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최근 프랑스의 집권 사회당을 거의 쪼개버릴 만큼 묵직한 이슈는 많았다. 헌법개정안에 들어 있는 테러리스트 국적 박탈 이슈가 그랬고, 아르노 몽부르의 사임과 에마뉘엘 마크롱의 등장도 그랬다. 그리고 이번에는 노동개혁(개악?)이다. 어째서 이렇게 시끄러울까?

시작은 조용했다. 때는 2015년 4월, 발스 총리는 콩브렉셀(Jean-Denis Combrexelle), 국무원(Conseil d’État, 정부입법에 자문 역할을 한다) 사회분과위원장에게 노동법 개혁에 대한 보고서를 의뢰한다. 당연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그의 보고서는 2015년 9월에 나왔다. 노동권에 대한 완전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9월, 새로이 노동부 장관으로 엘 콤리(Myriam El Khomri)가 오른다. 정부는 1978년생 엘 콤리에게 모든 걸 맡기지 않았다. 콩브렉셀 보고서를 반영할 위원회를 구성하여 2016년 1월에 새로운 보고서가 나왔다. 계속 보고서만 나온 느낌인데, 문제는 한 달 뒤에 터졌다.

엘 콤리 장관, 모로코 출신의 2중국적자이다. (출처: 프랑스 정부) http://www.gouvernement.fr/ministre/myriam-el-khomri)
엘 콤리 장관, 모로코 출신의 이중국적자이다. (출처: 프랑스 정부)

2월 18일, 프랑스 언론 파리지엥(Le Parisien)이 국무원에 제출된[footnote]보통 법안 상정 전에 국무원의 심사를 받는다.[/footnote] 노동법 개혁안에 대한 특종을 터뜨린 것이다. 이때부터 난리가 났다.

프랑스 노동법 개혁안(개악안?)의 내용 

몇 가지만 말해 보자:

  • 이유 없는(!) 해고자에 대한 실업 수당도 상한을 뒀다.
  • 게다가 이 해고의 재량도 더 확대됐다.
  • 하루 노동시간도 10시간이 유지됐지만, 이 10시간도 노사합의를 통해 12시간으로 늘릴 수 있다. 초과근무를 합친 주당 48시간이 최대 노동시간인데, 이 시간도 60시간으로 확대했다.
  • 가장 큰 논란은 주당 노동시간 35시간. 주당 노동시간을 더 늘리진 않았지만, 합법적으로 늘릴 수 있는 조건을 확대했다. 게다가 늘어나는 노동 시간에 대한 추가근무수당에 상한을 둬서 25%나 50%가 아닌, 10%만 더 받게 했다.[footnote]물론 노사합의를 통해 더 늘려서 받을 수는 있다.[/footnote]

[box type=”info”]

발스 총리와 마크롱 장관이 35시간만은 지켜졌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지, 아니지, 미리암. 팻말은 놔둘 거야. 예쁘잖아.”

[/box]

노조와 대화 없이 개정안 밀어붙인 정부 

단, 이 개혁안을 만들면서 정부는 노조와 별다른 대화를 하지 않은 채, “위원회”만으로 추진했었다. 가령 유력 노조 중 하나인 ‘노동자의 힘(FO)’은 노동부가 법안을 국무원에 제출하기 1시간 전에서야 열람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엘 콤리 장관은 한 마디 더 거들어서 논쟁이 더욱 심해졌다.

헌법 제49조 제3항이다.

[box type=”info”]


“Ce n’est pas un acte d’autorité, c’est un acte… 작성자 gouvernementFR

헌법 제49조 제3항에 대해 변명(?)하는 발스 총리, 권력 행위가 아닌 효율성 추구라 말한다. 마크롱 장관의 경제법이 통과할 때의 이야기이다.

[/box]

이 조항이 무엇이냐면, 정부가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은 채 법안을 법으로 제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우회조항이다. 이걸 막으려면 의회가 행정부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해야 하지만, 보통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 안 그래도 법안 내용 때문에 사회당이 둘로 나뉘었는데, 헌법 제49조 제3항을 이용하느냐를 두고 또 당이 나뉘었다.

발스 총리의 무리수,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어차피 집권 사회당 내에서 다수의 찬성을 끌어내지 못할 것을 알아서 그랬을까? 일단은 당사자들과 그동안 안 했던 대화부터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 ‘대화’의 발표를 엘 콤리 고용노동부 장관이 아니라, 발스 총리가 발표했다. 그리고 이 ‘대화’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경제부 장관도 같이 참여하기로 했다.

발스 총리 (출처: Fondapol, CC BY SA) https://flic.kr/p/7WswVm
발스 총리 (출처: Fondapol, CC BY SA)

겉으로는 엘 콤리가 지휘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발스 총리(그리고 마크롱 장관)가 진두지휘한다는 의미다. 쉽게 말해서 엘 콤리 장관은 얼굴마담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로는 위에 언급된 보고서도 막판에서야 볼 수 있었고, 엘 콤리 장관의 의견은 반영이 안 된다고 한다. 결국은 중심에 마티뇽(총리 관저)이 존재한다.

노조도 그렇고, 국민 반대도 현재 매우 강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법안 수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반응을 애초에 왜 감지하지 못했을까? 헌법 제49조 제3항을 왜 함부로 언급하게 놓아뒀을까? 쉽게 통과하리라 예상했을까?

‘노동법 사양합니다'(Loi Travail : non, merci!) 사이트는 3월 초에 급하게 만들어졌음에도 서명자가 15만 명을 넘어섰다. 프랑스 국민 여론도 무려 70%가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발스 총리는 과연 모든 불리한 상황을 넘길 수 있을 것인가? 혹시 올랑드가 재선 경선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발스의 음모일까?

“노동법, 사양합니다”에서 사용하는 이미지, 엘 콤리 장관 뒤에 사양한다는 문장을 집어 넣었다. (출처: www.loitravail.lol) http://loitravail.lol
‘노동법, 사양합니다’에서 사용하는 이미지, 엘 콤리 장관 뒤에 사양한다는 문장을 집어 넣었다. (출처: www.loitravail.lol)

관련 글

2 댓글

  1. 잘 읽었습니다. 하우스 오브 카드 초반부가 떠오르는 상황이군요…ㅋㅋㅋ
    헬조선 헬조선 하지만 신자유주의 앞에서는 만국공통으로 점점 살기 팍팍해지는 거 같습니다..

댓글이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