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5일, 서울시 노원구에서 한 가족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사건 현장에서 함께 발견된 용의자가 피해자 중 한 명을 스토킹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국민적인 분노가 들끓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인 만큼 언론의 취재 열기도 뜨겁다. 하지만 이번 ‘김태현 살인사건’은 언론이 중대 범죄 사건을 다루는 잘못된 태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중대범죄 사건인 만큼 다양한 취재원으로부터의 정확하고 자세한 취재가 필요했지만, 언론은 ‘용의자가 피해자의 애인’이라는 주민의 추측성 인터뷰를 그대로 보도했다. 많은 언론사가 이를 받아쓰기했고, OBS경인TV는 “유력 용의자는 ‘큰 딸 전 애인’”이라며 단정적인 표현의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즉, 오보다.
범죄자에게 ‘이야기’를 씌우지 마라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태도는 언론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 위한 언론사의 전형적인 습관이다. 급기야 국민일보는 용의자가 온라인상에서 얼마나 나이스 한 유저였는지를 보도했다(“그 게임 매너남이 김태현이라니, 소름!” 유저들 깜짝). 이는 사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용의자와 함께 게임한 유저의 이야기 보다 범죄를 가능케한 구조적 원인에 대한 보도를 하는 것이 기자가 해야 할 일이다.
한 언론사는 그가 한부모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용의자의 범죄 행위를 분석하는데 성장 배경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용의자의 가정환경과 현재의 범죄를 엮어 보도하는 것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 편견을 언론이 앞장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목소리는 N번방 성범죄 사건 때 이미 거세게 나온 적이 있었다. 범죄자의 배경과 성격 등에 집중하는 순간 피해자의 존재가 흐려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다. 김태현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용의자의 스토킹과 살인, 이 두 가지 범죄일 뿐이다.
‘노원 세 모녀’ 사건이 아니라 ‘김태현 사건’이다
사건을 부르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는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 중심적으로 쓰인 사건명이다. 가해자의 이름과 범죄 행위를 중심으로 사건을 바꿔 불러야 한다. 그래야 선정적인 보도를 막고, 사건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이번 가해자의 신상이 공개되었기 때문에 ‘김태현 살인사건’이라 부르는 게 옳다.
‘김태현 살인사건’에서 언론은 오보, 범죄자 서사 부여, 피해자 중심의 네이밍까지 폐해란 폐해는 다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살인사건이 수많은 기삿거리 중 하나로 사람들 인식에 남게 될지, 스토킹 범죄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은 법 제정 및 피해 방지를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어낼지는 언론의 보도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언론이 갖고 있는 무게를 인지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김태현 살인사건’을 보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