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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코 마이클 크라울리 2016년 말, 폴리티코(Politico)의 마이클 크라울리(Michael Crowly, 사진)는 NPR의 한 프로그램에 등장해 흥미롭다 못해 섬뜩한 이야기를 했다:

“천체물리학의 개념 중에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암흑물질은 우주를 묶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는 볼 수 없죠. 하지만 우리는 그게 존재하는 걸 알고 있고, 그것이 일종의 중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알지만, 정확하게 그게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트럼프와 푸틴 사이에도 그런 것이 존재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트럼프는 끊임없이 푸틴의 나쁜 행동을 용서해주고, 누가 푸틴의 잘못을 지적하면 무시해버리고, 굳이 좋게 해석하려고 애쓰죠. (중략) 푸틴의 행동을 애써서 눈감아 주는 트럼프를 보면 뭔가 아귀가 맞지 않고 이상합니다.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진행 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NPR, Trump Seems ‘Willfully Blind’ To Putin’s Real Goals, 2016. 12. 21 중에서 

크라울리는 트럼프와 푸틴에게 아주 비슷한 성격, 즉 자아(ego)가 강하고, 앙심을 품고 살며 쉽게 화를 내는, 무자비한 지도자(strongman: 독재자) 기질이 있다고 하면서, 이 둘이 서로 비슷해서 마음이 통할 수도 있지만, 서로 대립하면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왜 푸틴을 옹호하려들까?

이제까지의 설명은 이랬다. 둘 사이에는 특별한 친밀감이 있고, 그런 이유로 트럼프는 친 러시아적 발언을 자주 했고, 그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러시아에 유리하다고 생각한 푸틴이 해커들을 동원해서 미국 민주당 컴퓨터를 해킹해 힐러리 클린턴에게 불리한 내용을 공격했다는 것이다(러시아의 해킹 사실은 미국의 정보기관이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푸틴을 향한 트럼프의 짝사랑 

Gage Skidmore, "Donald Trump", CC BY SA https://flic.kr/p/9hKqAn
Gage Skidmore, “Donald Trump”, CC BY SA

하지만 크라울리에 따르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미국 대선 운동 기간에 푸틴이 트럼프에 대한 호감을 밝히기 오래 전부터 트럼프는 푸틴에 대한 거의 전적인 지지를 보냈고, 트럼프 주위의 인물 중에는 러시아와 거래가 있거나 다른 이유로 지나치게 러시아와 가까운 인물들이 많다.

트럼프의 푸틴에 대한 짝사랑에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트럼프가 ‘강한 미국’을 외치면서 블루칼라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미국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세계문제에 개입하는 러시아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트럼프의 사업이 러시아의 큰 도움을 받고 있고, 그것이 알려지면 자신의 지지자들이 돌아설 것이며, 그 약점을 아는 푸틴에게 이용을 당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트럼프가 납세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전모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크라울리의 설명이다.

푸틴에게 약점 잡힌 트럼프? 

하지만 크라울리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한 걸음 더 나갔다.

러시아는 정적(政敵)을 협박(blackmail)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섹스 테이프를 몰래 촬영하거나, 심지어 아동 포르노를 컴퓨터에 몰래 심어놓고 경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만천하에 공개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푸틴에게 모종의 약점을 잡혔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대통령 (출처: 위키백과 공용, CC BY) https://ko.wikipedia.org/wiki/%EB%B8%94%EB%9D%BC%EB%94%94%EB%AF%B8%EB%A5%B4_%ED%91%B8%ED%8B%B4#/media/File:Vladimir_Putin_-_2006.jpg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대통령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2016년 12월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받은 느낌은, 폴리티코(Politico.com)의 정치부 수석 특파원이 공개 인터뷰에서 그런 ‘추측’을 할 때는 근거가 될 만한 모종의 자료를 보지 않았을까 하는 것. 다만 그 근거가 언론이나 정보기관의 객관적 조사로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종으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크라울리가 봤을 것이 분명한 그 자료가 어제 미국에서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히 “트럼프 자료(Trump dossier)”라고 불리는 이 자료는 그 존재조차 언론에서 언급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그러나 근거를 확인하기 힘든) 문서였는데, CNN이 처음으로 그런 문서가 존재한다는 것은 물론, 러시아 해킹 사건에 대한 보고자료의 일부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 되었다고 보도면서 다른 언론사들도 뛰어들었다.

트럼프는 CNN을 “찌라시(fake news)”[footnote]이 글에서 ‘fake news’는 문맥에 따라 ‘찌라시’ 혹은 ‘날조 기사’로 번역함. (편집자)[/footnote]라고 부르면서 강하게 반발했음은 물론이다. 마침 트럼프가 그동안 부정해온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설에 대해 처음으로 인정하는 발언(“I think it was Russia”)을 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러시아의 개입을 인정하는 발언을 한 자리는 공식 기자회견 자리였는데,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질문하려는 CNN 기자에게 소리를 지르다시피 “당신들(CNN)은 찌라시(fake news)고, 질문의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불편함을 숨기지 않았다.

CNN

버즈피드, 불난 데 부채질  

버즈피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입수한 문서 전문을 PDF로 공개했으며,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사들은 전문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이 문제를 대서특필하면서 전문을 내려받을 수 있는 버즈피드로의 링크를 걸어두었다.

그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정보기관(FSB)는 트럼프를 지난 5년간 관리하면서 키웠고(“cultivating”), 다양한 부동산 특혜는 물론 섹스 테이프와 같은 협박용 자료까지 확보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푸틴의 직접 명령으로 주도되었다는, 그야말로 핵폭탄급 주장들이다(글 앞에서 언급한 폴리티코의 크라울리는 이 자료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버즈피드

이 자료는 누가, 왜 작성했을까?

전직 영국 정보요원 크리스토퍼 스틸(Christopher Steele)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요원에게 일을 부탁한 사람들은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와 경쟁을 벌인 후보들이었다. 흔히 반대파 조사(opposition research)라고 부르는 이런 리포트는 워싱턴에서는 일상적인 절차이며, 대개 퇴직한 정보요원들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료는 사실일까?

CNN의 제이크 태퍼(Jake Tapper)는 ‘찌라시'(fake news)라는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미국 정보기관들은 트럼프 자료에 들어간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지만(“uncorroborated”), 그 자료를 작성한 사람(Christopher Steele)과 그가 사용한 소스는 신뢰할 수 있으며(“credible”), 그런 이유로 러시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협박할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고 했다. 이를 고려하면 내용의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취임 앞둔 트럼프와 ‘찌라시’ 논쟁 

내용을 전문으로 공개한 버즈피드는 선을 넘었는가? 미국의 포인터연구소(Poynter Institute), 그리고 심지어 트럼프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워싱턴포스트도 버즈피드가 확인되지 않은 문서 전문을 공개한 것은 ‘클릭'(트래픽)을 위해서 한 것이며 언론사로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ethical) 선을 넘었다고 비판했다.

물론 버즈피드는 전문을 공개하면서 자료에 들어간 내용은 확인된 내용이 아님을 명시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날조 기사(fake news)의 문제가 크게 대두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문서가 일으킬 파장을 생각하면 무모한 결정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근혜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유출 사건에서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그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에 말했다(2014년 12월 7일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결위원 오찬 중 발언). "문건 유출행위는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하고,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을 주문한 지 엿새 뒤에 있었던 발언. ⓒ SBS화면
박근혜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유출 사건에서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그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에 말했다(2014년 12월 7일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결위원 오찬 중 발언). “문건 유출행위는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하고,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힐 것”을 주문한 지 엿새 뒤에 있었던 발언. ⓒ SBS화면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의 버즈피드 비판에는 ‘언론사 기자들은 입수해서 보고 있는 자료를 일반인들이 보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하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으며, 이는 한국의 언론, 증권가에서 돌아다니는 (흔히 “찌라시”라고 불리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 보고서에 대한 논란과 다르지 않다.

특히 버즈피드는 지난 미국 대선 때 ‘찌라시'(fake news)가 주류 언론의 보도보다 더 많이 유통되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까지 보여주었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나서서 검증되지 않는 자료를 공개했는데,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문제의 핵심에는 “뉴스의 생태를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하는 질문이 존재한다.

  1. 에드워드 스노든의 정보 공개가 용기 있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정보를 (마치 약은 의사와 약사만 다룰 수 있는 것처럼) ‘전문가들에게만 허용이 되어야 하는가?
  2. 뉴스의 소비자와 생산자의 구분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가짜 뉴스를 선별할 줄 모르는 일반인과 그만한 상식이 있는 사람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간단하지 않은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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