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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이 끝났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학교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다시 깨어나 숨 쉬는 곳이 되었다. 주인장 없던 겨울방학 동안 휭하니 찬바람만 불고 녹지 않은 눈 더미가 시커멓게 변해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던 학교는 이제야 생기를 찾은 듯하다. 

하지만 개학이 좋은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방학이 끝난 후부터 봄방학을 하기까지는 학생도 교사도 상당히 힘든 시기이다. 소위 ‘진도’라는 것이 있는 우리나라는 기말고사 전에 모든 교과의 진도를 다 나가야 한다는 것이 ‘관례’이다. 다시 말하면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가 소위 ‘공백기’이다. 이 공백기 동안 상당수 아이들은 지난 일 년을 복습하는 것도 새로운 학년을 준비하는 것도 싫어한다.

지난 일 년간 각종 시험과 수행평가에 찌든 결과다. 물론 그 중에는 자기공부를 알아서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교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자율활동,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개인별 행동특성입력을 해야 한다. (봉사시간 입력을 단순 계산해봐도 30명×20건×30초=18,000초=5시간이 나온다.) 그 외에도 수많은 잡무들.

새 학기까지의 공백기, 신문활용교육으로 채워볼까

아무튼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아이들과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다가 미디어 교육 사이트인 FORME에서 NIE 지도안을 뒤졌고 김용곤 선생님의 ‘컬러리스트’ 지도안으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직업도 소개할 수 있고 나도 신문 활용 교육을 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다 싶었다. 김용곤 선생님의 지도안을 읽으며 NIE 교육을 시도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겠다는 자신감도 느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의 생각은 이러했다. ‘음~, 아이들이 새로운 직업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특히 여학생들이라 ‘컬러리스트’라면 관심이 있으리라. 교실에 들어가서 오늘 뭐할 거냐고 묻는 아이(이런 아이 꼭 있다.)에게 “얘들아, 컬러리스트라고 들어봤니?”라고 운을 띄웠다. 그러자 좀 아는척하는 아이들이 “색깔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않았다. 활동지를 나눠주고 신문 기사 읽기를 시작했다. 활동지에는 ‘컬러리스트란 무엇인가’, ‘컬러리스트의 자질은 무엇인가?’ ‘컬러리스트의 전망은 어떤가?’ 라는 세 가지 물음이 있었다. 신문에 나온 기사의 핵심이다. 이 세 가지 물음에 답을 직접 써보는 것으로 활동지는 구성되어 있었다. 아이들 수준에서 별로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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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자질이 뭐예요?

그러나 아이들에게서 나온 예상치 못한 질문. “선생님, 자질이 뭐예요?” “선생님, 전망은 뭐예요?” 내 머리를 띵하게 치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물론 아이들 눈높이에서는 좀 어려운 단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의 저 용감함이 교육의 출발이기도 하다. 이럴 때 답을 바로 말해주는 교사는? 당연히 아마추어다. 나는 다시 여러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얘들아 자질이 뭐지?”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눈높이에서 알고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었다. “자격 같은 거요.” “뭔가 그것을 할 수 있기 위해 갖춰야 하는 거요.” “그럼 전망은 뭐야?” “앞으로요.”, “앞으로 어떻게 될 거다 이런 거요.”

아이들은 활동지에 있는 기사를 읽고 활동지에 있는 세 가지 물음에 답을 적어나갔다. 물론 관심이 없는 아이도, 열심히 적어나가는 아이도 있었다. 역시 교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란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자신이 적은 답을 옆 친구와 비교도 해보고 모르는 친구가 있으면 가르쳐주기도 했다. 짜증 나는 말투로 “이거 왜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아이도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대할 때 자칫 속된말로 ‘싸가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과거와 비교했을 때 요즘 아이들은 자기 주체성이 강하다는 긍정적인 면도 발견하게 된다.

끝으로 각자 적은 내용을 발표하게 해보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과제라 답을 잘 찾은듯했다. 하지만 한 쪽 분량도 되지 않는 내용에서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이 여전히 어려운 아이들도 있었다. ‘읽기’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는 지점이었다. 공부의 시작과 끝은 ‘읽기’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닐 터인데. 특히 ‘자질’, ‘전망’ 같은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이는 어휘를 모르는 부분은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하는 것이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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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계속 도전!

퇴근 후 아내와 오늘 진행한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칭 청소년 문화 취향이라고 하는 아내는, 소재가 중학교 여자아이들이 그다지 관심 가질 만하지 않다고 한다. ‘컬러리스트’라는 직업은 어른들이 관심 있어 할 이야기지 아이들 눈높이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였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떤 내용으로 해볼까. 아내는 중학교 여자아이들의 최대 관심사인 아이돌이라든가, 청소년의 취향과 문화 쪽으로 주제를 잡아보면 어떠냐고 한다. 과연 그쪽으로 주제를 잡으면 잘될까? 고민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사실 어떤 수업이라도 준비한 것에 비해 성공했다는 생각을 하기는 어렵다. 10년 된 목수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장인이 되어 있을 터지만, 수업은 갈수록 힘들고 어렵다. 아이들의 눈높이도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새로움에 늘 도전해야 한다. NIE 교육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다음을 기약하면서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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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사용된 교재들

이 글은 중부매일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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