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코리아 칼럼] 말뿐인 기후정의 넘어 책임있는 행동에 나설 때. 네팔 대홍수의 경고, 문명 대전환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우석영 / 경희대 기후-몸 연구소 연구원) (⏳6분)
믿기 힘든 장면이 TV에서 왈칵 쏟아져 나왔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영상이 반복해서 우리 눈을 채웠던 것처럼, 똑같은 장면이 우리의 동공을 키웠다. 진흙과 암석이 섞인 흑갈색 물의 덩어리.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동물 같았다. 포효하는 이 물의 괴물은 산에서 달려와 시설과 마을, 버스와 사람들을 순식간에 삼켰다. 그러고는 원한이 풀렸다는 듯 잠잠해졌다.
지난 8월 26일 발생한 네팔 산사태는 여러 면에서 충격적이다. 우선, 빙벽 빙하 붕괴로 인한 피해의 규모가 역대 최대이다. 9월 4일 기준 사망자 약 1,280명, 실종자 약 4,760명, 파손 주택 수 약 7,500채, 이재민 약 160만 명…. 죽은 사람, 죽었을지 모르는 사람만 6천 명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600명 정도가 외국인이니, 그저 네팔 사태만도 아니다.

네팔 홍수, ‘괴물’의 평균 속도는 180km
우리를 놀라게 하는 건, 사건의 단기성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피해가 일어났음에도, 피해가 발생한 시간은 경악스러울 정도로 짧았다. 그만큼 물의 운동은 고속이었다. 얼마나 빨랐을까? 붕괴 발생 지점부터 렌데콜라 계곡을 따라 국경 지역까지 20~22km 정도를 달려가는 동안 (7분간) 괴물의 평균 속도는 시속 180km였다.
이 고속성은, 어떤 원인의 느린 축적이 재앙적 결과물로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하기에 우리에게 공포감을 준다. 질 나쁜 생활이 수십 년 쌓이다가 어느 날 암 선고라는 청구서를 우리 앞에 들이밀 듯, 온실가스 문제에 대한 미온적 대응이 쌓이고 쌓이다 어느 날 붕괴적 기후 재난으로 우리에게 닥치는 것은 아닐까? 화면 속 흙탕물 괴물을 자꾸만 보게 되는 것은, 우리가 이런 의구심에 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은 ‘경고성 파국’이라고 봐야 한다. 경고성 파국이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실제 파국은 아니지만 그런 파국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는 수준의 파국적 사건을 말한다. 이런 경고성 파국도 그 자체로 엄청난 재앙이니 일어나서는 안 되지만, 안타깝게도 앞으로 인류사회를 각성하게 할 것은 계속해서 이러한 경고성 파국일 것이다.

빙산의 일각, 히말라야는 왜 무너지는가
이번 네팔 산사태가 충격적인 것은,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오히려 ‘빙하호 홍수(GLOF, Glacier Lake Outburst Flood — 빙하가 녹아 생긴 호수가 둑이 터지듯 붕괴하며 발생하는 홍수)’와 ‘빙석·암반 붕괴형 홍수’ 두 가지 유형의 사건이 21세기 들어 히말라야 지역에서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빙하호는 히말라야 전역에 최소 3천 개, 최대 3만 개로 추산된다(연구자마다 호수의 크기 기준이 달라서 결과값이 다르다). 이 가운데 최소 70개는 위험하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말로 지구온난화일까? 붕괴가 시작된 곳은 랑탕 리룽산의 한 빙벽(해발 5,200미터 지대)으로 추정된다. 이 빙벽을 붕괴시킨 힘은 무엇일까? 빙벽 내부를 채웠던 일부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그리하여 내부의 결정 구조가 느슨해지면서 빙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결국 트리거는 지구의 고온인 셈이다. 저 흙탕물 괴물의 무서운 고속 운동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어떤 몸, 자극된 몸이다. 인간들에 의해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지구, 그리하여 끝내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지구, ‘우리의 가장 큰 적'(제임스 러브록)이 되고 만, 자극된 지구의 몸 말이다.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들
방송에 초대된 여러 전문가가 이런저런 말을 내놓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억지 주장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사태의 구체적 원인과 근본적 원인을 똑바로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냐는 앵커의 결정적 질문에는 시원한 답변을 찾기 어렵다. 인프라를 바꾸고 경보시스템을 만들어 골든타임 안에 대피하게 해야 한다는 정도가 주된 대책이라고 논의되는 수준이다. 물론 네팔 상류 관측소가 통째로 쓸려가 조기경보가 사실상 무력화됐던 사례에서 보듯 경보시스템 문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근본 대책일 수는 없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터무니없이 낮은 네팔인들이 북반구 부국의 온실가스 배출 행위의 희생양이 되고 만 상황, 즉 기후불평등 문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그나마 다소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의 지적에 그치고 만다.
정녕 우리는 이것 이상을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앞으로 이런 수준의 재앙이 한국에도 일어날지 모르니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비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할 일은 없는 걸까? 지구와 네팔인, 희생자들의 영령은 우리에게 결단 어린 행동을 청구하고 있다. 어떤 행동일까? 이와 관련해 여러 전문가의 입에서 아직 나오지 않은 말, 그러나 듣고 싶은 말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네 가지 과제: 통합적 기구 필요
첫째, 다수의 사망·실종자가 나오는 기후 재난의 경우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가 중요하지만 어려울 수 있음을 이번 사태는 일깨웠다. 국내에서 이런 대참사가 발생할 경우, 희생된 분들의 존엄성을 끝까지 보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난 시 사망자 시신 관리에 관한 국제 매뉴얼에 충실해야 하지만, 그 외에도 장례(매장), 희생과 피해의 보상 등과 관련한 기준과 방안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둘째, 누가 이런 일을 맡아서 해야 할까? 작금의 사후 약방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신설) 식 재난 대응 방식은 폐기했으면 한다. 기후 재난 뉴노멀 시대가 도래했음을 충분히 인정하고, 유럽 국가들처럼 항시적이고 통합적인 기후 재난 관리 기구를 운영해야 한다. 지금은 재난안전관리본부, 소방청, 해양경찰청 등으로 담당 기구가 쪼개져 있다.
각 지역의 위험 분석, 피해 최소화를 위한 시설물, 인프라, 자연 등의 조정, 핵심 인프라 보호, 재난관리자 교육, 경보시스템 보완, 구조와 복구, 구조·복구 역량(군부대, 소방청, 자원봉사자 등)의 관리, 희생자 관리, 국가 차원의 피해보상 체계 구축과 집행 등이 주요 업무여야 할 것이다.
셋째, 손실과 피해 대응기금(FRLD, 2023년 시작)에 내는 한국의 기여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리하여 이번처럼 기후불평등이 분명할 경우, 불평등으로 인한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더 씻기도록 애써야 한다. 한국이 2024년 제2차 FRLD 이사회를 계기로 발표한 신규 출연금(약속한 금액)은 고작 700만 달러(약 93억 원)에 불과하다. 2024년 <네이처>에 발표된 한 연구가 추산한 연간 기후변화 피해 금액(3,950억 달러)의 0.00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이 경제적 부국이라면, 부국다운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넷째, 근본적으로 기후위기는 현 문명의 위기이고, 따라서 문명사적 전환을 요구한다. 빙하가 녹는 문제는 단순히 RE100을 달성한다고, 발전소나 공장, 건물에서 화석연료 연소량 줄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무제한의 생산-소비-폐기라는 사이클로 돌아가는 생산주의 경제, 시멘트, 철강, 석유화학, 농축산업 등 주요 탄소배출 산업, 이런 산업들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금융투자 등…

이제 ‘성숙’은 ‘생존’의 문제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조정하는 식의, 경제 전체의 ‘방향 이동’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계속해서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고 구조적 해결책만이 해법인 것도 아니다. 다량의 온실기체 배출로 귀결되는 무분별한 식사, 상품·에너지 소비, 여행, 오락 행위 등 개인들의 행위 자체가 ‘경제 문제’와 깊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개인들의 행위 선택은 욕망, 미감, 에토스, 생각 등 마음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인간과 세계에 관한 생각인 우주론은 특히 중요하다. 그러니까 마음, 개별 행동, 전체 경제 구조가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전체의 몸이 바뀌지 않는 한, 지구의 고온 문제가 해결되기는 요원할 것이다.
이 전체의 바뀜은 어떤 식으로 가능할까?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식의 인간 변화로만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자신의 마음의 변화, 좋은 삶에 관한 우리의 감각 자체의 변화하지 않고 ‘빙하가 녹는 문제’의 해소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야말로 결정적이다.
관점의 문제는 생사의 문제가 되었다. 성숙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무너진 빙벽의 잔해물을 잔뜩 거느리고 우리의 시야로 육박해오는 저 흙탕물의 괴물은 바로 이것을 알아차리라고 다급히 촉구하는 것은 아닌가. 늦지 않았다.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