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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음식 만화 분류법: 요리 만화에서 끼니 만화까지

일본만화는 워낙 세대별 소재별로 세분화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예전에 대부업계를 다룬 만화를 재미있게 본 후 연이어 세무 업무를 다룬 만화, 회계 전략을 다룬 만화 등등 뭔가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장르를 쫙 훑었던 적도 있다. 돌고 돌아 요새 내 취향은 확실히 ‘음식 만화’. 막상 이 장르의 연혁은 또 잘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 집 우편함에 꽂혀있던 모 유제품 회사 팸플릿에 일본 만화 [맛의 달인]의 한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우리 허영만 화백의 [식객]보다 최소 20년 이상 저들은 뭔가 계통을 밟아왔겠구나 하는 정도.

요리 만화 / 먹는 만화

그런 좁은 견문으로나마 일본 ‘음식 만화’의 카테고리를 크게 나누면 ‘요리 만화’와 ‘먹는 만화’ 되겠다. 물론 ‘먹는 만화’에서도 시식을 위해 요리가 선행되어야겠으나 주된 에피소드가 요리하는 손보다 먹는 입 쪽에서 나올 경우 내 멋대로 ‘먹는 만화’로 칭한다.

미스터 초밥왕 / 노부나가의 셰프 /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 여자의 식탁 / 술 한잔 인생 한 입

[미스터 초밥왕], [노부나가의 셰프] 등등이 전자라면 [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여자의 식탁], [술 한잔 인생 한 입] 등이 후자에 해당하겠다. 여기에는 [먹짱]처럼 초인적인 먹보 대결을 펼치는 만화도 속하는데, 같은 작가가 그린 [대결! 궁극의 맛]은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들이 바깥세상 미식 담화를 펼치며 누가 더 침샘의 자극을 버티는지 겨루는 얘기다. 범인을 취조하는 동안 지역의 덮밥과 소바를 읊어대며 상대의 허점을 줍는 [메시바나 형사 타치바나]란 만화도 있다. 대단하다, 정말.

프로 만화 vs. 끼니 만화

한편, 이런 분류도 가능하겠다: ‘프로의 세계’와 ‘일상의 끼니’ (줄여서 ‘프로 만화’ vs. ‘끼니 만화’). ‘프로 만화’는 주로 요리사나 요리사 지망생 또는 상당한 미식가의 모험(?)을 통해 깊고 넓은 맛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거나 남다른 인간사를 중계한다(물론 예외는 있다). 반면, ‘끼니 만화’는 우리 주변의 갑남을녀들이 빤한 예산과 일정 속에서 어떻게 한 끼를 때우는지를 보여주며 그 희로애락에 공명케 한다.

어느 쪽이 더 재밌느냐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 어느 쪽이든 사람 마음을 잘 풀어낸 만화가 재밌다. 단 아무래도 프로 만화 속 인물들은 자신이 속한 업계의 상투적인 전형 또는 교훈을 전하는 화자를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읽다 보면 좀 지루할 수도 있다. 황홀한 활어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어시장 삼대째], 밥상에 대한 참 좋은 제언을 담고 있는 [현미선생의 도시락] 등이 그래서 몰아보기엔 졸린다.

어시장 삼대째 / 현미선생의 도시락 / 심야식당 / 어제 뭐 먹었어 / 은빛 숟가락

반면 [심야식당]의 화자는 요리를 만드는 주인이지만 밤참을 먹으려 드나드는 손님들의 다양한 사연이 결국은 메인 메뉴. 따라서 끼니 만화로서 재미있다. 게이 커플의 저녁 식사를 다룬 [어제 뭐 먹었어]는 단연코 이 방면의 수작. 아, 말수 적은 미소년이 입원한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 끼니를 건사하는 [은빛 숟가락] 같은 작품은 그 다정한 마음 씀씀이가 왠지 좋은 프로 만화로 이어질 듯하다. 예전에 [Heaven?]이란 레스토랑 만화가 그런 경지를 보여줬다.

끼니 만화의 키워드 ‘혼자’

어쨌든 요새는 ‘끼니 만화’ 쪽이 더 화제가 되는 추세다. 드라마화되는 작품들만 봐도, 각지의 명품 반찬을 배달해 먹는 혼자의 시간에 버닝하는 주인공을 다룬 [주문배달의 왕자님], 남편이 타지에 근무하는 터라 매일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어떻게든 즐겁기 위해 발버둥 치는 새색시를 그린 [하나씨의 간단요리], 혼자 하는 식사의 양식미를 제목에서부터 표방한 [고독한 미식가] (사실 이 만화는 꽤 연식이 오래됐는데 드라마의 성공으로 다시 회자한 경우), 뜬금없이 나타난 식탐녀가 누군가 혼자 때우려던 한 끼의 정서를 풍성케 해주는 이야기 [먹기만 할게] 등등.

주문배달의 왕자님 / 하나씨의 간단요리 / 고독한 미식가 / 먹기만 할게

써놓고 보니 ‘끼니’ 이상으로 ‘혼자’가 키워드다. 이 소박한 식욕들의 기저에는 딱히 뭘 바꿀 수도, 지를 수도 없는 무기력이 전제돼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먹는 것 하나라도 사람 사는 것처럼 때우는 서사가 한일 양국에서 ‘그나마 출구’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진짜 출구가 아닌 솔거의 그림이 될 수도 있겠다.

‘먹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긍정하는 것과 실제 우리 삶의 현저한 근심을 마취시키는 것. 그 맛의 한 끗 차이를 아슬아슬 넘어선 ‘먹는 만화’를 또한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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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초대필자, 영화감독

영화도 만들고 시트콤도 만듭니다. 삼천포 가는 길(2001), 우익청년 윤성호(2004), 졸업 영화(2006), 은하해방전선(2007), 시선 1318(2008),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영화 2010, 시트콤 2012), 출출한 여자(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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