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거제 공곶이에 다녀왔다. 나는 인간의 노동을 찬양하고 경배한다. (⏳2분)
언제나 푸근하고 따스한 공간
며칠 전 거제 공곶이에 다녀왔다. 공곶이는 언제나 푸근하고 따스하다. 거기 가서 동백이나 수선화를 보면 절로 그런 마음이 든다. 바다를 보아도 마찬가지 느낌이 든다. 멀리서 물끄러미 내려다보아도 그러하고 가까이 다가가 몽돌을 발아래 두고 걸으며 쳐다보아도 그러하다.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한 번도 그늘이 들지 않아 언제나 볕바라기를 해도 될 정도로 양지바른 지대라 더욱 그런 것 같다. 바로 앞에 손에 잡힐 듯 떠 있는 내도와 외도는 바깥에서 밀려드는 파도를 막아주어 잔잔한 바다를 더욱 잔잔하게 만든다.
그래서 위로 올라가 아래로 훑어내리면서 동백숲을 가로지르고 수선화가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은 다음 밝고 환한 햇살 아래 바닷가를 따라 숲속길을 걸어서 돌아나가기를 즐긴다. 그렇게 한 바퀴 거닐고 나면 머리는 맑아지고 가슴은 시원해지고 몸은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이리저리 거닐기 좋은 바닷가
우리는 바닷가 팽나무 아래에 앉아 김밥을 먹으며 맥주를 한 캔 곁들였다. 햇살이 짱짱한 하늘과 그 햇살을 받아 잘게 부서지는 윤슬이 뿌려진 바다를 온전하게 누렸다. 멀리 위에서 바라볼 때는 평온함이었는데 가까운 아래에 오니까 그것은 따사로움이었다. 우리는 ‘내란 세력과 특정 정당만 없다면 우리나라는 지상낙원’이라는 데에 손쉽게 의견이 일치했다.
풍경이 아무리 좋다 해도 오래 가만 있기는 어렵다. 그냥 스치듯 부는 바람 같지만 바닷가이다 보니 시나브로 살갗에 소름이 돋기 십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기 오면 가만히 앉아 햇살을 쬐는 시간은 짧게 하고 바닷가를 오가며 ‘자르르 차르르’ 파도가 몽돌을 씻겨주는 소리를 듣는 시간을 길게 한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산을 향하면 수선화와 동백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갖은 풀과 나무들이 때로는 밝고 때로는 어두운 푸른색으로 무장하고는 아래로 쏟아질 듯 으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은 겨울이나 봄에는 동백 붉은 꽃이나 수선화 노란 꽃을 곁들여 살짝 위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곳곳에 스며 있는 고단한 노동
나는 공곶이의 이런 바다와 숲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이것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공곶이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자갈과 바위가 그냥 널브러져 있는 것도 많지만 일으켜 세워진 것도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높다랗게 담을 쌓지 않으면 때때로 몰아치는 해일과 태풍으로부터 공곶이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동백과 수선화와 갖은 들꽃이 어우러지는 언덕배기 숲속은 더욱 그러하다. 얼핏 보면 동백과 수선화 등 갖은 풀과 나무들이 그냥 비탈에 심겨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층층이 조그맣게 일구어진 다랑밭에 죄다 심겨 있다. 아래위와 가로세로로 이어지는 돌계단 또한 다랑밭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피땀을 흘려 이룩한 산물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저 동백과 수선화가 더욱 각별하게 빛나고 아름다운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이 내려주는 비바람과 햇살만으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풍경이다. 50년 60년 오랜 세월에 걸쳐 되풀이 갈아 넣은 가난한 영혼의 고단한 노동이 있었기에 이 아름다운 경관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노동을 찬양하고 경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