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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를 눈앞에 둔 당신들에게

며칠 전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정부가 4대강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장시간 보의 수문을 열어 물을 방류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상 4대강 사업이 실패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이지요.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그날에도 소식이 하나 들려왔습니다. 정부는 3년을 미뤄온 세월호의 인양을 다시 추진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정권 교체가 눈앞에 있습니다. 아직 대선은 두 달이나 남았고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민들은 부패의 온상이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배출했던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게 없지만, 이렇게 무언가가 바뀔 거라는 기대감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사진: 민노씨)

박근혜 하야 촛불집회 2016년 11월 12일 13일 새벽

원내에 진입하지 못했던 진보정당을 지지해왔던 저는 선거 때마다 “정권교체가 되면 세상이 바뀔 테니 되는 후보를 밀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저도 제가 나름의 기준으로 정해둔 후보와 지지하는 정당이 있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 결정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조금은 속상할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제게 그런 말을 건네던 사람들이 나쁜 의도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소식처럼, 조금 더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권력을 갖는 것 자체가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세상이 갑자기 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당신들의 제안이 굉장히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답이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만 당신들이 지지하는 정권의 탄생을 눈앞에 둔 당신들에게, 광장에서 ‘너와 나’가 아닌 ‘우리’로서 함께 불의를 향해 소리쳤던 당신들에게. 지금의 변화가 여전히 부족하다며 아우성치는 어떤 사람들에 대고 “나중에”를 외치기 전에 한 번만 더 여유를 가져달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혹은 우리들의 진보가 여전히 누군가에겐 목마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진보되지 않음’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월 16일. 문재인 전 대표가 성평등 정책을 발표하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 선언하는 자리에서 한 여성이 외쳤다. 바로 이틀 전, 그가 한국기독교총연맹을 비롯해 보수 개신교계가 모인 자리에서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법으로 충분하므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추가 논란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여성이 소리를 치는 와중에 문재인이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 게요”라고 말했고, 이어서 청중들은 “나중에”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 손희정, 대통령이 되고픈 문재인, 시민이 되고픈 성소수자 (오마이뉴스, 2017. 3. 7) 중에서  (강조는 편집자)

제가 보아온 세상은 그랬습니다. ‘진보’란 것은 멀리서 보면 어떤 일정한 움직임일 수 있겠지만,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발걸음들이 엉키고 서로 소리를 지르며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은 어쨌든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 하겠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속도로 바뀌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을 어느 한두 가지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의 나는 기득권자일 수 있겠으나 어떤 면에서의 나는 여전히 약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남성’, ‘이성애자’ 혹은 ‘부자’ 등으로 표상되는 어떤 누구와 ‘여성’, ‘성 소수자’ 혹은 ‘빈자’ 등으로 표상되는 누구는 같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모두 같이 ‘진보’를 꿈꾼대도 말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너와 내가 모여 우리를 구성하였고,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개선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모여 결국 ‘진보’라는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게이 LGBT 성차별 성평등 성소수자

하지만 아쉽게도, 사회는 우리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것들의 우선순위를 제법 복잡한 단계로 정합니다.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자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어떤 ‘나’에게는 세상의 진보가 나의 진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퇴보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정권 교체로 진보한 세상, 혹은 진보할 세상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광장으로 나올 겁니다. 여전히 미완인 ‘나의 진보’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을 겁니다. 당신들의 진보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광장에 나와서 외치는 목소리가 갑자기 ‘시끄러운 데모’ 같은 게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광장에서 누군가에게 소리를 질러왔던 그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약한 우리들의 아우성을 짓밟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판단에 그게 덜 중요한 일이라며 “나중에”라고 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저절로 좋아질 테니 기다리라는 말은 ‘나아진’ 우리가 ‘여전히 부족한’ 우리에게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이 진보입니다. 그 진보는 ‘정권교체’ 정도로 이룰 수 없을 만큼 요원하며 어려운 숙제입니다. 우리가 광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신과 내가 여전히 진보를 꿈꾸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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