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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모 민간기업의 입찰사건에서 발생한 담합 의혹에 연루된 5개 업체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관련 기사). 해당 사건은 자진신고로 공정위가 조사한 사건들인데, 법원은 처분시효가 도과되어 처벌할수 없다고 한 것이죠. 무혐의 처분의 근거가 된 판결은 셰플러코리아의 자동차 부품 담합 사건으로 담합에 참여한 회사 측의 자진신고로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어 과징금을 물린 사건이었습니다.

공정위는 그 전까지 관행적으로 자진신고 사건은 첫 현장 조사날을 조사 개시일로 보아왔는데요. 하지만 법원은 자진신고 사건도 다른 신고사건과 마찬가지로 신고접수일을 조사개시일로 봐야 한다고 보았고, 이에 따라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을 취소하라고 한 것입니다. 공정위가 지나치게 조사를 길게 끌수 없도록 경고한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미 드러난 기업의 불법행위를 처벌하기 어렵게 한 판결이 되었습니다.

오늘 ‘광장에 나온 판결’에서는 이 판결을 다뤄 보았습니다. 필자는 노종화 변호사로,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 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box]

셰플러코리아는 자동차용 베어링 시장에서 담합(부당공동행위)을 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 및 과징금 약 8억원을 받았다. 델파이파워트레인은 엔진부품(가변밸브타이밍) 시장에서 담합을 했다는 이유로 시정명령 및 약 34억원의 과징금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 정한 처분시한을 도과했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내린 시정조치 및 과징금을 취소했다.

법원은 공정위가 내린 과징금을 취소했다.
법원(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가 내린 시정조치와 과징금을 ‘처분시한 도과’를 이유로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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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

  • 셰플러코리아 사건: 서울고등법원 2018. 10. 12. 선고 2017누62381 판결,
  • 델파이파워트레인 사건: 서울고등법원 2018. 11. 16. 선고 2017누85377 판결 (이하 ‘대상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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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판결을 이해하려면, 처분시한에 관한 공정거래법 개정 연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2년 이전 공정거래법 제49조 제4항은 공정위가 사업자에게 시정조치, 과징금 등 처분을 하려면, “법 위반행위가 종료한 날부터 5년 이내”에 하도록 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정위가 사업자들의 은밀한 담합행위를 이른 시일 내에 파악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담합이나 불공정거래행위 등이 있은 후부터 5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조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면 공정위는 뒤늦게 위반행위를 확인하더라도, 시한이 지나서 처분을 내릴 수 없었다. 이에 제18대 국회는 위 공정거래법 조항을 개정해서, 1) 공정위가 위반행위에 대해 조사를 개시한 날부터 5년 내, 2) 조사를 개시하지 않은 경우에는 위반행위 종료일부터 7년 내에 과징금 등을 내릴 수 있도록 처분시한을 연장했다. 공정위가 행정처분을 통해 시장질서의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확대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입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국회는 소급적용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 개정 법률 시행일인 2012. 6. 22. 이후에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하는 사건부터 개정된 처분시한을 적용하도록 했다(부칙 제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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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사업자 A와 B가 2013년 12월 31일까지 위법한 담합행위를 한 경우를 가정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공정위가 조사를 개시하지 않았다면: 7년 이내인 2020. 12. 31.까지 과징금 등 처분이 가능하다.
  2. 공정위가 2017. 12. 31. 조사를 개시했다면: 조사개시일로부터 5년 이내인 2022. 12. 31.까지 과징금 등 처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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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위반행위로부터 7년 내에 조사를 개시하기만 하면, 그로부터 5년 내에 시정조치나 과징금 처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개정법은 공정위의 조사개시일을 기준으로 과징금 처분시한을 5년으로 확정(사실상 연장)하는 효과를 가져오므로, 조사개시일이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게다가 조사개시일에 따라 개정법 적용 여부 자체가 달라지므로, 조사개시일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공정위법 개정으로 처분시한을
공정위법 개정으로 과징금 처분시한을 사실상 연장하는 효과가 생겼다. 하지만….

‘조사개시일’ 그것이 문제로다 

대상판결에서도 핵심 쟁점은 조사개시일이었다. 두 사건 모두 담합에 가담했던 사업자의 자진신고(담합에 참여한 사업자가 과징금 감면 등을 받을 목적으로, 담합 입증에 필요한 증거를 공정위에 스스로 제공하는 것)로 진행된 사건이었는데, 공정위는 자진신고를 공정위 직권으로 조사가 이루어지는 ‘인지 사건’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실무 관행이 있었다. 나아가 인지 사건의 경우 조사개시일은 조사 진행이 대외적으로 처음 표시되는 날인 최초 ‘현장조사일’ 또는 ‘자료제출 요구일’로 보았다. 두 사건은 모두 개정 법률 시행일인 2012. 6. 22. 이후에 최초로 현장조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정위는 개정 법률에 따른 처분시한을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자진신고 사건을 인지 사건이 아니라, 신고 사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신고 사건은 제3자의 신고행위에 의해 조사개시 시점이 명확히 드러나므로, ‘신고일’이 조사개시일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자진신고 사건의 조사개시일도 ‘현장조사일’이 아니라, 공정위가 ‘위반행위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자진신고가 이루어진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공정위 고등법원

대상판결의 입장에 따르면, 셰플러코리아 사건의 일부 담합행위(두 번째 담합)와 델파이파워트레인 사건은 2012. 6. 22. 이전에 위반행위의 구체적 특정이 가능할 정도로 자진신고가 이루어졌으므로, 개정 전의 처분시한(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이 적용돼야 했다. 공정위가 과징금 처분을 한 시점은 담합이 종료한 시점으로부터 이미 5년이 도과한 상태였기 때문에, 법원은 공정위 처분이 처분시한을 넘겨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아쉬운 법원의 ‘엄격’ 해석 

공정거래법은 처분시한을 명확히 정하고 있으나, 처분시한의 기준이 되는 ‘조사개시일’은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 행정권 발동을 통제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법원이 공정위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사개시일을 해석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정위는 2005년경부터 공정위고시(부당한 공동행위 자진신고자 등에 대한 시정조치 등 감면제도 운영)로써 자진신고 사건의 조사개시일을 인지 사건과 같이 현장조사일 등으로 정하고 있었다. 또한, 실무적으로도 오랫동안 자진신고 사건을 인지 사건으로 분류해왔다.

자진신고자는 과징금 등을 감면받을 특별한 유인을 갖고 공정위에 담합 등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는 만큼, 일반적인 신고 사건과 달리 “자진신고자가 자신의 잘못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거나 누락시키지는 않았는지”, 반대로 “타 사업자의 잘못을 의도적으로 부풀리지는 않았는지” 등을 공정위가 인지 사건처럼 추가로 조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해보면, 자진신고 사건의 조사개시일을 인지 사건과 동일하게 최초 현장조사일 등으로 본다고 해도 결코 무리한 법률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상판결은 공정거래법이 신고 주체를 제한하고 있지 않은 만큼, 자진신고 역시 신고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신고’라는 명시적인 문언을 중요하게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상판결이 ‘신고’라는 법률문언을 중요하게 고려했다면, 조사개시일 역시 신고 사건이든 인지 사건이든 상관없이 말 그대로 ‘공정위가 조사행위를 시작한 날’로 보는 것이 일관적이지 않았을까.

법원은 "신고"라는
법원은 “신고”라는 명시적 문언을 중요하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상판결은 신고 사건의 조사개시일을 신고접수일로 규정한 공정위고시(공정위 회의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는 법률에 부합한다고 평가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관한 공정위고시는 조사개시일 해석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에 관한 공정위고시만이 법률해석의 근거가 될 수 없거나, 법률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같은 고시를 두고 평가가 달라진 것은 법률 부합성 때문이 아니라, 법원이 내린 결론에의 부합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대상판결은 침익적 행정처분의 근거 법령은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법리를 양보할 수 없는 확고한 영역처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 처분시한의 개정 취지, 담합 및 시장질서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행정처분의 목적은 과연 얼마나 고려됐는지 의문이다. 당위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 사건에서는 부당공동행위를 한 사업자에 대한 보호보다는, 공정위가 처분을 통해 실현하려던 공정한 경쟁질서를 더욱 민감하게 고려했어야 한다.

대상판결에 대한 아쉬움과 별개로, 공정위 역시 사건처리 관행이나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제도적인 정비나 인력 강화 등도 수반돼야 한다. 셰플러코리아 사건에서 담합에 참여했던 사업자들이 처음 자진신고를 했던 때는 2011년 8월말이었고, 2012년 2월초 자진신고에 대한 일부 보정이 있었다. 공정위는 2012년 7월초에 처음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그로부터 약 5년이 경과한 2017. 6. 27. 시정조치 및 과징금을 내렸다. 최초 자진신고를 기준으로 본다면, 처분까지 약 6년이 걸린 셈이다. 델파이파워트레인 사건도 자진신고가 있었던 2012년 5월초로부터 5년이 넘게 지난 2017. 10. 30.에 비로소 처분이 내려졌다. 위 두 사건에서 공정위는 처분까지 너무 긴 시간을 지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공정위는 대상판결에 잘못을 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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