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기문은 자신에게 붙은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좋은 뜻이며, 자신의 뛰어난 외교력을 칭찬하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견강부회’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겐셔와 ‘슬리퍼리 맨’
반기문이 자신의 별명이 좋게 해석될 수 있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 1980년대 독일의 외무장관을 지낸 한스-디트리히 겐셔에 붙은 슬리퍼리 맨(slippery man, ‘slippery’는 ‘미끄러운’ ‘약삭빠른’ ‘파악하기 어려운’의 의미)이라는 별칭이었다.
겐셔(아래 사진)가 ‘슬리퍼리 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별명은 반드시 좋은 뜻으로 붙은 것만은 아니다. 상반된 시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의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footnote]참조 자료: 포린 어페어즈, 새라 램버티 모네타의 기고문(PDF)[/footnote]
당시는 독일이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된 시절이었고, 국제무대에서 서독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적당히 눈치를 봐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였다. 당시 서독의 외무장관이던 겐셔로서는 뚜렷하고 분명한 노선이나 방침이나 메시지를 천명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았다. 미국이나 소련 어느 쪽의 심기도 건드려서는 얻을 게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어정쩡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게 상책이었다.
그런 겐셔의 처신 때문에 서독 주재 미국 대사인 리처드 버트는 그를 ‘슬리퍼리 맨’이라고 불렀다.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사람’, ‘미꾸라지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달변(voluble)이면서도 무엇 하나 뚜렷한 노선이나 입장이 없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모호한(cloudy) 화법, 그러면서도 전술적으로 기민한 겐셔의 언술과 처신 때문에 겐셔 외무장관을 딱히 무어라 규정하기 어렵다는(hard to pin down) 뜻이었다. 버트 입장에서는 꼭 칭찬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표현이었던 셈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겐셔의 ‘슬리퍼리 맨’이라는 별명이 반드시 좋은 뜻일 수만은 없다는 근거 말이다. 미국이나 소련 입장에서는 결코 칭찬일 수가 없다.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교활한 인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쪽은 서독뿐이다. 미국과 소련 어느 쪽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서독의 외교 정책을 기민하고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당시 정치 상황으로서는 바로 그런 미꾸라지 전법밖에 없었고, 겐셔는 그런 전략과 전술을 매우 잘 수행한 것이었을 뿐이다.
‘외교관’ 반기문과 기름장어
이제 반기문의 ‘기름장어’ 별명으로 돌아가 보자. 이것이 과연 좋은 뜻인가? 반기문의 별명으로 ‘기름장어’를 언급한 최초의 언론 보도는 2003년 말 서울신문 기사다.
반기문 외교보좌관은 ‘기름장어’다.정통외교관 출신인 반 보좌관은 외교적 수사의 달인이다.대통령 외국순방 등으로 브리핑할 기회가 많지만,기자들의 유도질문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미끈거리는 장어가 기름까지 발랐으니 기자 질문을 빠져나가는 솜씨를 알 만하지 않은가.
– 서울신문, 웃는돼지·엽기수석·기름장어·전자이빨·나봉남…청와대 실장·수석·보좌관 이색 별명 (2003-12-31 6면)
이것만으로는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외교적 수사의 달인’이라는 표현은 상황에 따라 좋게 볼 수도,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이고, ‘기자들의 유도 질문’이 어떤 내용인지 알 수가 없으니 그것을 ‘외교적 수사’로 빠져나가는 반 보좌관의 대응 방식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그는 유머가 있고 유연하기도 했다. 외교부-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부 합동 만찬에서 그의 유머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한번은 반 장관이 다른 장관들에게 외교관을 무어라고 부르는지 아느냐고 퀴즈를 냈다. 외교관이 아닌 우리는 알 리 없었다. 반 장관이 ‘기름 바른 장어’라고 해서 박장대소한 적이 있었다. 외교관은 ‘요리 빼고 저리 빼며 잘 빠져나가는’ 처신을 한다는 뜻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다.”
–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회고록 [칼날 위의 평화] 중 (경향신문, ‘여적’에서 재인용)
위에 인용한 이종석 회고록의 맥락에 기댄다면 ‘기름장어’, 혹은 ‘기름 바른 장어’라는 별명은, 적어도 반기문 씨가 외교관이나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좋은 뜻’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대선후보’ 반기문과 기름장어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공식’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 반기문의 대통령 선거 출마는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그가 앉았던 UN 사무총장 자리가 채 식기도 전에,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기자 회견을 하고, 꽃동네를 찾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지를 찾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위로 전화를 걸고, 이명박의 격려를 받고, 대학에서 노력하면 다 된다고 열변을 토하는 등의 행태는, 누가 보아도 명명백백한 정치적 행보이고, 차기 대통령 자리를 노린 언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씨는 중요한 정치 사안에 대해 외교관 시절, 더 나아가 UN 사무총장 시절의 언행을 답습하고 있다. 뚜렷한 노선도 메시지도, 정치적 공약도 내놓지 않는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자기만의 입장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한 몸 불사르겠다’라며 대선에 뛰어드는 순간, 반기문은 ‘기름장어’라는 별명도 함께 파기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기름장어라는 별명은 보기에 따라, 해석하기에 따라,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가령 그가 한국을 대표해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과 민감한 외교 담판을 벌이면서 저런 별명에 맞게 처신하며 한국의 국익을 끝까지 지켜냈다면, 기름장어라는 별명은 아주 좋은 뜻이리라.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맥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왔을 때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철학, 노선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는 게 최선이다. 온갖 검증성 질문에 회피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대답하는 것.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토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의 상식에 비추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답, 혹은 면피성 해명은 멀게 보아 결코 본인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자신의 조카나 친인척 비리에 대해, ‘전혀 몰랐다’라고 딱 잡아떼는 것. 1, 2년도 아니고 10년 넘게 병역 기피로 지명 수배 중인 조카에 대해 ‘몰랐다’라고 하면, 도대체 상식을 가진 사람치고 누가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고개를 끄덕일까?
반기문, ‘정치 교체’ 주체인가 대상인가
문제는 다시 맥락이다. 지금 국민이, 언론이, 반기문을 ‘기름장어’라고 부르는 그 전후 맥락은 결코 ‘좋은 뜻’일 수가 없다. 본인 혼자 그렇다고, 그럴 것이라고 강변한다 해서 엄연한 사실이 뒤바뀌지는 않는다. 1, 2년 전도 아니고 거의 40년 전의 사례, 아직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그것도 통독 전 서독의 외무장관까지 불러내어 자신의 별명을 합리화하려 애쓰는 반기문 씨의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기막혀서.
반기문은 80년대의 겐셔 유령을 끌어오는 대신 이렇게 대응했다면 어땠을까?
‘저에게 붙은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비록 외무장관 시절이나 UN 사무총장 시절에는 긍정적인 뜻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회피하지 않고, 에두르지 않고, 당당하고 솔직하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제 입장과 철학을 국민 여러분께 밝히겠습니다. 하여 ‘기름장어’라는 별명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상상이 그저 허망한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확실한 예감이 있다. 지난 몇 주간 반기문이 보여준 행보보다 더 뚜렷하게 그의 실체를, 진짜 색깔과 깜냥을 드러내 준 근거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보여주기식 의전, 시대 상황을 오독한 언행들, 젊은 세대의 좌절을 ‘노력 부족’ 정도로 치부하는 부박한 현실 이해, 청산과 타개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구태 정치인들과의 연대 등은 반기문 자신이야말로 스스로 천명한 ‘정치 교체’의 한 대상임을 본의 아니게 고백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로 보인다.
“전직 UN사무총장으로 지난 10년 동안 배우고 보고 느끼고 실천했던 경험을 공유하겠다”는 바람이 진정이라면, 아니, 정말로 배우고 보고 느끼고 실천한 게 있다면, UN 사무총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정치적 행보를 고집하기보다는 해외를 부지런히 돌면서, 본인의 말대로 “세계의 사람들의 평화롭고 인격이 존중되는 모든 사람이 배고프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라고 간곡히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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