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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파타법’, 강간의 기준이 달라지다

법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안희정에게도 그렇습니다. 이번 재판을 맡은 판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피해자가 업무상 상급자에게 명시적으로 (성관계에) 동의하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고 나름의 방식으로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마음속으로 (성관계에) 반대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성폭력 처벌 체계에서는 피고인(안 전 지사)의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 성폭력 범죄라 볼 수 없다.” (조병구 부장판사)

저 역시 법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재판부는 법적으로 판단해야 하니 법리상으로 안희정은 무죄로 판결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유무죄를 판단하는 사람은 명백한 증거와 객관성을 기준으로 삼지만 판사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 여지가 없다면 판결은 AI가 해도 될테니까요. 때때로 전향적인 판결이 사회가 나아가는 물꼬를 터주기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에 많은 이가 주목했습니다.

법원 재판 판사 변호사 저울

스웨덴의 ‘파타법’ 

올 7월 1일부터 스웨덴에 파타(fatta)법이라 불리는 새로운 법이 발효됐습니다. 주된 내용은 ‘명시적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강간의 재정의입니다. 파타법에 따르면 성관계에 있어 상대가 반드시 말로는 행동으로든 분명하게 동의를 표시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no’라고 하지 않으면 ‘yes’인 것으로 보았는데 이제 ‘yes’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해야만 ‘yes’인 것입니다.

이전에는 ‘폭력이나 협박에 의한 성행위나 피해자가 거부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행위’만이 강간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했습니다. 따라서 검사는 가해자의 행위를 증명해냐야 했습니다. 지금은 상대가 분명한 동의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면 됩니다. 입증의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물론 친밀하고 개인적인 상황의 일이니 이를 증명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건 강간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고, 입법취지가 널리 알려지고 나면 성관계에 임하는 개개인 역시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노 민즈 노 예스 민즈 예스 미투 페미니즘

‘No means No'(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야)에서 ‘Yes means Yes'(예스라고 할 때만 할 수 있는 거야)로의 ‘혁명적인 전환’을 이끌어낸 스웨덴

‘예스’와 ‘노’ 사이 무수히 많은 애매모호한 상황이 이전에는 암묵적 동의로 간주되었다면, 지금은 거절로 간주되는 것이니 그야말로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엄청난 차이지요. 섹스는 반드시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새 법의 개념은 벌써 학교 교육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파타법은 사실 ‘FATTA!’라는 단체가 끈질기게 매달려 입법까지 이뤄낸 법입니다. 2013년 한 여성이 세 명의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는데 당시 여성의 손에 술병이 있었다는 이유로 남성들이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 이후 파타!는 150건의 비슷한 사건의 판결을 모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스웨덴의 유명 래퍼인 클레오(Cleo)와 가수인 크리스틴 암파로(Kristin Amparo)가 이 내용을 Fatta!(알아들어!)라는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됐고, 사회적 토론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지난해 #METOO 까지 불거지면서 남녀가 모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마침내 파타 법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적극적 문제제기에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입법이 되기까지 5년이 걸렸지요.

요즘 성 대결의 양상이 어떤 수위를 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스웨덴의 파타법이 평등의 논의와 사회적 운동에 어떤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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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오한아
초대필자, 작가

자칭 스웨덴 전문가. 비밀에 싸인 인물.

작성 기사 수 : 2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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