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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디자이너, 패션 리더, 걸그룹 팬, 오타쿠.

만약 당신이 앞의 네 가지 중 하나와 관련이 있다면 ‘코토리 베이지’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들릴 것이다. 코토리 베이지는 2016년 봄부터 일본에서 유행한 머리색이다. 한국은 유행에 민감한 걸그룹 트와이스, 러블리즈, 소녀시대의 일부 멤버가 코토리 베이지로 염색하면서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코토리 베이지 

베이지는 색상 이름이다. 코토리(南ことり, Minami Kotori)는 사람 이름이다. 그런데 실존하는 사람은 아니다. 코토리는 [러브 라이브]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여성 캐릭터다. 코토리 베이지는 코토리의 머리색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코토리 베이지라는 색상명은 일본 오타쿠 용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코토리 베이지는 영롱하고 투명한 베이지 빛깔이라고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의 캐릭터 '미나미 코토리'
일본 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의 캐릭터 ‘미나미 코토리’
[러브 라이브]는 폐교 위기의 고등학교를 지켜내기 위해 재학생 아홉 명이 걸그룹 뮤즈를 결성한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아홉 명의 머리색은 마치 무지개인 양 모두 다른데, 그중 코토리가 속한 2학년 삼인방을 예로 들자면 호노카는 주황색, 우미는 남색 머리를 하고 있다.

[러브 라이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은 각자 고유의 머리색을 가지고 있다. 원피스의 조로는 녹색. 블리치의 토시로는 흰색, 세일러문의 세일러 머큐리는 파란색 머리다. 이렇게 캐릭터마다 머리색이 다른 이유가 뭘까?

러브 라이브

조금 뜬금없지만 시인 김춘수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그가 쓴 시, ‘꽃’을 읽어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러브 라이브] 캐릭터의 색과 성격 

캐릭터마다 머리색이 다른 이유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캐릭터에게 잊힘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개성 있는 외모와 성격은 캐릭터의 생존과 직결되기에 캐릭터의 머리에 독특한 색상을 입히는 것이다. 여기서 뻔한 질문을 하나 해보자.

캐릭터의 색은 외모일까? 성격일까?

1926년 7월, 미국 심리학회지[footnote]The American Journal of Psychology[/footnote]에 색의 체감상 무게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기고자는 위스콘신 대학의 칼 바르덴(Carl J. Warden) 교수와 엘렌 플린(Ellen L. Flynn) 교수. 그들은 학생들에게 색상만 다른 3파운드 무게의 상자를 들게 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은 하얀색 상자보다 파란색 상자를 약 1.5배 더 무겁게 느꼈다. 검은색 상자는 약 2배 더 무겁게 느꼈다.

같은 무게의 상자라도 하얀색 상자와 비교하면 파란색 상자는 1.5배, 검은색 상자는 2.0배로 무게를 더 체감했다.
같은 무게의 상자라도 하얀색 상자와 비교하면 파란색 상자는 1.5배, 검은색 상자는 2배 더 무겁게 느꼈다.

색이 인간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은 1810년 괴테가 색채론을 출간하면서 본격화했고, 오늘날 색채 심리학(Color Psychology)으로 발전했다. 현재는 색이 온도, 무게, 촉감, 기분, 시간 등에 심리적인 영향을 줌이 밝혀진 상태다. 예를 들면 이렇다.

  • 베이지는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 온화함,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 주황색은 따뜻함, 기쁨, 명랑, 희망 등을 느끼게 한다.
  • 남색은 장엄, 위엄, 숙연함 등을 느끼게 한다.

[러브 라이브]로 다시 돌아가 보자.

  • 베이지색 머리의 코토리는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다.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이어서 친구 사이의 다툼을 잘 중재한다.
  • 주황색 머리의 호노카는 걸그룹 뮤즈의 결성을 처음 제안했던 소녀다. 체육을 좋아하고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노력파이며 밝은 미소가 매력 포인트다.
  • 남색 머리의 우미는 일본무용 가문의 당주로 전형적인 일본풍 아가씨 타입이다.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이며 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쓴다.

[러브 라이브]의 예를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 색이 외모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서 캐릭터 성격을 나타내는 것에도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색은 인간의 시각과 심리 모두를 자극한다. 캐릭터 성격에 맞는 색을 사용하는 것은, 캐릭터를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

각인을 넘어서면 색은 캐릭터와 정서적 관계를 맺는 것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과연 색이 캐릭터를 기억하는 것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일까? 당신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아래에 제시하는 그림을 통해 색의 힘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심슨 가족
심슨 가족

 

사우스파크
사우스파크

 

스즈미야 하루히
스즈미야 하루히

단지 색칠한 막대기를 본 것뿐인데 벌써 내 눈 앞에는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가 춤을 추고 있다. 귀에는 하레하레유카이(ハレ晴レユカイ)[footnote]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1기(2006년)의 엔딩곡.[/footnote] 멜로디가 들려온다. 나는 ‘스즈미야 하루히'(일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정서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아, 참고로 위 그림들은 오타쿠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웹상에 떠도는 것들이다.)

https://youtu.be/ci2Q5BTnvGw

색은 캐릭터에게 외모와 성격 모두를 부여함으로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살아 숨 쉬는 대상과 정서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정서적 관계라는 건 형태가 너무나 다양하지만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대상을 좋아한다든가, 사랑한다든가, 지켜주고 싶다든가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루부탱과 레드 솔: 색을 통한 정서적 관계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색이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알겠지만, 정서적 관계를 맺는 걸 돕는다는 것은 너무 과장하는 건 아닌가? 캐릭터를 대상으로 정서적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단순히 캐릭터가 인간을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1993년 프랑스 파리. 크리스티앙 루부탱(Christian Louboutin)은 자신의 부티크에 앉아있었다. 시선은 어딘가 모를 곳으로 향해있었고 초점은 흐릿했다. 오른손은 턱을 쥔 채 천천히 꼬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루부탱은 찰스 주르당(Charles Jourdan)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루부탱이 만든 구두는 누가 봐도 훌륭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그의 구두는 이탈리아나 파리의 다른 명품 구두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루부탱은 어린 시절 문제아였다. 16살에 학교에서 쫓겨났고, 파리의 유명한 카바레 폴리 베르제르(Folies Bergere)에서 일을 시작했다. 루부탱은 쇼걸의 잡무를 도맡아 하면서 하이힐에 눈을 떴다. 뾰족하고 높은 굽의 하이힐이야말로 화려한 무대에 선 쇼걸들의 섹시함을 완성하는 마침표라 생각했다.

흐릿했던 루부탱의 초점이 빨간 점에 맞춰졌다. 빨간 점은 루부탱의 조수가 손톱에 바른 네일 폴리쉬였다. 루부탱은 순간 뭔가에 홀린 듯 조수의 네일 폴리쉬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곤 구두를 뒤집어 들고 밑바닥을 붉게 칠하기 시작했다. 루부탱의 정체성, 레드 솔(Red Sole)은 그렇게 탄생했다.

루부탱 하이힐
루부탱 하이힐

색채 심리학에서 빨강은 정열을 의미한다. 빨간색은 혈압, 호흡, 심박 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모두가 구두의 밝고 눈에 잘 보이는 영역에만 관심을 가질 때, 루부탱은 구두의 어두운 밑바닥을 보았다. 루부탱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하이힐의 밑바닥에 붉은색을 칠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빛에 반사된 밑바닥은 붉은 광선을 내뿜는다. 사람들은 붉은빛에 시선을 빼앗기고 심박수가 뛰기 시작한다. 걸음을 멈추면 밑바닥에 그림자가 물든다. 붉은 밑바닥에 그림자가 입혀지면 붉은색은 자주색으로 탈바꿈한다. 자주색은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줄까? 색채 심리학에서 자주색은 섹시함을 의미한다. 여성이 루부탱을 신고 멈춰 설 때, 레드 솔의 뒤태는 살아있는 섹시 심벌이 되는 것이다.

섹시 심벌은 섹시 심벌을 알아보는 법. 마돈나가 루부탱을 애용하면서 루부탱은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빠르게 전파되었다. 그중 압권은 제니퍼 로페즈다. 루부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2009년 12월 8일 싱글 앨범 ‘루부탱'(Louboutins)을 발표했다. 노래는 망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제니퍼 로페즈는 루부탱과 정서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못 믿겠다고? 그렇다면 제니퍼 로페즈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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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붉은 바닥을 봐.
그리고 내 청바지 뒤태를 봐.
내가 가는 걸 봐, 굿바이 베이비.
사라지기 전까지는 네가 뭘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지.

테일 라이트는 네가 보게 될 전부야.
이 벤츠의 출구를 봐.
그 드라이브 웨이.

난 나의 루부탱을 신는 중이야. (8회 반복)

YouTube 동영상

비록 싱글 앨범 ‘루부탱’이 제니퍼의 커리어를 망쳤더라도 제니퍼는 여전히 루부탱을 사랑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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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솔이 히트하자 너도나도 레드 솔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루부탱에게 레드 솔은 브랜드의 정체성이며 컬러 심벌이었다. 루부탱은 상표 출원을 통해 레드 솔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색상을 상표로 등록하는 것은 무효라 주장하면서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결과적으로 2012년 9월 5일, 뉴욕 맨해튼 항소법원의 판결에 의해 레드 솔은 루부탱의 고유한 상표 권리가 되었다.

기억되는 것을 넘어 사랑받도록 

브랜드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억되는 것이다. 잊힌 브랜드는 죽은 브랜드다. 브랜드는 기억되는 이름이어야 하고, 기억되는 그림이어야 하고, 기억되는 이야기여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빠짐없이 색이 입혀진다. 브랜드에 알맞은 색은 브랜드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색은 인간의 시각과 심리를 자극하면서 브랜드가 기억되는 것을 넘어서 브랜드가 사랑받게 한다. 색의 힘은 강력하다.

상징색

위 색상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왼쪽부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스타벅스의 컬러 심벌을 나타낸 것이다. 색만 보고 무언가를 맞출 수 있는 건 오타쿠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일관된 색으로 정체성을 잘 확립한 브랜드는 색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그 브랜드를 연상하게 한다.

브랜드에 일관된 색을 사용하는 기업은 많다. 색의 심리적 영향까지 고려하는 기업도 많다. 하지만 색을 통해 고객과 정서적인 관계를 맺는 것까지 생각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기업의 사명, 가치, 문화, 이미지, 제품,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색을 가지고 있다면 고객과의 정서적인 관계는 자연스럽게 맺어질 수 있다.

사랑받는 브랜드를 원한다면 ‘색을 입혀라’  

걸그룹 뮤즈의 멤버 코토리의 머리는 베이지색이다. 코토리의 온화한 성품은 베이지색이 가진 심리적 영향과 일치한다. 코토리의 베이지빛 외모와 성품에 반한 오타쿠들은 팬덤을 형성했다. 그 팬덤을 의식한 현실 세계의 걸그룹은 코토리의 머리색을 모방했다. 현실 세계의 걸그룹 팬덤 사이에 코토리 베이지 염색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2016년, 코토리 베이지는 일본과 한국의 가장 핫한 머리색이 되었다.

루부탱의 레드는 루부탱이 쇼걸을 보며 하이힐에 눈을 뜬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루부탱의 사명, 가치, 문화, 이미지, 제품, 서비스는 일관되게 하나의 레드를 향해있다. 루부탱은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명품 브랜드가 되었고, 레드 솔은 하이힐계의 가장 강력한 섹시 심벌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색을 입혀라. 단순히 브랜드 컬러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심벌 컬러를 입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사명, 가치, 문화 등 모든 요소를 모았을 때 하나의 캐릭터가 연상될 정도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당신의 브랜드가 심벌 컬러를 입을 때 사람들은 당신이 창조하려는 가치에 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브랜드 스토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고, 당신의 제품이 가진 매력에 쉽게 몰입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브랜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상상해보라 누군가는 당신의 브랜드를 위해 노래를 지어 부를지도 모른다. 마치 루부탱을 부르는 제니퍼 로페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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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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