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소셜코리아 칼럼] 행정은 정치를 구원할 수 있는가? 이재명표 실용 행정이 더해야 할 세 가지. (은재호/정치·행정학자) (⏳4분)

이재명 정부는 국정 3대 원칙으로 경청과 통합·공정과 신뢰·실용과 성과를 천명했다. 이는 정부가 이념 투쟁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른바 이재명표 ‘실용 행정’의 탄생이다.

양극화의 늪에서 건져 올린 실용 행정

이러한 선택은 대통령 개인의 성향을 넘어 한국 정치가 직면한 처참한 현실에서 불가피한 처방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정치는 양극화의 늪에 빠져 상대방의 정책이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되더라도 무조건 반대부터 하는 ‘거부권 정치’, 비토크라시(Vetocracy)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전쟁터가 된 사이 민생은 방치되고, 국가는 5년 단임의 시간표에 갇혀 장기 전망을 상실한 지 오래다.

정치가 표류할수록 더 간절해지는 게 바로 행정의 역할이다. 정치가 아무리 거칠게 충돌해도 민생은 흔들리지 않고 보장된다는 최소한의 믿음, 그것이 없이는 국가 시스템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진다. 이재명표 실용 행정에 세간의 기대가 쏠리는 것은 명백한 이유가 있다. 정치가 휘청거릴 때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유능함, 이것이 실용 행정의 첫 번째 가능성이다.

12.3 내란의 교훈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실용적’이라 해도 행정이 궁극적인 해법일 수는 없다. 행정이 정치의 공백을 메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정 운영의 중심은 선출된 권력에서 임명된 관료로 이동하며 책임 정치의 원리를 약화해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급속히 소진하게 된다.

이미 한국 행정은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이끈 ‘발전국가’의 유제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당시 일부 고위 관료들이 보여준 행태를 보라. 그것은 지난 시기에 우리가 익히 보았던 ‘발전행정’의 전형적인 구태였다. 이들은 헌법 가치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성찰적 사유를 생략한 채 ‘질서’와 ‘안정’의 기능적 효율성만을 숭배하며 권위주의적 리더의 시대착오적 ‘결단’을 옹호했다.

기술관료주의에 매몰된 행정은 복잡한 민주적 절차와 사회갈등을 단지 기술적 ‘오답’으로 치부하며,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도 효율성을 저해하는 ‘잡음’으로 간주한다. 여기에서 민주적 절차 같은 규범적 정당성은 효율적 문제해결 같은 성과 정당성을 위해 언제든 유보될 수 있는 부차적 가치로 치부되고, 국가 제도는 다원적 숙의 공간이 아니라 질서 유지 도구로 전락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이 국정의 주체에서 통제 대상으로 전환되는 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자칫 효율과 성과에만 집착하면, 실용 행정도 기술관료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효율성과 수치에만 집착하던 발전국가의 경로 의존성을 답습하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재명 정부의 청와대가 과거 정부의 시민사회수석실을 경청통합수석실로 개편했다는 사실이다. 참여의 통로를 넓히고 소통의 질을 높여 기술관료주의의 독주를 막겠다는 의도다. 행정의 전문성을 국민의 목소리와 결합해 국민주권의 원리를 정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한편,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로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의지, 실용 행정의 두 번째 가능성이다.

이재명표 ‘실용 행정’ 위한 세 가지 제언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보자. 실용 행정이 표방하는 경청과 통합은 과연 국민주권의 원리를 우리 행정 안에 내재화하며 비토크라시의 빗장을 풀 수 있을 만큼 효과적인 전략을 품고 있는가? 경청통합수석실은 과거의 시민사회수석실처럼 시민사회의 민원 창구에 그치면 안 된다. 오히려 소통의 문법과 구조를 재설계하는 근본적인 처방으로 우리 행정의 체질을 개조하는 정부혁신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소통의 시점, 언어, 관계를 바꾸는 세 가지 변화가 핵심이다.

첫째, 소통 시점의 변화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초기 정책 단계부터 시민 참여를 제도화해야 한다. 1998년 아르후스 협약(Aarhus Convention)의 정신은 모든 선택지가 열려 있는 초기 단계의 대중 참여를 강조한다. 그래야 특정 기술이나 방식에 매몰되지 않고 처음부터 가장 사회적 합의가 높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미 입지와 기술적 대안이 결정된 후의 공청회 등은 ‘답정너’의 수단이 되어 갈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증폭시킬 뿐이다.

따라서 전략환경영향평가는 계획 수립 전 단계로 전진 배치되어야 하며(한국환경연구원 조공장 박사), 공론화는 정책 기획 단계에서 모든 선택지를 투명하게 펼쳐놓고 ‘사회적 합의’를 정책의 대전제로 삼는 행정 수단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시민이 참여하는 정책 실험 ‘리빙랩’이나 ‘시민참여예산제’를 확대해 행정이 국민주권을 대리하는 도구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소통 언어의 변화다. 사실(Fact)로 정쟁을 잠재우는 데이터 공유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진정한 실용행정은 참여와 숙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실과 소문이 뒤얽힌 상황에서의 대규모 참여와 숙의는 더 큰 갈등과 분열을 낳는다. 이때, 상호 이해와 화해의 초석이 되는 건 명확한 ‘증거’, 데이터뿐이다.

오바마 정부의 ‘오픈 거버넌스’를 설계한 베스 노벡이 강조했듯, 데이터는 시민의 협업을 이끄는 공통의 언어다. 따라서 행정은 데이터의 생산부터 검증까지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 행정의 지식을 시민의 집단지성과 연결하는 이 시스템이야말로 소모적인 갈등 비용을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하는 실용행정의 핵심 인프라다.

셋째, 행정과 정치, 공무원과 국민의 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중재자에서 조정자로 행정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다. 행정학의 선구자, 메리 파커 폴렛은 강압이나 타협을 넘어선 통합이야말로 행정의 정수라고 보았다. 통합이란 창조적 대안을 통해 상충하는 요구를 최대한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는 윈·윈 협상의 역동적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행정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관철하는 중재자가 아니라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조정자(퍼실리테이터)가 되어야 한다. 행정의 조정 기능 복원은 비토크라시의 빗장을 풀어 정치를 ‘구원’하는 길마저 열어줄 수 있다. 진영 논리에 갇힌 정쟁의 수사를 ‘사실’의 언어로 바꿔주고, 상호이익의 창조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정치가 타협할 수 있는 명분과 토양을 제공할 때 그렇다.

실용 행정, 법제화로 완성돼야

이 모든 혁신은 법제화로 완성되어야 한다. 데이터 공개와 공유를 의무화하고, 범정부 통합 조정 기구에 실효적 권한을 부여하며, 공무원의 조정 기능을 촉진하는 입법적 뒷받침이 있어야만 실용 행정이 지속 가능해진다.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이 그것이다.

행정은 정치를 구원할 수 있어도 대체할 순 없다. 행정의 전문성이 정치적 합의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아니라 정치를 대신하려 할 때, 12.3 계엄 같은 희극적 비극이 잉태된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 행정이 발전국가의 함정을 넘어 국민과 함께 민생을 일구고 협상의 정치를 복원하는 정교한 갈등 조정 플랫폼이 되길 기대한다.

관련 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