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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은 왕의 죽음

푸미폰 아둔야뎃 Phumiphon Adunyadet : 1927.12.5. ~ 2016.10.13.

푸미폰 아둔야뎃 (왕호: 라마 9세 대왕, Rama IX, the Great)
Phumiphon Adunyadet: 1927.12.5. ~ 2016.10.13.

1927년 미국에서 태어난 푸미폰은 국왕이 되기 전 스위스에서 큰 사고를 당해 척추를 다치고 한쪽 눈을 잃으며 죽을 고비를 넘긴다. 하지만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당시 푸미폰의 곁에서 밤낮을 간호하였던 시리낏(프랑스 대사의 조카 딸)을 만나게 되었고 둘은 왕가의 허락 없이 약혼식을 올린다(1949년 7월 19일).

출신 성분을 따지고 귀족이나 왕족과 정략결혼을 시키던 왕가는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푸미폰의 어머니 역시 평민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후궁을 들일 수 있는 왕족이었으나 푸미폰 국왕은 이후 평생 시리낏 왕비 한 사람에게만 순정을 바친다.

태국 국왕

푸미폰과 시리낏 (1950년 결혼식 당시 모습)

국왕에 오른 푸미폰 국왕은 어느 날 태국의 북부지역을 시찰하게 된다. 그런데 북부의 농지 대부분에 대마와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었고 마약에 빠져 사는 국민의 모습을 보고 통탄했다. 시찰에서 돌아온 후 푸미폰 국왕은 왕궁의 자산을 털어 북부지역 버려진 땅과 마약 밭을 개간하고 차와 커피를 재배하게 한다. 이후 그 지역에서 자란 차와 커피는 전량 왕궁에 납품하게 하였고 커피는 일정 수준의 퀄리티가 나오기 전까지 전국의 커피숍에 납품하여 자국 내에서 커피를 소비하였다. 이후에도 왕궁의 농민 지원은 끊기지 않았다.

또한, 푸미폰 국왕은 과학자로서의 재능도 탁월했다. 프랑스 유학 시절 물리학과 법학을 배웠던 그는 태국에 우기와 건기가 반복되어 농작물이 피해입는 것을 보고 인공강우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그 결과 태국은 뛰어난 인공강우기술을 가지게 되었으며 지금도 인공강우 기술의 특허는 푸미폰 국왕이 가지고 있다.

태국 국민이 국왕과 왕비를 존경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태국은 군부 쿠데타로 인해 광주민주화운동에 맞먹는 시민학살이 몇 차례 있었는데 군에 저항하는 시민은 그 자리에서 총살을 당했다. 자신의 국민이 안타깝게 죽는 것을 본 푸미폰 국왕은 왕궁의 문을 활짝 열어 탱크에 쫓기는 시위대와 시민들을 자신의 궁 안으로 들이게 된다. 왕궁은 성역이었고 불가침 영역이었기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들어올 수 없었다. 시리낏 왕비는 다친 시민들을 돕기 위해 직접 간호에 나섰고 의사들을 왕궁으로 불러모았다.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비가 신격화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푸미폰 국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조형물 (2006년)

푸미폰 국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조형물 (2006년)

태국 사람들이 노란색이나 남보라색 옷을 즐겨 입는 것은 단순히 취향이나 컬러 트랜드라서가 아니다. 노란색은 국왕의 색이었고 남보라색은 왕비의 색이다. 그렇기에 시민들은 왕과 왕비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 색의 옷을 입는 것이다. (나 역시 태국에 여행 갈 때는 노란색 옷을 꼭 챙긴다.)

현존하는 어떤 왕보다 국민으로부터 사랑받은 군주였던 푸미폰 국왕이 하늘로 떠났다. 하늘의 뜻이 땅에도 닿아 더 큰 평화가 태국에 깃들기를…

태국 왕실기이자 국왕기. 노란색은 국왕을 상징한다.

태국 왕실기이자 국왕기. 노란색은 국왕을 상징한다.

+ 푸미폰 국왕의 그늘 

1992년 수찐다 크라쁘라윤 등 군부가 일으킨 ‘검은 5월 사건’으로 의회가 해산하고, 이에 대항해 방콕 시장인 잠롱 스미무앙의 주도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다. 이에 푸미폰 국왕은 수찐다와 잠롱을 왕궁으로 불렀고, 그 자리에서 쿠데타는 “부적절하다”고 일갈,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써 수찐다 내각은 실각하고, 수찐다는 외국으로 망명했으며, 이후 실시된 총선거를 통해 민주 정부가 수립된다. 태국 민주주의에 대한 푸미폰 국왕의 기여로 평가받는 역사적 사실이다.

1992년 5월 20일 왕궁으로 불려가 예법에 따라 바닥에 조아리고 국왕의 이야기를 듣는

1992년 5월 20일 왕궁으로 불려가 예법에 따라 바닥에 조아리고 국왕의 이야기를 듣는 수찐다(가운데)와 잠롱(왼쪽).

하지만 그의 절대 권력과 부를 유지하기 도구로 활용된 왕실모독법(형법 112조)은 특히 많은 비판을 받았다. 국민에게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는 푸미폰 왕이었지만, 국제 사회에서 태국 왕실모독죄는 악명 높은 것이었고, 푸미폰 스스로 2005년 자신의 생일에서 “왕을 비판할 수 없다면, 그것은 왕이 인간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자신도 비판되어야 한다”고 발언하기까지 했지만, 이 법이 정적을 탄압하는 쿠데타 세력뿐만 아니라 왕실의 부와 권력을 보호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됐음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참고 기사)

2006년 쿠데타와 2008년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PAD(국민민주주의연대) 시위의 배후에 푸미폰 국왕과 왕실이 존재한다는 이코노미스트의 커버스토리 기사(태국 왕과 태국의 위기, “Thailand’s king and its crisis”, 2008, 12. 4)는 태국에서 배포가 금지되기까지 했다. 그리고 2014년의 군사 쿠데타에 대해선 이를 승인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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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광혁(Jake Kim)
초대필자. 디자이너. 평론가

디자이너이자 평론가, 문화재청 산하의 국립무형문화원에서 디자인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권 이상의 단행본 및 책자의 편집 디자인 작업을 했고, 국립문화재연구소, 서울시청, 해양박물관 등의 국가기관 및 삼성전자, 아모레퍼시픽, 미래에셋, 대한적십자, 한국은행, 서울대학교, 한국마사회 등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역사를 다룬 '글자를 위한 글(아레나옴므매거진)'을 연재했고 만화 규장각을 통해 서브컬처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페이스북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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