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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사회에 선물이 되는 비즈니스를 하는 ‘산타 회사’. 필자는 [산타와 그 적들]에 다양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비영리단체, 소셜벤처 등 우리 사회의 산타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를 독자와 나눕니다. (편집자)[/box]

오늘날 기업들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든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답해야 할 질문은 “이것을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것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다.

– 에릭 리스, [린 스타트업] 중에서

비용 혁신으로 공짜보청기 만든 20대 창업자들

가톨릭대학에 다니던 한 대학생이 노인복지관에서 봉사하다가 노인성 난청 인구의 90%가 보청기를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노인복지관의 노인들은 난청으로 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보청기를 쓰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당시 시중 보청기 가격은 75만~150여만 원에 이르렀다. 정부보조금 34만 원으로는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중 25%, 네 명 중 한 명이 노인성 난청을 앓고 있는데, 정부 예산은 그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정부 보조금만으로 살 수 있는 보청기가 있으면 어떨까?’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했다. 뜻이 맞는 친구들이 모였다. 그렇게 해서 2009년, 대학생들이 만든 ‘공짜 보청기’가 나왔다. 정부보조금 34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보청기였다. 처음엔 자원봉사로 시작했던 대학생들이 보청기를 계속 만들어내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것이 ㈜딜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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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도 공짜로 보청기를… 진짜 보편적 복지”

김남욱 이사(당시 KAIST 대학생)와 원준호 팀장(당시 연세대 학생)과 함께 딜라이트 설립 멤버 중 한 명인 김정현 대표는 정부 보조금으로 살 수 있는 보청기를 출시해 100억 원 정도의 사회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맞춤양복처럼 사후 생산하던 보청기를 기성복처럼 표준화해 대량생산하고 불필요한 유통비용을 제거해 가격을 시장가 대비 50~70%대로 낮췄다고 설명했다.

“이거야말로 보편적 복지죠. 장애 진단을 받으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부자도 공짜로 보청기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들이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이들은 저소득층 난청 노인을 위해 표준화한 제품 1가지만 인터넷사이트에 올려놨다. 공짜 보청기는 소문만으로도 마케팅이 됐다. 고객이 늘면서 고객의 서비스 니즈도 높아졌다. “직접 보고 사고 싶다”, “AS를 해달라” 등등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가 쏟아져 들어왔다. 여기 대응하려면 추가 투자가 필요했다.

“저희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한 일인데,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어요. 없는 것보단 낫지만 불완전한 제품이었죠.”

당시 대학생이던 창업멤버들은 다들 학업을 중단하고 사업에 몰입했다. 보청기 가격을 정부 보조금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인건비도 받지 않았다. 이건 당연히 기업체가 아니었다. 경영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들은 사업을 비영리재단에 넘기려 했다. 인수받겠다는 재단이 없었다. 그러던 중 라준영 가톨릭대 경영학 교수 등 주변의 조력자들이 이들을 부추겼다. “제가 보청기를 만들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고 자원도 모았으니 차라리 돈 되는 기업으로 만들어서 완전한 서비스를 만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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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창업멤버들은 외부의 투자를 받기로 결정했다. 2011년 4월 대원제약로부터 20억 원을 투자받았다. 미국의 사회적기업 인증기관 비-랩(B-Lab)으로부터 아시아 최초로 비-코프(B-Corp) 인증을 받기도 했다. 비-코프의 B는 이로움(Benefit)을 뜻한다. 기업이 흔히 중시하는 수익(Profit)을 넘어 널리 사회에 이로운 기업에 주는 인증이다. 비-코프 인증은 매년 업데이트되는 180여 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채점해 80점 이상(200점 기준)일 때 받을 수 있다. 심사 기준인 비-임팩트 평가는 지배구조의 투명성, 지역사회, 환경, 소비자, 직원 관련 항목을 주로 묻는다.

2012년, 이 업체는 연 매출 42억 원, 직원 42명, 13개 직영영업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기간 3년여 동안 창업멤버들은 많은 것을 내놨다. 3명 모두 3년 동안 대학 졸업장을 받지 못했다. 김 대표는 과로와 잦은 비행으로 일시적인 청력 이상을 겪기도 했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 6시간 빼놓고는 일만 했어요. 하루에 열두 번씩 회의를 가졌어요.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사회적기업 동아리에서 같이 고민하던 사람들이 이탈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해보리라 결심했거든요.”

딜라이트 상담실 문 옆엔 나무로 새긴 간판이 있다. 공짜로 보청기가 생겼다고 한 할아버지가 직접 조각해서 걸어준 것이다. 김 대표는 “그런 분들 때문에 딜라이트가 생겼고 그런 분들 덕분에 힘을 낸다”고 말했다.

“근처에 오실 때마다 떡볶이 사오는 할머니도 계세요. 우리 영업점 점장한테는 미혼이면 남자 소개해주겠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대요. 편지도 많이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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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보청기’ 혁신과 복지의 합작품

‘공짜 보청기’는 제품 혁신과 정부 복지의 합작품이다. 만약 딜라이트의 반값 보청기가 없었다면 사회는 75만~150만 원짜리 보청기를 살 수 있도록 보조금을 높여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딜라이트가 만든 경영 혁신은 사회 공동의 비용을 낮췄다. 어떻게 했을까.

크게 두 가지를 잡았다. 하나는 제품 제조비용, 또 하나는 유통비용.

먼저 제조비용. 딜라이트는 고객한테 최종 납품하는 단계까지의 비용을 낮추기 위해 먼저 보청기를 표준화했다. 그래서 기존 보청기와 동일한 부품을 탑재했는데도 딜라이트 보청기는 제조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다음은 유통비용. 딜라이트는 기존 보청기처럼 유통 채널에 마진을 주지 않고 직영으로 고객과 거래하는 방식을 취했다. 유통비용이 줄어들면서 판매가격이 낮아졌다. 결과적으로는 박리다매로 운영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런 식으로 1만 대, 약 100억 원 상당의 보청기가 팔렸다. 거품을 뺀 보청기의 출현은 시장에 상당한 충격를 줬다. 김 대표 전언으로는 보청기 평균 판매단가가 30% 가량 떨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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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라이트’ 고발한 한국보청기협회… 분명한 것 하나

충격을 받은 업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국보청기협회는 2013년 10월 딜라이트를 공정위에 고발했다. 부당한 표시 및 광고행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협회는 딜라이트가 타사의 저가보청기를 구매·가공해 상호만 변경한 저가보청기라고 주장했다. 또 다수의 보청기 판매업자들을 폭리를 취하는 대상으로 내모는 등 부당한 광고행위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기 어려워 보인다. 기존 보청기 가격이 폭리를 취한 것일까, 정당한 가격일까. 딜라이트가 내보낸 광고 콘텐츠가 비방일까, 사실일까. 가리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건 저소득층 난청인에게는 저가 보청기가 필요했고, 딜라이트는 그것을 만들어냈으며, 고객들이 딜라이트를 고맙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업계와의 갈등은 아마 이지무브, 딜라이트처럼 사회 공동의 비용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출범한 회사들이라면 어느 곳이나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 격언에 “장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어내고 세상에 새 사람은 옛 사람을 대신한다(長江後浪催前浪 浮世新人換舊人)”란 말이 있다. 시장의 일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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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와 그 적들](2013, 굿모닝미디어), 103~107페이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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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보청기 업계를 조금 아는 입장에서….
    우리 사회는 좋은 얘기에 굶주려 있어서,
    마케팅 팀에서 만든 얘기에 너무 쉽게 속아넘어갑니다.
    필자도 믿고 싶었겠죠…

    왜 우리 사회에는 조금만 자세히 보면 빤히 드러나는 절반의 진실이 판을 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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