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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사회학: 안선영을 위한 변명

‘기분 좋은 것 같아요.’

기분이 좋다는 뜻일까 안 좋다는 뜻일까? 한국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이런 표현은 개인적인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엄격한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감정 표현조차도 조심스러워야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욕망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대부분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솔직히 발언을 했을 경우는 미쳐 생각을 깊게 하지 않은 대가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상황에까지 몰린다.

“연봉이 나보다 100만 원이라도 많아야 존경심이 생긴다”

최근 방송인 안선영이 “재벌 2세, 집안 재산은 안 따지지만, 배우자의 연봉이 나보다 100만 원이라도 많아야 존경심이 생긴다”라고 말해 네티즌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남자라면 여자보다 당연히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관습적 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왜 이런 발언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걸까? 부모가, 직장이, 사회가 모두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더 벌어오는 것은 당연시하고, 그렇기에 결혼할 때 집은 남자가 해 와야 하며, 구조조정 대상에는 임신한 여성들이 일 순위가 되고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여성들에게는 ‘그런데 가정은 충실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사회에서 말이다.

이는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도 겸손 등을 주요 가치로 삼는 유교사상의 오래된 구호가 한국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라는 낡은 가치가 현재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물신주의와 상응하면서 가치의 혼란을 낳았고 이에 사회 성원은 모순적 사고에 빠지게 되었다.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캡처 화면  ©2013 -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캡처 화면
©2013 – MBC

‘성괴’라는 표현

일례를 들자면 바로 ‘성괴(성형괴물)’이라는 표현이다. 한국에서 미인이 가지는 힘은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할 것도 없이 대단하다. 언론은 연일 여신, 꿀벅지, 자연미인, 섹시한 바디 등의 제목으로 미인의 외모를 찬양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다. 유교사상에 따르면 외면보다는 내면을 꾸미는 것이 정도이겠으나 실제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가치는 아름다운 외모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런 사회에서 적응하고 나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모를 가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새에는 이런 흐름을 자기계발 영역에서 ‘자기관리’ 한다고 표현한다. 성형은 이 중에서도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성형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사회적 역할에 민감한 사람의 성형만을 한정하겠다. 문제는 성형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개인적 비하를 넘어서 사회적 비난의 화살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형결과를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연예인의 경우, 성형에 성공했더라도 ‘성형괴물’이라는 표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는 데 실패라도 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인터넷 악플을 견뎌내야 한다. 단지 개인적인 이유로 성형했을 뿐인데도 ‘괴물’이라는 낙인을 씌어 ‘너와 우리는 다르다’고 구별한 뒤 무차별로 비판한다. 따라서 성형을 했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밝히는 경우는 아직도 그리 많지 않다(참조).

네이버 지식iN 오픈 국어에 올라온 '성괴'  오픈 국어라는 표제도 이상하지만, 맞춤법도 어긋나는  네티즌의 설명을 감수하지 않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iN 오픈국어에 올라온 ‘성괴’
자의적인 정의도 문제지만, 맞춤법에도 어긋나는 문장을 그대로 ‘오픈'(?)하는 것도 문제로 보인다

왜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에게는 어떤 피해도 초래하지 않는 성형 당사자에 대해 이토록 냉혹한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혹시 자신들의 내면에 있는 욕망을 ‘성형’이라는 방식으로 빼도 박도 못하게 전시해서가 아닐까?

사람들은 성형을 통해 성형한 사람의 욕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욕망은 주로 보는 이들의 잣대에 기대 ‘나는 예뻐져서 경제력이 풍족한 이성을 만나고 싶다’ ‘연예인으로 성공해서 팔자를 고치고 싶다’고 해석된다. 개인의 감정이건 생각이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성형이란 말로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욕망을 말보다 더 자극적인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속물주의가 팽배한 사회임에도 속물적 욕망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은 아직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욕망이 자신에게도 잠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관한 욕구마저 억압하는 ‘쌩얼미인’

이런 모순적 태도는 ‘쌩얼미인’이라는 단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요 몇 년 동안 미용업계를 강타한 유행인 ‘쌩얼미인’의 위상은 대단하다. 쌩얼미인의 요체는 화장하지 않아도 아름다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사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화장마저도 욕망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미인은 좋지만, 미인이라고 티는 내지 않았으면 좋겠어’는 예뻐 보이는 것이 권력인 사회에서 타고나게 예쁘지 않은 사람들을 더 강력하게 배제한다. 쌩얼미인은 ‘아름다워 보이고 싶다’는 욕망마저 숨기는 것을 강요한다.

인간에게 허용된 욕망의 가짓수는 얼마나 될까? 현대화는 개인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이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개인의 욕망 하나하나를 구시대의 가치로 재단하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분명 문명의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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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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