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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작년에 [선을 넘어 생각한다] (2018)라는 책을 내고 나서 고맙게도 몇 차례 강연 요청을 받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 고민하다가 프리젠테이션 첫머리에 집어넣은게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였다. 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이 14세기 조선 초기 별자리 지도를 우리가 흔히 아는 서양식 별자리 지도와 비교하는 걸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1467개의 별을 적도좌표계를 이용해 1395년(태조 4)에 그린 조선의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은 12차次와 분야分野에 맞추어 하늘의 별자리를 차례로 배열했다 하여 붙여진 조선 독자의 천문도 명칭이다. 출전 설명 『천상열차분야지도』는 1395년(태조 4)에 처음 검은색 돌에 음각陰刻으로 새겨 제작되었는데, 이후 세월이 오래되어 별자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해 1687년(숙종 13) 태조 때 것을 원본으로 그대로 복제해 다시 만들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숙종대에 제작된 석각본石刻本을 탁본한 것이다. (출처: 규장각) http://kyujanggak.snu.ac.kr/dohae/sub/subjectDetail.jsp?no=D1370&code1=10&code2=0#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1,467개의 별을 적도좌표계를 이용해 1395년(태조 4)에 그린 조선의 천문도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은 12차와 분야에 맞추어 하늘의 별자리를 차례로 배열했다 하여 붙여진 조선 독자의 천문도 명칭이다. 1395년(태조 4)에 처음 검은색 돌에 음각으로 새겨 제작되었는데, 이후 세월이 오래되어 별자리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해 1687년(숙종 13) 원본으로 그대로 복제해 다시 만들었다. 만 원 권 뒷면 혼천의 뒤에 약식으로 그려져있기도 하다. (출처: 규장각)

한국 사람들은 북쪽 하늘에 있는 국자 모양을 한 별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선을 그은 뒤 ‘북두칠성’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유럽 사람이라면 큰곰자리를 구성하는 꼬리와 등뼈 부분으로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세상에 그런 선은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별자리를 기준으로 별을 인식하는건 별자리를 잇는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북두칠성이니 큰곰자리니 하며 연결하는 선이란 그저 우리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에 따라 혹은 외우기 쉽도록 상상력을 동원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28수,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같은 별자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별자리를 그리고 나면 그 별자리가 우리 인식을 규정해 버린다. 우리는 별자리가 인위적으로 편의를 위해 만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특정한 별과 별을 한묶음으로 규정하거나 다른 묶음으로 구별짓는다.

별을 잇는 선은 애초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한다. 별과 별자리의 관계를 현실과 프레임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임(Frame; 특정한 언어와 연계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이란 머릿속에서 한번 자리잡으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영화 [인셉션] (2010)에서 주인공이 심어놓은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길 원하신다’는 생각의 씨앗이 자라고 자라서 아버지가 물려준 거대기업을 제 손으로 해체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치다. 선과 선을 잇고 특정한 틀 안에 공간을 인식하게 만드는 각종 ‘지도(地圖)’야말로 그런 효과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지도에 매혹당했다.)

우리는 지도를 볼 때 당연히 윗부분이 북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 몽골을 비롯해 유목제국에선 전혀 다르다. 이들의 지도는 북쪽이 지도 밑부분에 위치한다.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지리 관념을 반영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흉노에선 좌현왕이 제국의 서쪽을, 우현왕이 제국의 동쪽을 담당했다. 몽골어에서 ‘바른 손’은 방위로는 서쪽을 가리키는데 그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오른손이 가리키는 곳이 서쪽이기 때문이다.

칭기스칸은 맏아들 조치에게 제국의 서쪽 방면을 유산으로 주고 세 동생에겐 동쪽 방면을 나눠줬다. 그 덕분에 조치의 아들이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차지하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몽골 등 유목제국을 ‘북방’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지극히 우리식 관념을 반영한 것일 뿐이겠다.

지도가 만들어내는 생각의 ‘틀’

주변에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를 대략 유럽만한 크기를 가진, 북아메리카보다는 훨씬 작은 대륙으로 인식한다. 여기에는 ‘메르카토르 도법’이라는 방식으로 만든 지도가 워낙 널리 퍼진게 큰 영향을 미쳤다. 1569년 네덜란드 사림인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가 발명했다는 이 지도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실제보다 훨씬 더 커보이게 하는 정치적 효과까지 덤으로 거둔다.

오늘날 통용되는 '세계지도'는 사실은

오늘날 통용되는 ‘세계지도’는 사실은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들어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실제보다 훨씬 커보이게 한다.

그럼 독일 사람 아르노 피터스가 만들었다는 피터스 지도는 어떨까. 세계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표시한다는 이 지도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기괴하기가지 할 정도로 낯설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는 아프리카가 미국과 중국, 인도는 물론 동유럽과 영국, 프랑스, 독일을 모두 우겨넣은 것보다도 더 큰 땅덩어리라는 걸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지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틀까지 바꿔버릴 수 있다.

피터스 지도

피터스 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동북아시아 지도 중에 남북축을 살짝 바꿔놓은게 하나 있다. 북쪽이 조금 옆으로 갔을 뿐인데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중요성이 완전히 달리 보인다. 또 하나는 한국이 왜 ‘섬보다도 더한 섬’인지 보여주는 가상의 지도다. 이런 지도를 보면서 우리는 세상을 더 지혜롭게 인식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의 틀을 깨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도

가상의 지도

가상의 지도

우리가 한번 더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사실’ 그대로 보여주는 지도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계속해서 메르카토르 지도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할까. 심지어 내가 그토록 사랑하여, 한번 접속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구글 지도마저 메르카토르 지도를 기본으로 사용한다. 짐작하건데, 메르카토르 지도가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의 틀에 훨씬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익숙한 음식을 찾고 편한 옷을 즐겨 입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불편한 진실’이란 말은 틀린 말인 듯 하다. 진실이란 원래 불편한 게 아닐까. 점심시간마다 서울시청 주변에 울려퍼지는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기피 의혹 수사 촉구’ 집회와 ‘트럼프 대통령님, 피로써 지킨 대한민국을 지켜주세요’ 현수막을 보면서, 우리는 틀을 깨고 선을 넘어 생각해보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노릇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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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예산전문기자를 꿈꾸는 기자 겸 박사 겸 블로거( http://www.betulo.co.kr )입니다. 시민단체 공동신문 '시민의신문'을 거쳐 현재 서울신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와 저널리즘학연구소에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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