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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연대를 노래하는 사람들 [특집]

한동헌이 만들고 김광석이 부른 곡 ‘나의 노래’는 노래가 밥이고 빛이며 힘이라고 정의한다. 노래는 즐거움을 쉽게 주지만, 그에 더해 힘까지 줄 수 있을까. 노래에 저항의 기운을 담았던 60년대, 70년대, 80년대도 아닌 21세기 지금도 노래는 힘이 되는 것일까.

노래는 밥이고 빛이며 힘이라고 여전히 믿는 사람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1백여 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그들이 노래의 힘을 믿지 않는다면, 1년 넘도록 매일 거리에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들의 행위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들에게 노래는 즐거움이면서 동시에 분명한 힘이다.

위스콘신은 작년 내내 정치적 격동으로 몸살을 앓았다. 시작은 새로 당선된 주지사 스캇 워커가 제출한 법안 하나였다. 2011년 2월 중순에 워커는 주 예산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공공 분야 노동자들의 기본 노동권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예산법을 제출했다. 교육 관련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그러나 대기업에 특혜를 주는 감세 정책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거대 기업들의 후원금을 받아 선거를 치르고 당선된 이 공화당 소속 주지사를 예의 주시하던 사람들은 즉각 반발했다.

예산법 제출 소식이 알려진 바로 그 날부터 주민들은 주 청사로 모여들었다. 길고도 지루한 항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청사 안을 메우고 밖을 둘러싼 주민들은 낮이면 집회를 열었고 밤이면 청사에서 노숙하며 농성을 벌였다. 주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이웃 주 주민도 먼 거리를 마다않고 삼삼오오 찾아왔다. 노동권 제한에서 제외되어 별 문제가 없었던 경찰과 소방대원까지 조직적으로 시위에 참가해 힘을 실어 주었다. 미국 다른 주에서는 위스콘신 시위를 지지하는 연대 시위가 열렸다(참고글).

주지사의 법안 하나가 이렇게 큰 물의를 일으키고 전국적 이슈로 번진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본의 뒷심을 받는 정치인이 노동권 제한을 통해 노동 부문을 파괴하려는 공작으로 인식되었다. 둘째,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위스콘신이었다. 위스콘신은 진보적 노동 문화를 가진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 공공 부문에 단체협상권을 도입한 첫 번째 주다. 셋째, 주지사의 이러한 ‘노조 파괴 책동’은 소수의 가진 자들이 다수의 못 가진 자들을 압박하려는 시대적 추세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2011년 하반기에 시작되는 오큐파이 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그러나 워커 주지사는 주민들의 항의와 열정적인 시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민주당 소속 주 상원의원들의 조직적 노력도 역부족이었다. 풍찬노숙을 마다않고 항의하던 사람들에게는 맥이 빠지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발적 노래 모임 ‘연대를 위한 합창(Solidarity Sing Along)’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시점이었다.

한 명이 열 명 되고 1백 명 되고

주지사가 예산법에 서명하여 통과시킨 2011년 3월11일. 몇 주째 계속되던 24시간 시위-점거는 맥이 풀리고 소강 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그 날, 주 청사 로비를 점거하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 승리하리라’ ‘이 땅은 우리들의 땅’ ‘연대여 영원하라’ 같은 전통적 저항 가요들이었다. 그는 한 시간 가까이 노래를 했는데, 주변 사람 몇몇이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는 다음주 월요일 낮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좀더 많은 사람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아무런 음향 시설을 쓰지 않은 채, 기타 한두 대로 반주하거나 아카펠라로 부르는 저항의 노래들은, 대리석으로 가득 찬 청사 건물의 사통팔달 복도 사이로 은은하게 울러 퍼졌다. ‘연대를 위한 합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후 노래 모임은 주말을 제외한 평일 낮 12시부터 1시 사이에 청사 안팎에서 언제나 노래를 불렀다.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노래 모임처럼 되었지만, 누구나 와서 한 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다 갈 수 있는 열린 구조는 변함이 없었다.

지난 4월13일은 이 모임의 338번째 ‘공연’이었다. 처음 시작이 작년 3월이니까,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모여 노래를 불러온 셈이다. 눈이 오면 모자를 눌러쓰고 불렀고, 비가 오면 우산을 받은 채 불렀다. 지독한 인간들이 아닐 수 없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기네스 기록에 ‘세계 최장 노래 시위’ 같은 부문이 있다면 위스콘신 주민들이 그 기록 보유자로 올라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지독한 인간들은 처음엔 10명 안팎이었으나, 이제는 150명 정도로 불어났다.

연대를 위한 합창

사진 제공: Lisa Wells

공자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라고 했다. 주지사와 노래 대결을 벌인다면 가볍게 이겨낼 것처럼 보이는 ‘연대를 위한 합창’ 사람들은 노래를 즐기는 이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물론 이들은 즐거워서 노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은 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들이 만들어서 배포하는 노래책(pdf 파일)에는 28곡이 실려 있다. 목록은 ‘우리 승리하리라’로 시작하여,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조 힐에 대한 노래 ‘조 힐’로 끝난다. 노동 가요도 있고, 사회 운동에서 영글어진 노래도 있으며, 찬송가나 잘 알려진 포크송을 개사한 것도 있다. 노동자의 권리, 인민의 힘, 단결과 연대의 중요성 등이 담긴 노래가 많고, 개사곡들은 대체로 워커 주지사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내용이다.

이 모임을 대표하며 뒤치다꺼리를 담당하는 크리스 리더는 모임의 취지에 대해 “이 주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주지사가 한 일을 절대 잊지 않는 사람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모임이다. 더 나아가 주지사를 소환하는 데 힘을 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그는 ‘연대를 위한 합창’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즐기는 사람’이라는 점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이것은 평화스럽고도 즐거운 방식으로 벌이는 시위다”라고 말했다.

“승리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겠다”

사람은 조금씩 바뀌더라도 어쨌든 1년을 하루같이 매일 한 시간씩 노래를 했으니 노래 실력도 만만찮을 것이다. 4월13일의 노래 모임은 일견 조직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 합창단처럼 보였으나, 노래가 시작되면서 그런 느낌은 싹 사라졌다. 사람들은 제각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듯 했지만, 고저강약을 잘 탔으며 자연스럽게 화음을 넣었다. 어중이떠중이,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화음. 바로 이것이 이 특이한 저항 모임의 성격이자 구심점이 되는 정체성이며, 동시에 1년 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공화당 의원들에게도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이끈다. 함께 노래한 공화당 의원은 아직까지 없다고 한다.

며칠 뒤면 노래를 녹음한 CD도 나온다. 음반을 만들 생각 따위는 물론 없었으나, 많은 사람이 이 역사적인 저항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음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녹음을 할 때도 행사를 미리 알리고 마이크를 공개하여, 아무나 와서 함께 부르며 녹음했다(그 중 한 곡). 최고의 가수들이 모여 부른 ‘위 아 더 월드’에는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노래에 담긴 뜻과 의지는 결코 적지 않다.

4월13일 청사 앞 계단에서 벌어진 338차 노래 모임에 등장한 악기는 다음과 같다. 기타 넷, 바이얼린 둘, 만돌린 하나, 트럼본 하나, 어코디언 하나, 작은 드럼 하나, 작은 종 하나, 탬버린 하나, 부부젤라 하나, 마라카스 서너 개, 그리고 100여 개에 가까운 사람 목소리. 그래도 어쨌든 시위인데, 구호도 연설도 없었다. 노래가 다 대신했다. ‘공연’이 끝날 무렵, 캘리포니아에서 일이 있어서 왔다는 한 교사가 짤막한 연대의 뜻을 발표하여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모임의 단골 출현자 중 하나인 레베카가 생일이라는 사실이 공지되자, 악기를 집어넣던 사람들은 다시 주섬주섬 꺼내어 ‘생일 축하 합니다’를 연주하고, 이에 맞춰 모두 축하 노래를 불렀다. 이 모든 과정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연대를 위한 합창

사진 제공: Keith Kohlmann

이날 이들의 노래 시위 주변에서는 경찰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한두 명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을만도 한데, 워낙 고정적인 행사가 되어서 그런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이들은 민주 사회의 주인으로서 자신에게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는 중일 뿐이었다. ‘연대를 위한 합창’이 제작한 노래책 2쪽에는 “주민이 평화롭게 모일 권리, 공공의 선을 위해 협의할 권리, 주 정부나 그에 속한 모든 기관에 대해 청원을 제출할 권리는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위스콘신 주 헌법 제1장 제4절이 실려 있다.

‘연대를 위한 합창’ 모임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목소리와 몸짓으로 보여주려는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우리는 (우리 목소리가) 들리기를 원한다’와 ‘우리는 잊지 않는다’와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언제나 입에 달고 사는 말이기도 하다. 한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은퇴한 교사인 루이스 벨은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가 아직 이 자리에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저항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원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음을 일깨우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출신인 다이앤 위젤은 “우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승리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될 때까지 싸운다는 건,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들이 지금까지 보인 모습으로 보면, 그 말은 허세가 아니다. 크리스 리더는 애초에 노래 모임을 작년 7~8월의 주 상원의원 소환 선거까지만 유지할 생각이었다. 공화당 다수인 상원의원에서 의석 몇을 민주당으로 바꾸면 주지사의 전횡에 제동을 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화당 의원 여섯 명을 목표로 하여 소환 선거가 벌어졌으나, 근소한 차이로 상원을 뒤집는 데는 실패했다. 이미 다섯 달 이상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왔던 ‘연대를 위한 합창’ 사람들은, 승리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겠다는 자신들의 결의대로 같은 곳에서 노래를 계속했다.

스타가 등장하지 않는 풀뿌리 운동의 저력

지난 겨울, 위스콘신 사람들은 겨우내내 주지사 소환 운동을 벌였다. 춥고 엄혹하기로 유명한 이 주의 겨울 날씨 속에서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는 주 구석구석의 길거리에 나가 언 손을 녹여가며 서명을 받았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두 달이나 그랬다. 주지사를 소환하는 선거를 성립시키기에 필요한 서명 수는 54만이었다. 지독한 사람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벌인 서명 작업의 결과, 수집된 서명 수는 1백만이었다. 미국 소환 선거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

주지사 소환 선거는 6월5일 치러지게 된다. 지금은 주지사를 상대하러 나설 민주당 후보 경선이 벌어지고 있다. ‘연대를 위한 합창’ 사람들은 변함없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1년 넘게 지속되어 온 위스콘신의 저항과 크고 작은 성과들을 보면 특이한 점을 하나 찾을 수 있다. 스타나 명망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띤 집회와 시위가 계속되고 여러 조직이 활동하는 강력한 정치 운동인데도, 이를 대표하거나 주민들의 열정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없다. 한 명, 혹은 몇 명의 개인이 대중을 이끌고 다니면서 저항 운동을 유도하고 그 내용을 다 채우는 일 같은 것은 전혀 벌어지지 않는다.

역사적인 소환 운동의 성과도 자원봉사자에게 돌아갔다. 주 정부에 소환 신청서를 내며 카메라 세례를 받은 사람도 자원봉사자였으며, 서명지가 담긴 상자를 들어 나르고 언론과 인터뷰한 사람들도 자원봉사자였다. 시민들의 열정을 가로채려는 정치인도 찾기 어렵다. 시위 현장에는 이 시위를 지지하는 주도(州都)의 시장이 자주 등장했으나, 그는 연단에 서서 사자후를 토하는 대신 사람들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니며 대화를 나눴다. 현재 소환 선거 후보로 나서고 있는 민주당 후보자들도 모두, 그동안 주민이 보여준 열정을 언급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처신하고 있다. 아무나 와서 뜨겁고 신나게 노래하고 갈 수 있는 ‘연대를 위한 합창’은 위스콘신 저항 운동의 이 같은 풀뿌리 성격을 매우 잘 보여준다. 스타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오로지 줄기차게 모여서 줄기차게 노래하는 것이다.

스타를 만들고 추종하는 형태의 각성 방식은, 각성의 폭과 깊이는 둘째 치더라도 스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거나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잃는 순간 덩달아 일거에 물거품이 된다. 정치적 열정의 채널이 개인에게 물려 있기 때문이다. 스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면 허상을 만들어 쫓아야 하고,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잃으면 어거지 합리화를 해야 한다. 이것은 시민적 열정을 쉽게 좌절시키거나 변질시키기에 딱 좋은 구조다. 스타를 따라다니며 사인을 받는 것으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를 진실로 추구한다면, 사인을 받는 게 아니라 자신이 사인을 하러 나서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주인이 되어 벌이는 공연이자 시위인 ‘연대를 위한 합창’의 거리 모임에서 사람들이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우렁차게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자면, 6월5일에 치러질 소환 선거의 결과 주지사를 쫓아내는 일이 설령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이들이 좌절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거리에서 눈비를 그대로 맞으며, 1년 넘도록 폭염과 북풍한설을 다 이겨낸 끈질긴 사람들이 선거 한 번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스스로 무너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손을 잡고 서로 격려하면서 또 무언가를 즐겁게 시작할 것이다. 지독한 인간들이다. 하지만 원래 민주주의의 역사란, 쉽게 포기하는 이들이 아니라 견인불발하는 지독한 이들에 의해서 쓰이는 것이 아닌가. 삿된 지배자가 진실로 무서워하는 것은 이런 인간들이 아니던가.

* 이 글은 슬로우뉴스 2호 특집, ‘온라인, SNS 그리고 4.11 총선’ 여덟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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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허광준(deulpul)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들풀넷 운영자 / 연구 및 강의 노동자, 매체 비평가, 콘텐츠 생산자 / 들풀미디어아카데미 대표 / 과거에 [(원)시사저널] [포린 폴리시(한국어판)] [미디어 미래] [미디어 오늘] 등에서 기자, 편집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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