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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5년에 바닥난다.”

“고갈 시점이 3년 빨라졌다.”

며칠 사이 이런 언론 보도 많이 봤을 것이다. 고꾸라진 그래프도 숱하게등장한다. 무슨 생각이 드는가. 국민연금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이 이슈가 중요한 이유.

  • 일단 잘못된 표현이다. 정부는 절대 고갈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언론이 이런 표현을 남발하면 연금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 그리고 연금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진짜 걱정된다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 연금은 고갈되는 게 아니라 소진되는 것이다. 무슨 차이냐고? 돈 버는 젊은 사람 비중이 줄어들고 연금 받는 나이든 사람이 늘어나면 쌓아뒀던 기금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기금이 떨어지면? 거둬서 나눠줘야 한다.
  • 국민연금이 지금은 적립식(쌓아두고 일부를 나눠주는 것)이지만, 건강보험은 부과식(거둬서 바로 나눠주는 것)인데 국민연금도 결국 부과식으로 바뀌게 된다.
  • 2055년에 소진된다는 건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했을 때 그러니까 보험료를 9%로 묶어 뒀을 때 이야기고, 이대로 그때까지 가면 2055년부터 갑자기 보험료가 42%로 오른다는 건데, 당연히 그렇게 갈 수는 없다.

핵심은.

  •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건 아무 것도 안 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2055년에 바닥 난다고 겁을 줘봐야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아무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무엇을 할 것인가.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지금 당장 보험료를 높이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20년 뒤 두 배로 올리는 건 정말 어렵지만, 지금 당장 20% 정도 올리는 건(9%에서 11%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고, 언론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지금은 둘 다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

더 넓게 보기.

  •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국내총생산의 10% 이상을 공적 연금에 지출하고 있다. 그러니까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국가 재정을 투입해서 보조하면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 한겨레가 “선진국은 기금 없어도 운영 된다”는 기사를 내걸었는데 지금보다 더 깎거나 더 많이 내야 하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 한국경제신문은 “변곡점이 머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55년 소진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2030년부터 운용 자산을 헐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여유 자금을 투자하기에 바빠 운용 계획 조차 없는 상태다. 순매도에 나서기 시작하면 규모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도 흘려 듣기 어렵다.

좀 다른 이야기.

  • 매일경제신문은 캐나다만큼 수익률을 높이면 고갈 시점을 수십 년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결국 대체 투자와 해외 자산 비중을 늘리자는 이야기다.
  • 수익률을 1% 높이면 고갈 시점이 5년 늦춰진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수익률 높아지면 좋은 거 누가 모르나.
  • 소득 상한을 올리자(부자들 더 내게 하자)는 제안도 있는데 많이 내고 많이 받아가면 오히려 마이너스 속도가 빨라진다.

결론.

  • 언제나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보험료를 올리는 시점이 늦어질수록 나중에 고통이 커진다.
  •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소진 시점을 맞을 것이냐를 이야기해야 한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 경향신문은 문제는 출생률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낮은 출생률이 이어지면 보험료 5배로도 막을 수 없다. 돈 버는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지만, 그게 아니니까 진짜 문제다.
  • 더 오래 내게 하자 또는 더 늦게 받게 하자는 제안도 있다. 둘은 조금 다르다. 더 오래 내면 더 많이 받아갈 거라 연금 재정에 마이너스가 된다. 실제로 보수 언론에서는 더 내게 해달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부자들이 환영할 이야기다.
  • 다른 나라들은 수급 개시 직전까지 보험료를 낸다. 한국은 59세까지만 내고 65세부터 받는다. 60~64세 고용률이 늘었기 때문에 보험료를 받아도 된다는 주장과 그만큼 고령자 고용 기피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경향신문 칼럼에서 남찬섭(동아대학교 교수)이 이런 말을 했다. “보험료 인상을 외치면서도 소득대체율을 못 올리겠다면 이것은 재정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국민연금을 악화시키려는 국민연금 약화론이라 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용돈 연금인데 덜 받는 건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저소득 계층에 대한 안전망을 고려해야 한다.
  • 오건호(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장)는 한국일보 칼럼에서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기초연금을 합쳐 삼총사 전략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1. 첫째, 기초연금은 소득 비례로 지급한다. (부자들 기초 연금을 깎는다.)
    2. 둘째, 퇴직연금은 중간 인출을 막아 연금 역할을 하게 한다. (월급쟁이들 국민연금 의존도를 낮추자.)
    3. 셋째, 국민연금은 소득 대체율 보다는 연금 약자의 보장성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부자들 연금을 깎자는 이야기인데 이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 내 돈 내가 받아간다는 연금의 기본 골격을 흔드는 게 가능할까. 가난한 사람들 더줘야 하니 부자들은 좀 줄이겠습니다, 이건데 이거 감당할 수 있을까.
  • 정말 어려운 문제고, 그래서 이것은 정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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