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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에 관한 증언: "요즘 기자들은 직장인이야"라는 당신에게

이 글은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가 쓴 ‘박원순과 재능사회의 비참함’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필자의 동의 하에 원문을 일부 편집했습니다. (편집자)

“요즘 기자들은 기자정신이 없어. 기자가 아니라 직장인이야.”

기자가 되고 몇 년 굴러보니 ‘저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모욕 

저 말은 모욕이다. 모욕인 것은 분명한데, 기자가 아니라 직장인에게 모욕이다. 저 말을 종종 듣는다. 기자의 소명의식을 강조하는 취지일 테다. 그 소명의식에 나 역시 기꺼이 동의하지만, 저 말에 담긴 기자라는 직업이 우월하다는 전제는 잘못됐다.

나는 그 관습적인 특권의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직장인 vs. 기자 

직장인의 모습을 아는가?

잔업에, 야근에, 회식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상사와 거래처의 부당한 지시도 참아야 하고, 빠르게 변동하는 현대사회에도 잘 적응해야 한다. 영어도 기자보다 더 잘해야 하고, 대다수 기자들이 잘 다루지 못하는 엑셀 활용도 기본이다. 정작 출입처에 처박혀 있는 기자만큼 기술변동에 무감각한 존재가 또 어디 있으며, 갑질이 배인 기자만큼 자신의 생산물에 대해 무책임한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검찰 조사받으러 나가는 사주에게 노골적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대통령에게 “너무 안고 싶었어요”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은 ‘영혼 없는’ 직장인이라서가 아니라, 영혼을 담아 이익을 계산할 줄 알고 자신이 권력의 끄트머리에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한 유사권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욕 

그러니 직장인에게 모욕이다.

‘직장인’이라는 비유는 공익이 아닌 사익에 매몰됐다는 비유적 수사라지만, 권력에 대한 의지 없이 회사에 매여 있는 직장인은 정작 그런 짓 안 한다. 내 아는 직장인은 “XX그룹 X부장 수사 안 하냐?”라고 찔러주더라.

‘사명감’ ‘비판정신’은 기자의 전유물? 

저 언사가 최악인 점은 무엇보다도 ‘사명감’, ‘비판정신’ 등의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노동자 일반의 것이 아닌 기자들만의 것으로 소유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학자도 아니면서 학인지향 사회의 유물은 쓸데없이 계승한다.

직장인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지식인을 끊임없이 분리하려는 시도는 “대학생 때는 진보적인 사람도 직장생활하면서 보수화한다”는 486(혹은 그 이전)세대의 경험과 결합해 아랫세대를 비판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2030세대가 사회에 관심을 가질 무렵 사회는 이미 민주화한 틀 위에서 보수-진보가 경쟁하는 체제였고, 거기에 절반이 보수를 택했을 뿐인데, “20대가 보수화됐으니 미래는 없다”고 호들갑 떠는 식이다. 그들의 사고 체계에서 대학생 때 보수화한 이들이 직장인이 되어 더 보수화할 것이니 화들짝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들이 애써 소중히 여기는 ‘노동자’라면 바로 직장인과 구분되는 조직화하고 투쟁 현장에도 나오는 이들만 노동자일 것이다.

2030도 각성하고 분노한다 다만 조직화하지 못할 뿐 

내 경험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대학생 때 보수적이던 동기와 선후배들도 취업하고 혹은 취업을 준비하는 여러 과정에서 조직문화를 경험하면 도리어 더 진보적으로 변한다. “우리 회사는 대체 왜 노조가 없냐?”고 분개하고, “남자상사들 성희롱 저거 어떻게 안 되느냐?”고 한다. 아이를 낳아 키워도 마찬가지다.

다만 분노를 인터넷에 쏟아내는 것 말고 조직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잘 모를 뿐. 분노를 토할 뿐 그 분노를 조직화하고, 저항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을 모르는 이유는 대학생활 때 그 조직과 저항의 방법론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여기에 더해 저항을 조직하는 일을 경험할 수 없도록 끊임없이 노동자와 노동자를 분리시키고, 자기 삶의 조건을 성찰할 수 있는 ‘여유’라는 틈을 주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직장인’을 비하하며 ‘기자정신’ 운운하는 이들은 진정 그 기자정신으로 파고들 대상마저 잘못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런 기자들은 오히려 좀 더 좋은 직장인이 될 필요가 있다.

486 보수화의 뿌리는 무엇인가 

486세대 운동권이 민주화에 기여한 공은 인정받아야 하지만, 저런 언사를 접하면 대학 진학률이 30%도 안 되던 시절 대학생이었다는 ‘비범함’이 그들 저항정신과 정서의 뿌리였고, 바로 이 지점이 보수화의 진짜 원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보수화된 적이 없었다. 애초에 ‘평범함’을 탈출하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는 태도는 그대로 유지해왔을 뿐인데, 사회가 움직이다보니 보수화된 것처럼 보였을 터. 비범함으로 군부독재를 부쉈던 그들은 모두가 비범함을 향해 달려 나가는 세상에 문제의식을 가지기보다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을 것이고,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이렇게 동의를 얻었다.

민주화운동

“끝까지 투쟁하자””전두환과 타협없다” “타도하자 친미 독재”라는 기치를 걸었던 민주화운동 ‘선배’들

놀라운 재능도 기어코 평범하게 … 재능사회의 비참함 

물론 시대의 맨 앞줄에서는 전체 조류가 보이지 않으니 재능사회의 비참함을 특정 세대, 특정 직군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은 의식/무의식에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평범함에 대한 경멸을 좀 더 털어내야 한다. 진보니 민주니 자처하면서도 ‘깨어있는 시민’과 같은 표현으로 선거에서 평범함이 아닌 비범함에 호소하다 번번이 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엄청난 재능도 기어이 평범함으로 만들어 버리고, 죽기 살기로 살 생각 하지 않으면 살 생각 자체를 하지 말라는 우리사회의 폭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미친 세상에 대한 증언자  

평범한 각자가 이 미친 세상의 증언자다.

  • 라디오에 글만 보내면 당첨이지만 “이런 것이 무슨 소용 있나”라며 본능적으로 시니컬함을 익힌 동생
  • 누가 봐도 반듯하고 성실하지만 계약직 문턱을 넘기 힘든 친구
  • 재능을 살려 미대를 나왔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업무량에 치여 볼 시간도 없이 사는 친구
  •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했지만 중학교 시절 외고입시에 실패해 “나는 왜 근성과 끈기가 없을까”라며 자책했다는 대학 후배

평범한 내 주변 이들을 보면, 나는 우리 사회가 미쳤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광기를 눈치챈 친구들 

나 역시 매일 재능 없음을 외치며 찌질거리는 이 시대 젊은이에 불과하다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미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의 광기를 적잖은 청년들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숙련은 어쩌다 스펙이 됐나’고 예비연구자가 궁금해 하고, 지난 대선 즈음 “안철수 웃기지 마라 그래. 보통사람에게 창조니 융합이니 뭐가 중요해. 그냥 월급 따박따박 제때 나오는 게 최고야”라고 내 학창시절 최고의 전 총학생회장은 당당하게 선언한 바 있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됐는가]라고 동년배 필진들은 재능사회가 숨긴 열정착취사회의 맨 얼굴을 비판한다.

진보의 싹은 비범이 아닌 평범에서 

나는 어떤 기자가 기자정신이란 것을 발휘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타고난 탁월한 사명감에서 출발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봐도 진보의 싹은 비범이 아닌 평범에서 틀 거 같다. 깨어있다는 비범함이 아닌 억압받는다는 평범함에서 말이다. 그 평범함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평범한 개인이 모여 만든 집합적 힘을 주목할 때 비참함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본다.

앞선 글에서 내가 박원순 시장에게 재능사회의 책임을 과도하게 넘긴 측면은 있다. 그러나 박 시장 세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 보는데 그것은 박원순의 한계라기보다는 그 세대의 한계다. 나의 세대가 한국전쟁과 보릿고개식 비참함을 결코 머리 이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비참함을 직접 체험해 본 세대가 아니면 안 된다.

대학을 다녔다면 90년대 학번부터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사에서 젊은 정치인이나 필진들을 2030세대 따위로 뭉뚱그려 소비할 것이 아니라 빨리 링 위에서 대등한 경쟁자로 싸움을 붙여야 한다.

‘평범한 직장인’과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싶은’ 이들의 욕망과 현실에서 출발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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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박은하
초대필자.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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