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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강사다: 조별 과제 – 집단지성의 인문학

‘나는 시간강사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시즌2에서는 ‘시간강사’로서의 삶을 돌아보려 합니다. 4학기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오히려 제가 학생들에게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필자)

지방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허범욱(HUR) 作, 르네 마그리트 – The Son of Man(1946) 패러디

4. 조별과제, 집단지성의 인문학

나는 학부생 시절 ‘조별 과제’를 무척 싫어했다.

수강신청 기간에 강의계획서를 살펴보며 조별과제가 있는 과목을 우선 제외할 정도였다. 누구나 경험이 있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견을 조율해 발표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새내기 때부터 몇 건의 조별발표를 거의 혼자 진행하며 나는 지쳐 버렸다.

한 번은 발표 당일에 4명의 조원 중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아서 혼자 발표를 진행했다. 늦잠을 잤다는 조원은 그나마 양반이었고, 두 사람은 수강 철회와 군 휴학으로 그 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결과나 과정이 만족스러운 조별발표도 물론 있었지만, 대부분 상처만 남았다.

어떤 교수들은 16주 강의 중 8주 이상을 학생들의 발표로 구성했다.

심지어는 전반부의 3주차가량을 강의하고서는 나머지 주차를 모두 조별발표로 채우기도 했다. 발표 이전까지 그 어떤 피드백이 없기도 했고, 발표 이후에도 코멘트가 없었다. 토론도 그저 형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주어진 특정 주제를 두고 학생들이 공부해 발표하고, 교수는 그것으로 그들을 평가한다.

학생들이 강의를 책임지고 교수는 방관자가 되어 버리는 주객전도, 스무 살의 어린(젊은) 학생이 보기에도 그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였다. 수업은 교수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느 한쪽에 책임이 덧씌워진다면 서로 성장해 나아갈 수 없다.

60대 어느 노교수는 자신의 학부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느 날 교수님이 오지 않고 조교가 들어오더라고. 그런데 ‘교수님이 개인 사정으로 못 오시니까 라디오로 대체’한다고 하더니 카세트 라디오를 틀어 주고 나갔어. 한 학기 내내 교수님 얼굴을 못 보고 라디오로 목소리만 들었는데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지, 허허.”

카세트 라디오

그는 그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 역시 16주 중 12주 가까이 학생 발표로 채우고 “다음 주에 봅시다”하는 피드백만 하던 인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그 역시 누군가의 무용담이 될 것이다.

10년 후, 조별과제에 불만이 많던 대학생은 시간강사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섰다. 나는 강의계획서를 작성하며 조별과제 없이 자신의 강의만으로 대체하고자 했는데, 결과적으로 3주 차 조별 발표 일정을 넣었다. 담당하는 강의가 조별과제 커리큘럼을 구성하도록 권장되고 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함께’ 강의를 만들어 가는 데 가장 적합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집단으로 이루어지는 ‘발표’와 ‘토론’은 활용하기에 따라 ‘최선’도 ‘최악’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첫 강의를 앞두고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조별 모임은 수업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조별과제가 스트레스가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쁜 대학생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동아리-학생회 활동, 공모전 준비, 학원, 여타 과제 등으로 21세기의 청춘은 항상 바쁘다. 하지만 수업 중 조별 모임 시간을 가지면 모든 조원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나는 발표 이전까지 2회 이상 (한 주에 두 시간씩 두 번의 수업이 있으니까 1주차, 혹은 1주차 반을 이용해서) 조별 모임 시간을 온전히 주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교수자가 즉각적인 피드백을 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가까이서 대면하며 듣는 것, 인식이 더욱 확장될 수 있도록 작은 조언을 해주는 것, 그래서 그들이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스스로 이동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 모두가 큰 기쁨이었다.

그에 더해 학생들 개개인의 의욕과 참여도를 가늠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봄볕이 따뜻했던 어느 날은 야외수업을 했다. 과자와 음료수를 사 주고 조별로 자유롭게 자리를 잡아 토론하도록 했다. 학교 신문사 기자를 하던 Y가 “이런 게 정말 대학수업이구나!” 하며 즐겁게 웃던 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2. 가장 가벼운 주제를 선택하게 한다

글쓰기 주제는 ‘내가 잘 아는 것’, 혹은 ‘내가 관심 있는 것’ 둘 중 하나라도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쓰기는 지루하고 고된 행위가 된다. 조원들의 합의를 통해 자유롭게 주제를 선택하도록 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주었는데, 내 주변에서 문제를 포착해 사회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 이었다. 무거운 주제를 선택하기는 쉽고, 무겁게 풀어나가는 것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성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학생들이 자기 주변에서 문제 탐색을 시작해 그 어떤 사회적 문제이든 주변의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기를 바랐다. 주변의 가장 작고 가벼운 문제를 무거운 영역으로 치환시키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인문학적 성찰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을 잘 이해한 학생들은 정말로 훌륭한 발표를 해 주었다. (후반부에 그 사례를 제시할 것이다.)

발표 수업 대학 학생

3. 토론에 모두가 참여하도록 그리고 나의 포지션은 교수이자 학생

30분 발표, 20분 논평, 10분 쉬는 시간, 30~50분 토론으로 조별 발표를 세부 구성했다.

논평에서는 챕터 구성과 인용방식, 발표자의 태도까지를 세밀하게 지적해 주었다. 이것은 내가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첫 주차 학생들은 거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발표를 했는데, 각 주차가 거듭될수록 학생들은 점차 세련된 방식의 발표를 해 나갔다. (전반부의 조원들에게는 플러스 점수를 주었다.)

토론에는 점수 비중을 크게 두었다.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학생은 원하는 학점을 받을 수 없을 거예요, 하고 공지했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맡기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자연스러운 토론이 되도록 지켜보았고, 의미 있는 방향으로 지속하지 못할 경우에만 참여해 작은 화두를 던져 주었다. 가끔 ‘교수’가 되어 개입하는 일도 있었는데, 어느 학생이 ‘억지’를 부리는 경우에 한해서였다. 토론의 승자가 되는 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다.

가장 좋은 인상을 남기는 토론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안다.

“이 부분은 제가 부족했는데 덕분에 더 좋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최악의 토론자이다. 연구자들이 모인 학회에서도 가끔 이런 경우를 본다.

4. 조장에게는 조원 평가 권한을 준다

조장에게는 조원들에 대한 간단한 논평을 첨부할 권한을 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칠 것을 우려해 모임 횟수와 출석률, 맡았던 역할과 성취도 평가 등만을 객관적으로 담도록 했다. ‘프리라이더’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는데, 얼마나 실효성이 있었는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조장에게는 적당한 책임감을, 조원들에게는 긴장감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3주차 수업에 이르러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구성된 조를 공지하고, 몇 가지 당부를 더했다. 위에 언급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요약하면 ‘성실하게 합시다’하는 것이었다. [조별 과제 잔혹사]라는 짧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중간고사 이후 12주차부터 조별 발표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주변에서 문제를 포착해 달라는 요구를 대부분 잘 수용했다.

  • 우리는 왜 조별과제를 하는가
  • 우리가 받는 용돈은 충분한가
  • 지방대학생의 꿈

이러한 주제들이 기억에 남는다. ‘용돈’에 대해 발표한 조는 대학생들이 받는 평균 용돈과 그것의 사용처를 분석했다. 과다 지출되는 항목에 대해 분석하니 문화비보다는 유흥비가 월등히 많이 들었다. 그들은 대학로에 그 어떤 문화 시설도 없다는 데 인식을 확장했고, 그에 따른 해결방안을 다양하게 내놓았다. ‘지방대’ 발표조는 서울 도심의 대학로와 자신들의 대학로를 위성사진으로 비교했다.

잘 구획된 도로-빌딩, 논과 산으로 둘러싸인 학교 그 구도가 확연히 드러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대도시 문화를 따르려 하기보다는 학교 주변 환경을 이용해야 한다는 분석이 이어졌고, 지역 관공서의 도시 개발 계획을 열람해 구체적인 상을 그렸다. 도시환경학과 교수님의 인터뷰를 인용하기도 했는데, 학생들이 지역성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묻자 그는 무척이나 기특하게 생각하며 성실히 답해 주었다.

학과 잠바와 디자인 

가장 기억에 남는 발표는 ‘학과 잠바와 디자인’이었다.

과 잠바

 

조원들은 대부분이 ‘과잠’을 입고 있었다. 모두가 당연히 입고 다니는 이것에 대해 분석해 보고 싶었다. ‘과잠’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열심히 분석하고 있기에 나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잠바에 엠블럼이 몇 개나 있을까?”

학생들은 하나, 둘, 셋, 세다가 몇 개가 있노라고 답했다. 그러자 어느 조원이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 서울대, 연고대는 몇 개의 엠블럼을 새기고 있을까?”

누군가가 “내 친구가 연대에 다니니까 카톡으로 물어볼게.”라고 했고, 그들은 곧 내게 정식으로 개별 면담을 요청했다.

“연세대와 고려대는 잠바에 6개의 엠블럼이 있고, 서울대는 3개 그리고 서울의 모 중위권 대학은 2개, 주변 지방대는 1개가 있어요.”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들은 디자인이라는 것이 각 집단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발표를 준비했다. 그리고 발표 당일, 그들은 어렵게 구했을 각각의 과 잠바를 입고 강의실을 런웨이처럼 활보하며, 각 학교의 과잠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 권력화하고 있는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나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우리 사회의 ‘명품’들이 자신들의 상표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그것은 ‘과잠’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지 성찰했으면 더욱 좋았겠다고 논평했지만, 어린 제자의 인문학에 이미 충분히 감명받았다.

조별 발표와 토론을 통해, 나는 평범한 집단 지성의 힘을 항상 확인한다. 가능성을 열어 주는 것만으로도 어린(젊은) 학생들은 스스로 훌륭한 인문학을 생산해 낸다. 여기에는 명문대생도 지방대생도 없고, 건강한 청년들만 있다. 그들이 나름의 성찰에 이르고 웃음 짓는 모습을 보며, 나는 비로소 강의실에서 당당해졌다. 내게 더없이 좋은 ‘선생님’인 그들에게 언제나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물론 그러한 경험이 매시간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조원 간의 불화로 나를 찾아오기도 하고, 그저 구색만 갖춘 무난한 발표를 하는 조가 적지 않다. 조별 과제라고 하면 한숨부터 쉬는 학생들을 다독여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고학번 분반일수록 조별과제에 대한 혐오감은 더 심하다. 매학기 부족했던 점을 기억하고, 새롭게 반영하려 애쓰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

‘왜 조별과제를 하는가’에 대해 발표한 학생들 역시, 조별과제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구현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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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309동 1201호
초대필자. 대학강사

지방대 시간강사,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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