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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리스트 2: 내가 애착하는, 애착했던 기계

슬로우 리스트 두 번째. 편집팀원들이 오래도록 아끼는 기계, 아꼈던 기계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모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애착하는, 애착했던 기계는 무엇입니까? (편집자)

비알레띠 브리카 / 네스프레소

네스프레소와 비알레띠 브리카. 새카만 악마의 유혹!

by 강 정수

4벌식 타자기

이제 금방 한글을 익힌 나에게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타자기를 장난감(?)으로 주셨을까. 4벌식-2벌식-3벌식으로 이어지는 나의 한글 타자 인생의 시작점. 그때 익힌 기계식 타자 습관 때문에 컴퓨터를 쓰는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키보드 부서지겠다’며 핀잔을 주곤 한다.

by 뗏목지기™

2002년산 델 데스크탑 컴퓨터 Dimension 4500

10년 쓴 컴퓨터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벌인 약간의 생산적인 행각과 대다수의 허무맹랑한 일이 모두 이 기계 안의 칩들과 전선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어떤 사람보다, 또 어떤 물건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동반자다. 처음에는 쌩쌩한 컴퓨터였지만 최근 1년 여 동안에는 도 닦는 기계로 변신하였다. 컴령으로는 장수만세에 도달한 고령임을 무시한 채 탭 15개는 기본으로 열어놓거나 무거운 프로그램을 돌리는 바람에, 수시로 잠수에 들어가고 먹통 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나는 나무아미타불 알라후아크바르 아멘을 계속 번갈아 읊조리며 마음을 다스리는 참선에 들어갔다. 덕분에 나의 도력은 3갑자쯤 향상되었으며, 부수적으로 기타 실력도 조금 늘었다. 엔터키 치고 한 곡쯤 연습하고 나면 원하던 프로그램이 뜨곤 했기 때문이다.

노대인은 인텔 펜티엄 4를 CPU로 하고 하드는 80GB, 메모리는 256MB에 윈도우 XP가 얹혀서 왔다. 메모리는 견디다 못해 768MB로 늘렸다. 하드는 진작에 배가 터지도록 꽉 차서 외장 하드를 기본으로 달고 살았다. 그래도 대인께서 잘못한 일은 별로 없다. 그동안 하드 한번 엉켜 포맷한 것과 전원공급장치 팬이 나가서 교체한 것을 제외하면, 주인의 허무맹랑한 행각을 아주 충실히 수행해 왔다. 2009년 초에 블로그 독자들에게 컨설팅을 받았는데, 중론이 이제 고이 보내드리라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3년을 더 붙들고 도를 닦았다.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투박한 조강지처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날렵하고 세련된 노트북보다 더 정이 갔다. 두어 주 전에, 지난 10년 동안 달려 있었던 탯줄 같은 전원 공급선을 뽑고 이별을 했다.

by deulpul

젠하이저 PC131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헤드셋. 오래 전, 미국에 있는 여자 친구와 스카이프로 대화하기 위해 샀던 기계(?)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도 많았는지… 우린 서너 시간을 일이 분처럼 흘려보내곤 했다. 지금은 그저 무심히 바라보곤 하지만, 아니 그저 저기 컴퓨터 본체 위에 먼지 쌓인 채 놓여 있지만, 그 환한 목소리, 금방이라도 나를 꼭 껴안을 것 같은 그 웃음소리, 아직도 저 속에 살아 있는 것만 같다.

by 민노씨

HP 인디고 10000

디지털 프린트 최상위 모델 인디고의 최신, 최상위기종! 그 육중하고 투박한 몸매… 10,000 dpi는 우습게 넘어가는 괴물 같은 해상도… 판톤칼라와 거의 유사한 품질과 7색 출력! 토너를 갈 때마다 내부를 열면 그 안의 복잡한 메커니즘은 보는 이에게 희열과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것은 마치 디지털 출력계의 범고래 같지 아니한가! 여기서 함정은 귀한 몸뚱이만큼 거대한 몸값 덕분에 본인도 충무로에서 7500 모델 밖에 구경 못 해봤다는 것이다. 누구 10000 모델 국내에서 쓰고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우리 같이 후웅~ 푸쉬푸쉬하는 출력 소리의 경이로움을 공유합시다. 후웅~ 푸쉬푸쉬~

by 박리세윤

Nikon F3hp

첫 SLR 카메라.

내게 F3는 단순히 필름을 감광시키는 기계가 아닌, 대학 시절 창조의 희열을 느끼게 해준 도구다.

by sharefeel

아이리버 iHP-120D

오랫동안 실물이 존재하던 미디어(카세트 테이프, CD, MD) 플레이어들을 다수 사용하다가 처음으로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미디어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 사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이 모델. 온갖 CD를 리핑해서 음악을 넣고 다니며 하드 드라이브 바늘이 휘도록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운드 공부할 때 녹음한 트랙들부터 믹싱 데이터까지 별의별 것들을 다 저장해 둔 기기였는데, 오랜 긴장 끝에 마음 편하게 술을 먹던 어느 날 잃어버렸다. 투박하지만 오작동이 없는 마치 아날로그 제품과 같은 손맛을 주었던 기기. (이걸 잃어버린 후에 다른 MP3 플레이어를 구입했는데 영 손에 익지 않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참고로 내 평생에 구입한 MP3 플레이어는 이 두 기종이 전부다.)

by 써머즈

크레도스

그딴 식으로 차를 몰고도 여태껏 살아있었음을 감사하며. 엔진만큼은 정말 좋았다. 1997년식이라 정비를 자주 받았는데 ‘차를 바꿔야 할까요?’라고 물으면 엔진 덕에 5년은 더 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부속품들이 낡아 생명을 위협받은 순간이 적지 않았다. 결국, 도로 한복판에서 브레이크가 듣지 않으며 앞차를 박아 견인됐는데 그것이 그냥 마지막이었다. 마치 다 늙어 볼품없어진 당나귀를 채찍질하며 타고 다니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라도 집사와도 같은 헌신성에 추모사를 남기고 싶다. 넌 나의 로시난테였어 ㅠㅠ

by 설렌

아이폰

“아무리 뻔한 답이라도 한 사람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타공인, 2000년대 후반을 뒤흔든 바로 그 기계. “애플이 휴대전화를 재발명했다”는 오만해 보이는 선언과 함께 나타난, 그리고 그것이 결코 오만만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인 물건. 물론 그 이전에도 ‘스마트폰’이라 불리는 기계들은 많았지만, 이 작은 기계는 바로 그 ‘스마트폰’조차도 재정의해버렸다. 그래, 너무 뻔한 답이지만, 어쨌든 아무도 이 기계를 얘기하지 않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by 임예인

중국산 성인용품

중국 갔을 때 외로움에 굶주린 지인 A가 중국산 성인용품을 사 왔다. A는 이를 몇 번 쓰더니 지인 B에게 반값에 팔았다. B는 또 그것을 C에게 반의반 값에 팔았다. 나는 그것을 반의반의반 값에 샀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 이후 누구도 그 기계를 사지 않았고, 우리만의 아름다운 비밀로 남아 있다.

by 이승환

PS2 DUALSHOCK®2

PES(위닝일레븐 PC판)을 즐기기 위해 약 5년 전에 구입했다. 위닝일레븐은 내 생애 최고의 게임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위닝일레븐은 내가 직접 그라운드를 뛰고 있는 긴장감과 내가 직접 골을 넣은 것 같은 희열을 안겨주었고,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와 격돌할 때 내 손에는 항상 이 조이패드가 있었다. 스티븐 제라드, 화이팅!

by 이병찬

356미니 (기계식 키보드)

단순히 글자를 입력하는 것을 넘어 키보드는 사람과 기계,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잇는 매개라고 할 수 있다. 더 좋은 키보드에 대한 욕망은 소통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한다. 최고의 키보드는 자판 위를 구르는 손가락이 머릿속의 생각을 따라잡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솟아나게 만드는 그런 키보드다. 가장 아끼는 키보드는 알루미늄으로 만든 356미니, 체리 구형 청축에 이색사출 레드얼럿 키캡을 씌웠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적 디자인에 찰칵찰칵 명확한 구분감과 가벼운 탄력, 그리고 리듬감. 생각하는 대로 곧바로 손가락이 반응하는 느낌이랄까. 이건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도 같다. 물론 300만원짜리 몽블랑 만년필로 쓴다고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장수가 좋은 칼을 욕심내고 화가가 좋은 붓을 욕심내는 것은 당연한 일. 경쾌하고 청량한 느낌, 손에 맞는 좋은 키보드는 글 쓰는 일을 즐겁게 만든다.

by leejeonghwan

Eton Microlink

미국적십자가 미는 크랭크/태양열 충전식 라디오-플래시-충전기. 언젠가 재난이라도 닥칠 때, 이걸로 목숨을 구할 것 같아서 무척 아낀다. 멋이나 즐거움보다도, 인간을 구하는 기계가 역시 최고.

by capcold

LG 브라운관 TV

10년 전인 2002년 결혼할 때 사 온 29인치 브라운관 TV. 너무나 무거워서 밑을 받치고 있는 받침대가 휘어질 정도. 하지만 10년 동안 너무나 튼튼하게 잘 썼다. IPTV 연결해서 보고 있는데 물론 LCD LED TV처럼 선명한 풀HD 화면을 볼 수는 없지만 크게 불만은 없다. 평면TV 쓰는 사람들 2, 3년에 한번씩 비싼 돈 내고 부품 교체하던데 CRT는 탱크다. ^^

by 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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