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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tip”]슬로우뉴스가 연재하는 시리즈 ‘부엉이 날다’는 학계의 흥미로운 연구를 독자에게 전해 드리려는 취지로 마련되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논문 중에서 우리 일상과 긴밀한 연관이 있으며 의미있는 것을 택해 간단히 정리해 드립니다. 분야는 인문 사회 과학을 위주로 하여, 조금씩 넓혀갈 예정입니다. 시리즈 제목 ‘부엉이 날다’는 헤겔의 <법철학> 서설에 나오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깔리고 나서야 날개를 편다’는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현실에 늘 뒤처져 가는 학문은 굼뜬 부엉이처럼 느린 존재라 할 수 있지만,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임은 틀림없습니다. 느리게 날아오른 부엉이가 어떤 지혜를 줄지 함께 따라가 봅니다. (편집자)[/box]

매일 조선일보와 한겨레를 동시에 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은 한국 언론이 정치 성향에 따라 논조가 뚜렷이 나뉘고, 심지어 사실 보도에서조차 매체의 성향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 쪽 신문만 읽으면 세상의 한 면만을 보게 되므로, 성향이 다른 두 쪽 신문을 함께 보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갈라진 매체의 시대를 사는 평범한 독자들의 지혜다.

한편, 죽었다 깨도 한겨레를 보지 않거나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잘못되었거나 나쁜 매체라고 생각해서 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보면 성질이 나서 오래 살려고 안 보는 사람도 있고, 판매나 구독 부수, 혹은 조회수 올려주기 싫어서 안 보는 사람도 있다.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제한된다거나 시각이 편향될 수 있다는 위험은 감수한다. 이것은 갈라진 매체의 시대를 사는 평범한 독자들의 오기다.

매체 구독에는 지혜와 오기, 어떤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칠까.

미국의 연구자 몇 명은 자기네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개인이 가진 정치 성향이 특정 정치색이 비교적 강한 매체를 구독하거나 시청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았다. 대상 매체는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으로, 오른쪽에서는 FOX New, 왼쪽에서는 MSNBC를 대표 선수로 뽑았다.

우선 조사 대상 사람들이 두 매체를 어떻게 시청하나 알아보았는데, 적지 않은 사람이 두 매체를 동시에 보고 있었다. 이것은 각기 돈을 내고 구독해야 하는 인쇄 매체가 아니라 리모콘만 틱틱 누르면 건너갈 수 있는 케이블 채널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쇄 매체도 인터넷판으로 따져 보면 비슷한 모델이 될 수 있겠다.

FOX News와 MSNBC를 보는 행동을 조사해 봤더니, 둘 사이에 아주 약한 긍정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즉 한 방송을 많이 보는 사람은 다른 방송도 많이 보는 경향이 있을랑말랑한다는 이야기다. 오, 미쿡 사람은 동방예의지국 국민처럼 서로 쪼개져서 수꼴! 좌빨! 하며 박터지게 싸우지 않으니까, 매체를 보는 행동도 아주 너그럽구나! 그런데 통계적으로 중요한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사 대상자 개인들의 정치 성향을 분석 대상에 포함시키자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났다. 첫째, 당연한 말이겠지만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FOX News를, 진보적인 사람일수록 MSNBC를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 성별, 나이, 교육 정도, 소득 수준, 신문이나 방송 이용 정도, 뉴스에 대한 신뢰 정도 등은 모두 매체를 선택하는 데 미치는 영향이 없거나 미미했다. 그렇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대개 색깔로 대동단결인 것이다.

둘째,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번에는 응답자 개인의 정치 성향이 두 방송을 시청하는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들여다 보았다(정치 성향을 통제). 그랬더니, 처음에는 별로 큰 관계가 없던 것처럼 보였던 두 방송 시청 행위 사이에 아주 높은 긍정적인 상관 관계가 나왔다. 즉 개개인의 정치 성향을 빼고 본다면, 사람들은 보수적인 매체를 많이 볼수록 진보적인 매체도 많이 접하고 있으며,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갖가지 정치색을 가진 시청자들을 뭉뚱그려 놓고 보면, 보수 매체를 보는 행위와 진보 매체를 보는 행위에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성향의 사람들, 이를테면 보수주의자들만을 들여다 보면 보수 매체를 열심히 보는 사람일수록 진보 매체도 열심히 보는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결과를 놓고, 사람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매체도 열심히 뒤적뒤적 찾아 본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쎄, 기사에 대한 욕설이 난무하는 한국의 신문 댓글란 양상을 보면 직관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주장인 것 같기도 하다.

(이번 기사의 부엉이: Holbert, R. L., Hmielowski, J. D., & Weeks, B. E. (2012). Clarifying relationships between ideology and ideologically oriented cable TV news use: A case of suppression. Communication Research, 39(2), 19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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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연구자들은 왜 그렇게 어렵게 말씀하시는지…필자님. 쉽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의 매일 보수와 진보성향의 신문을 다보는 신랑을 보면서 비위가 좋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다른성향의 사람들의 생각을 파악하기위한 공부였나봅니다.ㅎ

  2.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편집자님, 느리게 나는 부엉이가 아니고 늦게 날아오른 부엉이가 맞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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