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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에서 온 편지: 아인슈타인, 선생님들과 같이 싸우다

세상에는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사람과 사건, 그 유명세에 가려 우리가 놓쳤던 그림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제네바에서 온 편지’에 담아 봅니다. (편집자)

오늘은 아인슈타인을 읽는다. 그의 상대성 이론을 잘 모르면서도, 그의 책을 종종 꺼내어 보는 것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용기와 신념 때문이다. 숨겨진 그의 반쪽 때문이다.

‘왜 사회주의인가’… ‘공산주의 비판’ ‘흑인차별 반대’

평화운동에 대한 그의 기여는 이미 잘 알려졌지만, 그가 용기를 내고 목소리를 높인 분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넓다. 헨리 조지를 읽고 베블렌을 연구하면서, 웬만한 학자만큼 자본주의 분석에 대한 식견을 가졌다. 좌파 계열의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의 창간호(1949년 5월)에 “왜 사회주의인가?”라는 글을 쓴 이는 ‘잘 나가던’ 정치경제학자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이다. 그러면서도 소비에트식 공산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아인슈타인은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왜 사회주의인가?'를 기고한다. (1949년 5월)

아인슈타인은 [먼슬리 리뷰] 창간호에 ‘왜 사회주의인가?’를 기고한다. (1949년 5월)

‘팔레스타인도 동등한 권리를!’유태인 영웅에서 배신자로

흑인 차별 금지를 1950년대부터 공개적으로 거론한 이도 아인슈타인이다. 2차 대전 이후 유태인으로서 이스라엘 국가 건설에 적극적으로 나서 유태인의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팔레스타인에 가해지는 폭력에 항의하고, 그들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으로 요구하면서 하루아침에 유태인 배신자가 되었다. 그의 수많은 편지와 칼럼을 보면, 그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떠오르고 힘이 난다. 위로가 된다.

편지 이용해 약자 편에 서다

아인슈타인은 명성과 겉멋을 무지 싫어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명성을 약자들이 이용하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영악할 정도로 잘 이용했다. 어려운 상황을 호소하는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했다. 그러면서 “이 편지가 꼭 비밀일 필요는 없어요”라고 추신을 붙였다. 자신의 편지를 공개해서 ‘이용’할 것을 부추긴 게다.

‘감시와 도청’ 1천5백 페이지 FBI ‘아인슈타인 파일’

그 대가는 혹독했다. 아인슈타인은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피신하지만, 거기서 또 거대한 벽에 맞서 싸운다. 망명지 미국은 그에게 곧 유배지가 되었다. 미국으로 처음 피신 갔을 때도 미국 우파는 그의 입국을 반대했다.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였다. 미국에 가자마자 그를 처음 반긴 것은 당연하게도 감시와 감청이었다. 죽기까지 계속되었다. 그 결과는 무려 1,500 페이지를 넘는 FBI 파일이었다. 이른바 아인슈타인 파일이다. 그는 이 모든 걸 알고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해맑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
어느날 행사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해달라는 신문기자의 말을 듣고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은 이 사진이 유명해질 것이라 말했고, 정말 그렇게 됐다. (사진 출처: 미상, 사연 참고: 엔하위키)

교육에 할 말 많았던 아인슈타인

교육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은 할 말이 참 많았다. 어찌 보면, 통속적인 교육제도라는 차원에서 그는 실패작이었다. 중등교육과 대학을 통해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패자”에게 기회는 다시 한번 주어져, 기어코 노벨상까지 받게 되었다. 맹찬형 기자가 [따뜻한 경쟁]에서 말하는 “패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따뜻한 경쟁”이다.

여하튼, 보기에 따라서는 그는 당시 교육제도의 치명적 결함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학교 제도에서 창의성이 살아남는 건 기적이다”고 눙을 치기도 했다. 그래도 학교제도가 살아남는 이유로,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몽땅 까먹기 때문”이라는 항간에 떠도는 농담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탓인지, 그는 교육에 대해서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가 생각하는 교육은 확실히 다르다. 가령, “지식이란 죽은 것이고, 교육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에 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이 지식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는 사고력과 공동체 정신 함양을 교육의 근간으로 봤다. 지금이나 당시 사정으로 봐서는 다소 ‘희망 사항’이라는 느낌이 들겠다.

학교보다는 ‘선생님’ 믿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신기하게도 이 점에 대해서는 낙관적이었다. 이 점이 예전부터 궁금했었다. 그의 글을 다시 읽으면서 알았다. 아인슈타인의 이 같은 낙관에는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독재적이거나 관료적인 국가로부터 선생님들이 학생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늘 외쳤다.

“교사에게 힘을!”

선생님들의 각종 행사에도 격려 편지를 보냈다. 심지어 봉급 문제도 거들었다. 교육과 같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은 내적 만족감을 주지만, 그렇다고 노예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선생님들이라고 해서 내적 만족감으로 자기 아이들의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법”. 그가 선생님들의 임금인상 투쟁을 지지하는 방식이었다. 그의 지지 방식에는 늘 품격이 있다.

그가 이렇게 두둔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선생님들이 반교육적인 국가나 관료적인 국가 기제에 소리를 높이고 나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부터 매카시의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선생님들도 예외가 없었다. 그중 윌리엄 프라우엔글라스(William Frauenglass)라는 선생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떨고 있을 때였다. 혹시나 인민재판을 해대는 매카시 위원회에 출두 명령을 받을까 걱정이었다.

윌리엄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

당시 브루클린에서 가르치던 이 선생님은 공개적으로 출두를 거부한다. 외로운 투쟁을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친히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엄혹한 상황에서 우리가 같이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냐고 물은 뒤, 결국은 간디의 불복종운동을 공격적으로 해나가자고 한다. 투옥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카시 위원회에 대한 ‘협조’를 거부하자고 촉구한다.

매카시 위원회에 협조하지 말고, 적극적인 ‘불복종운동’을 실천하자며 매카시즘과 싸우는 윌리엄 선생님의 편에 서서 편지를 보낸 아인슈타인 (1954년 5월 16일, 복사본)

그게 소수화된 지식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행동하는 이들 옆에 늘 서 있었다. 그의 옆에 선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또 가시밭길을 간다는 뜻이었다.

비 오는 가을밤, 아인슈타인이 쓴 편지를 다시 읽는다. 행동하는 신념으로 빛나던 그의 얼굴이 그립다. 그가 살았더라면 지금 보냈을 무수한 편지들….. 그런 편지가 한국에도 갔을까. 그가 살았던 취리히 동네에나 한번 다녀와야겠다.

발췌.

왜 사회주의인가? (아인슈타인)

원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먼슬리 리뷰] (1949년 5월, 창간호)
번역: 신기섭, [밑에서 본 세상]

  • 경제나 사회 문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사회주의에 대한 견해를 표현해도 되는 걸까? 나는 몇 가지 이유로 그렇다고 믿는다.
  • 토르스테인 베블린이 인간 발전의 “약탈 단계”라고 부른 것을 우리는 진정으로 넘어서지 못했다.
  •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적이 인간 발전의 약탈 단계를 극복하고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 단계 경제학은 미래 사회주의 사회에 빛을 제시하기 어렵다.
  • 사회주의는 사회윤리적 목적을 향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과학은 목적을 창조할 수 없다. 이것을 사람에게 주입시키는 것은 더군다나 못한다. 기껏해야 과학은 이런 목적을 이루는 도구를 제시할 뿐이다.
  • 사람은 언제나 고독한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 존재이다. 고독한 존재로서 사람은 자신과 자기 주변 인물들의 존재를 지키려고 하고, 개인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려 하며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계발하려고 한다. 사회적 존재로서는, 주변 인물들에게서 평가받고 사랑을 받으려 하며 그들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그들의 생활여건을 개선하려고 한다. 종종 모순적인 이런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만이 사람의 특징을 설명한다.
  • 이기주의의 포로가 된 인간은 불안해지고 외로우며, 순진하고 단순하며 세련되지 못한 삶의 쾌락을 추구하고 있다.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면 사회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밖에 길이 없다. 비록 이 의미가 짧고 위험한 것이기는 하지만.
  •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 무정부 상태가 악의 진정한 근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기술 진보는 노동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업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종종 낳는다. 자본가들의 경쟁과 연관된 이윤 동기야말로, 자본 축적과 활용의 불안정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심각한 경기 침체의 원흉이다. 무한 경쟁은 노동의 엄청난 낭비를 유발하며, 내가 위에서 언급한 개인들의 사회의식을 불구로 만든다.
  • 개인을 불구로 만드는 것은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의 최대 악이다. 이 악 때문에 우리의 교육체계 전반이 고통을 겪고 있다. 과장된 경쟁을 벌이는 태도가 학생들에게 주입됐고, 그래서 학생들은 미래 직업을 위한 성공을 숭배하게 됐다.
  •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 사회주의의 목표와 문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지금 이행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허심탄회한 토론이 강력한 금기사항 아래 억압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이 잡지의 창간은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번역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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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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