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박보미 판사)은 하나은행 채용비리 1심 재판에서,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특정 지원자를 합격시키도록 하여 업무방해 및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함영주 전 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스펙 좋으면 무죄’의 새 버전 ‘될놈될이라 무죄’
사법부는 결국 은행권 채용비리 마지막 재판이자, 채용 비리를 단죄할 마지막 기회임에도 채용비리 책임자인 함영주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며 최소한의 책임조차 묻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함영주의 업무방해 혐의을 무죄로 판단했다:
“함영주 당시 행장이 일부 지원자를 추천한다는 의사를 인사 부서에 전달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합격권에 들지 못한 이들이 합격할 수 있게 어떤 표현을 했다거나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한금융 조용병 회장의 채용비리 판결에서 ‘스펙과 학벌만 좋으면 무죄’라는 궤변을 펼쳤던 사법부가, 이번 판결에서 직접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책임자인 은행장의 위력’을 인정하지 않는 궤변을 또 다시 펼치면서, 채용비리 행위를 단죄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채용비리, 그 사회적 의미와 특성
채용비리는 단순히 합격자와 불합격자에게만 속한 일이 아니다.
- 채용비리는 공정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다.
- 채용비리는 본디 위력에 의한 청탁은 직접 증거를 찾기 어렵기에 간접사실을 통해 행위의 존부를 판단해야 한다
- 채용비리는 대부분 인사 실무 담당자의 혐의는 회사의 관행이나 오랫동안 지속된 비리 행위에 근거한다.
이러한 채용비리의 사회적 의미와 그 특성에 비춰보면, 은행 수장인 함영주 전 은행장이 최종책임자로서 그 책임은 져야 함이 마땅하다. 특히 함영주 부회장은 재판에서 ‘본인이 지인 자녀 등 지원 사실을 인사담당자에게 전달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고, 고의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함 부회장이 “잘 살펴보라”라는 지시를 전형마다 반복하였으므로 인사 업무 담당자로서는 은행장이 해당 지원자를 다음 전형에 합격시킬 것을 지시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은행은 유죄, 책임자는 무죄?
한편으로 하나은행의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하여 법원은 “하나은행이 인위적으로 성별 비율(남자 4: 여자 1)을 정했고, 고정관념이나 차별이 명백했다”고 인정하면서도, “하나은행의 남녀 차별적 채용이 적어도 10년 이상 관행적으로 지속됐다”고 판단하면서 “이 사건에 대해 함 부회장이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라면서 함 부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하나은행 법인에만 벌금 700만 원을 선고하였다.
직접 지시한 자는 없는데 전 조직이 앞장서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신박한 논리이다. 은행의 관행이라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지 않고 수장으로서 비리를 묵인한 함영주 전 은행장의 책임을 묻는 것이 상식적이다.
더군다나 함영주 전 은행장은 하나은행에서 20년 가까이 재직(지점장, 지역본부장, 부행장, 은행장)했던 만큼 법원이 ‘함 부회장이 회사의 관행과 전혀 관계가 없다’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법인의 책임이 존재하는데, 그 법인의 수장에게 책임이 없다’라는 결론은 법원이 함 부회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비상식적인 논리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의 도덕적 해이
현재 함영주 부회장은 다가오는 하나금융지주 정기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선임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그러나 함영주 부회장은 채용비리 혐의로 형사 재판을 받으면서 치졸하게 4년 동안 법정투쟁을 끌며 자리를 유지하였고, 모든 책임을 직원들에게 돌리며 정작 은행장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이 사실 자체만으로 함영주 부회장은 차기 회장 자격이 없으며, 형사처벌을 받지 않더라도 함영주 부회장은 하나은행의 오랜 책임자로서 어떤 형태로든 책임부터 지는 게 순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금융지주가 함영주 부회장 선임을 강행한다면 하나금융은 채용비리를 부추기는 회사, 불공정한 회사로 낙인찍힐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하나금융이 채용비리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고 비리를 단죄할 의지가 있다면 함 부회장 선임 건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사법부는 다음 판결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비상식적인 논리로 권력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판결을 바로잡길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