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x type=”note”]점점 더 지갑은 가벼워지지만, 쌓아놓은 물건은 많아집니다. 월급 타면 꼭 하나 사고 싶었던 ‘명품’과 각종 폭탄세일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모든 욕망과 유혹의 틈 속에서 ‘가볍게 살기’ 위한 노하우를 독자와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box]
요즘 인기 TV 프로그램 중 하나인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다 보면 출연자들의 냉장고에서 화석에 가까운 음식 재료들이 등장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오래된 살림일수록 냉동실에는 몇 년이 넘도록 방치된 것들이 있다. 아까워서 버리질 못하고 쓸 곳이 없으니 사용하지 못한 채 잊힌 것이다.
쓰레기와 함께 살기?
집 안에 물건을 잔뜩 쌓아두고 그 물건들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 이들을 호더(hoarder)라고 한다. 호더는 저장강박증을 앓는 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저장강박증은 엄연한 병이다.
최근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연구팀은 저장강박증의 원인을 ‘행복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세로토닌 부족에서 찾고, 세로토닌이 풍부한 음식으로 요거트, 김치 등을 뽑았다. 고독과 우울을 장신구처럼 달고 사는 현대인은 누구나 호더가 될 위험에 빠져있다고 말해도 심한 과장은 아닐 것이다.
호더까지는 아니라더라도 자기 뜻과 상관없이 쓰레기와 함께 사는 사람은 많다. 쓰레기를 더는 쓸 수 없어서 버려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말이다. 냉장고, 약통, 여자라면 화장대에도 종종 쓰레기는 존재한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추억의 서랍에도 그저 막연한 미련만으로 쓰레기가 된 물건들은 존재한다.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물건이 집 어딘가에 있다면 그만큼 당신의 에너지와 공간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냉장고 다이어트를 부탁해
냉장고는 크면 클수록 좋을까? 시중에 나온 냉장고를 보면 갈수록 장롱 크기로 변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족 수는 줄어든다는데 냉장고의 크기는 거의 종갓집의 대가족 살림을 하고도 남을 정도다.
프랑스 여자는 날씬하다(정확히 말하면 날씬했었다. 최근에는 패스트푸드 등의 영향으로 비만 인구가 급속히 느는 추세다). 2005년 베스트셀러였던 [프랑스 여자는 날씬하다]는 책에서 저자 미레유 길리아노는 이유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 꼭꼭 씹어 먹는 습관
- 그날 먹을 신선한 음식재료를 그날 바로 요리하기
- 끝으로 자주 걷기
프랑스 여자가 날씬하다는 속설이 옛날이 되어간다고 해도, 이 세 가지 습관이 가볍고, 건강한 몸을 위한 생활습관이라는 점은 변함없다. 물론 이렇게 최소한의 음식재료를 필요한 만큼 사용해 그날그날 요리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대부분 바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서 엄청난 양의 식품을 사 와서 커다란 냉장고에 코끼리를 밀어 넣듯 저장한다.
냉장고의 공간이 크면 더 많이 채우고 싶어지고, 변덕스러운 입맛 때문에 어떤 재료는 포장도 뜯지 못한 채 변질될 때까지 꺼내지 않는다. 이러한 낭비는 음식물 쓰레기로 돌아온다. 쓰레기봉투 값이 올랐다고 분노하기 전에 냉장고에 아무 음식재료나 무작정 채워 넣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이를 개선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냉장고를 작은 것으로 바꾸는 것. 물론 이러한 극단적인 방법이 어렵다면 늘 사용하는 채소와 같은 기본 재료만 70~80% 갖춰 두고 20~30%의 주요 음식재료는 매일 사는 것도 방법이다. 냉장고는 식료품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라 내일 먹을 것을 잠깐 ‘보관’하는 곳이다.
추억의 유통기한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사진 파일을 가상의 공간에 무한정 저장하거나 쉽게 공유할 수 있기 전에 사진 앨범은 가정마다 가장 중요한 보물처럼 존재하곤 했다. 하나하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은 결코 버릴 수도 없고 분실해서도 안 되는 개인만의 역사책인 것이다.
그런데 추억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앨범들을 정보가 수정된 지 오래인 옛날 백과사전처럼 보관만 하는 것은 아닐까? 두껍고 무거운 앨범들이 공간만 차지하고 먼지만 쌓인 채 열어보지도 않는다면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변경시키는 편이 관리와 함께 추억을 꺼내볼 때 편하다.
구글이나 네이버가 제공하는 무료 드라이브 저장공간 외에도 여러 웹하드, 외장 하드 등을 통해 사진을 보관할 수 있다. 원할 시에 공유하기도 쉽고 어디서든 꺼내보기도 쉽다. 하지만 추억은 가장 정리하기 어려운 것. 디지털화되어 있다고 해도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 있는 인화된 어떤 사진은 특별한 법이다. 효율성 때문에 감성까지 죽일 수는 없는 일. 이때에는 영감을 주는 몇 장의 사진만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디지털 아카이브로 만들어 둔다.
취미생활 중에 영화, 공연, 전시 등의 티켓을 모으는 경우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디지털화하는 것은 어떨까? 집에 잔뜩 쌓인 티켓을 다시 꺼내보며 감촉을 느끼고 과거의 특별한 순간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추억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어느 순간 다시는 꺼내보고 있지 않다면, 습관적으로 모으기만 할 뿐 쓰레기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면 바로 버리거나 디지털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무척 소중한 몇 가지 티켓은 소지해도 될 테지만 그저 습관화되었다면 버리는 편이 좋다.
가볍게 살기 위해선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꺼내봐야 할 계기가 있어야 떠올릴 수 있을 뿐. 쌓아만 두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다면 오히려 추억에 대한 디지털 폴더를 만드는 편이 더 오래오래 추억을 간직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