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반대(STOP CENSORSHIP)!”
약 1년 전인 2012년 1월 18일.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영문 위키백과가 하루 동안 서비스를 중단했다. 미국 하상원에 발의된 온라인해적행위방지법(SOPA)과 지적재산권보호법(PIPA)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구글마저 ‘의회에 말하세요: 제발 웹을 검열하지 말아주세요!'(Tell Congress: Please don’t censor the web!)’라며 항의에 동참했다. 수천 개의 인터넷 사이트가 소위 ‘블랙아웃(black-out)’에 동참하기 위해 ‘검열을 중지하라(STOP CENSORSHIP)’ 배너를 달고 파업(?)에 돌입했다. 일명 ’미국 검열의 날(American Censorship day)’. 미국 법무부가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해외 사이트도 차단할 수 있게 하고, 결제 서비스나 광고 서비스에 대한 거부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한 SOPA법안과 PIPA 법안은 결국 폐기되었다.
미국 얘기할 때 아니다: 저작권 삼진아웃제와 인터넷 필터링 의무화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는 더 강력한 저작권 규제가 있다. 저작권 삼진아웃제와 인터넷 필터링 의무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은 여전히 고요하기만 하다.
삼진아웃제, 기본권으로서의 접속권 침해
우선 저작권 삼진아웃제에 대해 말해보자. 주차 위반을 했다고 특정 지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작권 삼진아웃제는 저작권을 침해하여 3회 이상 경고를 받은 이용자의 계정을 정지하거나 게시판 운영을 정지할 수 있다. 그것도 법원 판결이 아니라 행정부 명령으로. 삼진아웃제가 아니더라도 권리자는 민형사상 방법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저작권 침해가 인터넷 접속권과 같은 기본권적 권리를 침해할 정도로 중죄인지 의문이고, 이를 빌미로 게시판 운영을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에 부여해도 되는건지 의문이다. 삼진아웃제는 많은 논란으로 어떤 국제협정에도 반영된 바 없으며, UN 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조차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필터링: 세계 유일, 사생활 침해 조장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에게 필터링의 의무화한 나라도 한국밖에 없다. 더구나 2011년 11월 24일, 유럽사법재판소는 저작권 침해방지를 이유로 ISP에 필터링을 의무화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기업의 영업의 자유와 함께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의 전기통신사업법은 필터링 의무화 대상인 P2P, 웹하드 사업자에 대해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최소 2인 이상의 모니터링 요원을 두도록 하고 있고, 게시물 전송자를 식별·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와 로그기록의 2년 이상 보관을 의무화하여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조장하고 있다.
첫걸음: 최재천 저작권법 개정안, 늦었지만, 환영한다
최근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이 저작권 삼진아웃제 폐지와 인터넷 필터링 의무화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저작권을 몇 번 침해했다고 사이트에 접속하거나 게시판에서 소통할 자유까지 빼앗겨야 하는가? P2P나 웹하드 사이트를 이용할 때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음을 의식해야 하는가? 저작권이 검열과 감시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독점권보다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먼저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대착오적인 저작권 규제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계기로 최재천 법안이 역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세계 유례없는 악법, 최재천 법안은 개혁 첫걸음 불과
저작권 규제 폐지를 주장하는 까닭은 창작자 권리를 등한시하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낡은 저작권이 창작자의 권리보다는 투자자의 이윤을 보호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디지털 정보사회에서는 모든 이용자가 창작자가 될 수 있다. 또 이들 사이에 자유이용을 허용하는 창작자가 많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아랑곳 없이 현행 저작권 시스템은 사전에 이용허락을 받도록 하여 저작물 유통을 제한하고 있다. 창작자 사후 70년으로 보호기간도 지나치게 길 뿐더러, 시공간에 상관없이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저작권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 전 세계에 유례없는 한국만의 과도한 저작권 규제를 철폐하는 것. 완성이 아니라 저작권 개혁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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