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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민주주의에서 국민들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

요즘 유난히 이 문구를 자주 만난다. 벌써 몇 번째다. 솔직히 불편하다. 맥락을 해석하면 시민의 무지를 들먹이는 용도로 동원된다. 현 정권을 뽑은 무지한 시민 때문에 세월호와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이 문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답답한 마음, 이해는 한다. 하지만 너무나 위험한 발언이다.

수구의 원조, 조제프 드 메스트르

조제프 드 메스트르가 누구던가.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며 절대 군주 정치와 교황의 절대권을 주장했던 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프랑스의 전통주의, 국가주의 철학의 대표적인 사상가이다. 말이 좋아 국가주의자이지 반동주의적 이념을 대표하는 자다. 이를테면 수구의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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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드 메스트르(1753~1821) (사진: 위키백과 공용)

메스트르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프랑스) 혁명이란 역사적 연속성의 불행한 단절이며 가톨릭 전통에서의 그러한 이탈 행위는 반드시 제압돼야 한다.”

보수와 수구(반동주의)는 구별해야

이나미 박사(연세대)는 [수구 이념의 특징: 보수이념과의 차이를 중심으로](2009)에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보수주의는 버크(Edmund Burke)식 보수주의와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식 보수주의로 나뉘기도 하는데(Viereck 1981, 14-16) 전자는 보수주의, 후자는 반동주의로 볼 수 있다. 두 입장 모두 프랑스 혁명에 반대하기 위해 등장하였으나, 버크는 변화를 어느 정도 용인하여 융통성이 있었고 입헌주의자요 의회주의자였다. (… 중략 …) 반면 버크와 달리 드 메스트르는 반동주의자로서 군주제와 권위주의를 옹호했다. 우리 역사의 수구파 역시 군주제를 옹호했는데 그 이유는 군주제가 공화제보다 더 공정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반동주의의 특징은 수구 이념의 특징과 동일한 것이라고 하겠다.

– 이나미, ‘수구 이념의 특징: 보수이념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와 NGO 2009 제7권 제2호, 294쪽.

이나미 박사는 보수주의와 반동주의를 명확히 구분한다. “반동주의 역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주의로서, 이러한 반동주의의 내용은 개혁을 일부 수용하고자 하는 보수주의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드 메스트르는 그 반동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꼭 유념하자.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수구 반동주의자를 인용한다는 건 나가도 너무 나간 꼴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런 맥락에서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발언은 귀를 기울일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 정치는 그 나라의 시민 수준에 불과하지 시민 수준이 이런데 정치가 좋아질 수 있을까 이렇게 말하지만 정치학의 출발은 ‘좋은 정치가 좋은 시민들 만든다’라고 하는 생각 속에 있다.   (…중략…)

백년 전의 스웨덴을 보면 유럽에서 가장 교육수준도 낮고 가장 못 배웠고 문화라고 하면 거의 술 많이 마시는 문화가 있을 정도였다. 그 사이 스웨덴의 사회도 바꾸고 시민성도 이렇게 달라지게 만든 건 스웨덴의 정치가 역할을 크게 했다.”

–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지금은 ‘에드먼드 버크’ 떠올려야 할 때

시민이 무지하고 무식하다는 이야기 성급하게 꺼내 들지 말자. 시민의 일상적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굴러가지 못한다.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건 정치의 몫이다.

무지한 정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정치를 비판해야지 시민의 무지함을 탓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자신의 편이 당선되면 시민이 위대하고 반대편이 당선되면 시민이 무지하다고 하는 아전인수, 아무리 봐도 너무 위험한 발언이다.

지금 우리가 떠올려야 할 역사 속 정치인은 르 메스트로가 아니라 에드먼드 버크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버크는 이렇게 말했다.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The only thing necessary for the triumph of evil is for good men to do nothing

http://en.wikipedia.org/wiki/File:EdmundBurke1771.jpg
에드먼드 버크(1729~1797) (사진: 위키백과 공용)

참고: 버크가 정확하게 이런 말을 했다는 근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유사한 취지의 진술을 그의 책(Thoughts on the Cause of the Present Discontents, 1770)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버크가 한 말로 널리 인용된다. (편집자)

[box type=”info” head=”수구 이념과 보수 이념의 차이 (이나미)“]

수구 이념의 대안적 개념들로는 반동주의, 근본주의, 정통주의를 들 수 있다.

1. 그 특징으로는 첫째, 이분법적 세계관을 들 수 있다. 보수주의는 세계를 하나의 체계 내지 질서로 보는 반면 수구 이념은 세계를 두 개의 영역으로 본다. 즉, 자신의 영역을 이상적 세계로, 다른 영역은 열등하거나 악한 세계로 인식하여 이 두 세계는 서로 투쟁하는 관계로 파악한다.

2. 이러한 수구 이념의 특징은 수구의 두 번째 특징인 유토피아니즘으로 나아가게 한다. 보수주의는 인간 이성을 불신하므로 이러한 이성에 따른 이상 사회 건설 즉, 유토피아니즘을 반대한다. 그러나 수구 이념은 자신의 신념에 따른 정치상 이상을 추구한다. 단, 그것이 진보와 다른 것은 유토피아가 미래가 아닌 과거에 있으며 그 목표는 ‘좋았던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다.

3. 셋째 보수주의는 실리를 중시하는 반면, 수구 이념은 원리를 중시한다. 보수주의자는 실리 이외에 고수해야 할 원리가 없으므로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언제든지 변신할 수 있다. 그러나 수구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야 할 원리가 있으며 특히 경전이 존재한다. 경전은 무오류이며 완전한 것으로 인정된다.

4. 넷째, 수구 이념은 경전의 원리를 고수하기 위해 실리의 문제뿐 아니라 생사의 문제까지 뛰어넘고자 하는 극단주의가 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반면 보수주의는 안전을 중시하므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기회주의적으로 대세에 따른다.

5. 마지막으로, 수구 이념은 본래의 원칙과 전통의 고수가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다른 모든 개혁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완강히 변화를 거부한다. 반면 보수주의는 버크의 사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성을 존중하는 전통을 갖고 있으며 수구 이념과 달리 남녀차별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 이나미, ‘수구이념의 특징: 보수이념과의 차이를 중심으로’[/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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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조제프의 수구주의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저 사람의 말은 솔직히 틀린 게 없지요. 아무리 선한 의도를 지닌 국민이라 하나, 대중의 생각이란 무지하고 단순하며, 선동하기 또한 그렇게 어렵지 않지요. 부르주와들이 모여 무지한 백성들까지 선동해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킨 후, 프랑스 사회가 정말 살기좋은 사회가 됬나요? 혼란은 더 커지고, 빈부격차의 대상이 베르사유의 귀족에서 부르주아로 넘어갔을 뿐, 달라진 건 없었을 텐데요. 모든 국민들이 무지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다는 건 아닙니다. 각자 시민으로서 정치에 대한 다른 관점과 믿음이 있을 수 있지요. 다만 앞뒤 사정없이 “박통 딸이니까 뽑아야된다, 빨갱이 몰아내야되니까” 무조건 박근혜다라며 표를 던진 노인분들, “정치고 뭐고 다 모르겠는데, 투표는 해야겠고… 그냥 기호 1번 찍지 뭐”(농담같죠? 투표가 이뤄질 당시 군부대에 있어서 전원이 다 투표를 해야됬는데, 투표하고 나와서는 하는 소리가 저런 애들을 생각보다 많이 봤어요. 나이 20살 넘은 성인이란 것들이..) 염세주의적이로 들릴 진 모르지만 앞으로 나아질 방법은 없을 겁니다. 지도자가 누가되든, 나라에 대졸자 같지도 않은 대학 졸업자가 넘쳐나 사회 전체 평균 학력이 높아져도, 늘 쳇바퀴 돌 듯 반복될 거에요.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이면입니다.

  2. 그런 쳇바퀴 같이 도는 사회를 좋은 정치가 바꾸면 됩니다. 그럼 국민수준이 올라가겠죠.

  3. 제 이름 석자도 모르던 무지랭이들 있던 시절에도 진보적 변화는 답답할정도로 느리더라도 진행되어왔었습니다. 소수지만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그런 정치가를 키우고, 그런 사람들이 하는 건강하고 정의로운 정치가 세상을 바꾸겠죠.
    내가 사는세상에서는 나의 노력과 좌절이 재처럼 흩뿌려지더라도, 이 나라가 다 나은곳으로 나아갈 것을 신뢰합니다. 노회찬, 심상정 같은 분들이 척박한 이나라의 정치적 토양에서도 선출된거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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