArtist.com, CC BY NC ND

그리고 건강보험제도가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비단 의협만의 시각은 아니다. 강남 노른자 땅에는 성형외과와 피부과만 빼곡히 들어서고, 산부인과나 흉부외과 등에 종사하는 의사는 바보 취급을 당하는 실정이다.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은 이미 흔들리고 있다. 그 정도에 대해 이견이 있을 뿐이다. 낮은 의료수가와 보험료가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음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낮은 보험료가 의료제도 근간 흔들어

사실 보험료와 의료수가 문제는 단순히 의사가 돈을 더 벌고 못 벌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의료제도 그 자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지나치게 낮은 보험료와 의료수가는 의료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다.

현장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려고 해도 지나치게 낮은 수가 때문에 되려 손해가 나기도 하고, 양심적인 진료를 했지만, 과잉 진료를 했다며 진료비를 삭감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3번까지만 인정되는 시술을 환자의 체질상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4번 시술했다는 이유로 과잉 진료가 되고 진료비를 삭감당한다. 보험 재정이 부족하니 이렇게라도 돈을 아껴야 한다. 그 근간에는 결국 낮은 보험료와 수가 문제가 깔렸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은 70%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의협, 심평원 보고서 인용). 정부가 정한 진료비가 실제 의료행위에 드는 원가의 7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진료하고 정상적으로 국가로부터 진료비를 받으면, 의료기관은 그 어떤 경영상의 묘를 발휘하더라도 무조건 적자가 난다. 진짜로 망한다. 비정상적인 구조다.

결국,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환자를 보고 이득을 얻기 위해 1분 진료가 횡행한다. 이렇게 인건비라도 아껴야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는 미용 목적의 성형외과와 피부과만 가득하며, 일반 의원은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치과는 임플란트에 매달리고, 한의원은 한약과 특화 진료에 매달린다. 코디네이터, 상담실장 등의 직함을 단 선남선녀들이 환자 대신 고객에게 달콤한 말로 더 비싼 진료를 받을 것을 권유한다. 그들은 장사를 시작한다. 보험 진료만으로는 의료기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료 민영화, 원격 진료 문제에도 분명한 목소리 내야

비정상적인 저수가 구조의 개선은 의협의 제 1과제였고, 의협은 그 목적을 위한 걸음을 내딛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건정심은 의료 영리화를 저지하고, 바람직한 의료복지의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일러스트: HikingArtist.com, doctor CC BY NC ND)
건정심은 의료영리화를 저지하고, 바람직한 의료복지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일러스트: HikingArtist.com, doctor CC BY NC ND)

당장 정부와 의협은 합의문 내용의 해석에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여 구성’한다는 문구에 대해 정부는 당연히 정부 소속 위원을 뺀 나머지 위원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의협은 정부 소속 위원도 공익위원에 포함되므로 공익위원 8명 전부에 대해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폭풍 또한 거세다. 시민사회에서는 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실상 시민사회는 비정상적인 저수가 구조라는 의협의 주장 자체에 동조하지 않으며, 보험료를 더 내는 것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의사 사회 내부에서조차 이 합의문이 의료 영리화와 원격진료를 막을 수 있는 그 어떤 효력도 없다는 점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 오고 있다.

건정심 구성 문제는 비정상적인 저수가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의료 영리화와 원격 진료 문제에 대해 의료계가 앞으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그 의미는 심각하게 빛이 바랠 것이다.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율 자료이다. 이 자료는 2006년 심평원에서 내놓았으며 “상대가치점수연구개발단”은 이 자료를 “절대적 기준이나 표준적 지침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음”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