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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역이 혁명으로 물든 1848년. 그 해 9월 빅토르 위고는 국회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끄는 두 축은 언론의 자유와 선거권이라고 주장했다. 위고는 자유로운 언론 없이 정당한 투표 또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참된 언론이 없는 상황에서 형식적 선거를 통한 만들어진 합법성은 무지와 맹목적인 선동, 진실 은폐의 산물에 불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언론의 위기가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졌다. 혁명과 반혁명이 끝없이 치고받은 빅토르 위고의 시대에 자유 언론의 적은 민주공화정을 반대하는 보수 반동의 왕정복고 세력이었다. 하지만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미 실현된 우리 시대에 언론 자유에 대한 침탈은 가시적 폭력이 아니라 자발적 복종으로 이루어진다. 즉, 우리 시대의 언론 위기는 정치권력의 검열이나 자본권력의 적극적 회유를 통해 생겨난다기보다는 언론 스스로 권력 감시 역할을 포기하고, 미끼 기사를 양산하는 자발적인 투항과 사명감의 포기로 발현된다.

지난 글에서는 메디아파르트를 통해 유료 인터넷 신문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이 글에서는 메디아파르트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프랑스의 대항권력으로 떠오른 메디아파르트 

창간한 지 5년, 이제 메디아파르트는 거대한 자본과 정치 권력에 맞서는 프랑스의 대항권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주류 언론매체가 권력과 자본에 밀착하거나 이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가운데 작은 인터넷 독립 매체가 탐사 저널리즘의 상징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프랑스 언론 전반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 미디어 역사가 크리스티앙 델포르트(Christian Delporte)에 의하면,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권위 있는 정치 언론에 의해 권력 감시 기능이 이루어져 왔다. 언론의 비리 폭로 때문에 사임한 정부 각료는 제롬 카위작이 처음은 아니다. 1972년 조르주 퐁피두 정권 시절, 프랑스의 대표적인 풍자언론인 카나르 앙셰네(Canard Enchaine)는 국무총리인  자크 샤방- 델마스(Jacques Chaban-Delmas)가 66년부터 69년까지 납세를 하지 않은 사실을 보도했고, 결국 퐁피두 대통령은 그를 해임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르몽드와 리베라시옹이 이러한 탐사저널리즘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면 지금은 메디아파르트가 그 역할을 하는 셈이다.

프랑스 탐사저널리즘
프랑스 탐사저널리즘의 전통: 위로부터 ‘까나르 앙셰네’, ‘르몽드’, ‘리베라시옹’, ‘메디아파르트’

하지만 여전히 메디아파르트에 대한 전통 매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매체가 종이신문과는 달리 전통과 권위와는 거리가 먼 작은 언론이며 젊은 뉴스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한 12명의 베탕꾸르 게이트 관련자들이 ‘심신 미약자에 대한 권력 남용’ 혐의로 기소된 이후 탐사보도 매체로서 메디아파르트의 지위는 굳건해졌다.

뒤늦은 출발 그러나 새로운 모델 확립

‘Rue’는 ‘길’이란 뜻. ’89’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년을 상징

프랑스에서 인터넷 독립 신문의 출현은 한국보다 훨씬 늦다. 한국은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인터넷 뉴스 매체들이 등장했지만, 프랑스에서 본격적인 인터넷 독립신문은 2007년에야 탄생했다. 언론의 위기에 맞서 인터넷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리베라시옹 출신 저널리스트들이 2007년 6월 진보적인 뉴스 웹인 ‘뤼89′(Rue89)를 창간한 것이다.

2007 대선 당시 사르코지의 전 부인 세실리아 사르코지의 투표 불참을 보도하며 창간 초기부터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인터넷 신문으로서는 가장 많은 방문객 수를 보유하고 있었던  뤼89는 그 영향력에 힘입어 비영어권 온라인 저널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온라인저널리스트 교육과 광고 수익에 주로 의존하는 구조였던 이 매체는 그러나 끝내 재정적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2011년 12월 프랑스 시사 매거진 기업인 르 누벨 옵제르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에 인수되었다.

반면, 2008년 창간된 이후 지치지 않고 권력의 비리를 파헤쳤던 메디아파르트는 유료임에도 불구, 2010년 6월 2만 5천 명에 그쳤던 정기구독자 수가 파키스탄 카리치 폭발사건과 베땅꾸르 게이트 등의 특종 덕분에 2010년 가을 5만 명으로 늘어나면서 손익분기점을 뛰어넘었다.

독립성, 품질, 참여: 유료 뉴스와 탐사 저널리즘의 승리

검색엔진(우리나라로 치면 ‘포털’)에 의해 제공되는 정보의 과잉 현상, 광고 수익을 위한 클릭수 전쟁 등으로 인한 뉴스 정보의 무료화에 대한 압력은 비단 한국 언론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의 독립을 외치는 에드위 플레넬(메디아파르트 편집장)은 언론이 광고 수익에 기대면 진정한 의미의 독립성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인터넷 뉴스 매체들이 선택한 비즈니스 모델로 탓에 독자는 뉴스와 광고의 구별이 모호한 정보들로 질식당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미디어 환경에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는 의미 없는 기사를 남발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유료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료 모델은 독자에게 언론의 독립과 양질의 정보를 확실히 보장할 때 가능하다. 플레넬이 쓴 ‘한 자유언론을 위한 투쟁(Combat pour une presse libre)’에 의하면, 민주주의의 이상 실현을 목표로 하는 메디아파르트의 야망은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언론의) 독립, (정보의) 질 그리고 (독자의)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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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리에스

필립 리에스(Philippe Riès, 메디아파르트 기자)는 한 인터뷰를 통해 오늘날 민주주의에는 자본권력과 정치권력 사이의 (주로 돈과 관련된) 유착이라는 심각한 기능 장애가 존재하며 탐사보도를 하는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바로 이 폐해를 시민에게 알리는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메디아파르트는 공익이나 공공의 윤리와는 상관 없는 사안들, 예를 들어 권력자들의 사생활 관련 보도는 철저하게 배제하며 취재원을 보호하고, 더불어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대한 추측성 보도 또한 자제하는 원칙을 준수한다고 밝히고 있다.

메디아파르트가 파헤쳤던 대부분의 비리들은 현재 검찰 조사 중이다. 그들은 어떻게 정치와 자본 권력의 비리를 자유롭게 파헤칠 수 있었을까. 필립 리에스는 메디아파르트가  정부의 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는 정기구독에 의한 독립 언론이라는 점이 그 어떤 압력도 영향을 끼칠 수 없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데이터 저널리즘 구축

2011년, 메디아파르트는 위키리크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프렌치리크스‘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의 목적은 정치와 자본 권력에서 완전히 독립된 민주적 토론 공간을 형성하고, 데이터 저널리즘을 구축하는 데 있다. 특히 메디아파르트가 폭로한 모든 사건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의 무료 접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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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리크스’에서 제공하는 사진: 메디아파르트가 폭로한 사건 관련 서류들

예를 들어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2007년 대선자금 수수 의혹(메디아파르트는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대선 자금으로 5천만 유로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의 용의자인 무기 중개업자 지아드 타키닌이 사르코지의 정당이었던 UMP(대중운동연합) 소속의 몇몇 정치가들과 바캉스를 즐기거나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모습의 사진 등,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다.

프렌치리크스
무기업자 지아드 타키닌이 브리스 오르트프(전 내무부장관)와 장 프랑소와 코페(UMP 대표) 그리고 그들의 부인들과 함께 한 사진 (2003년8월)

이처럼 자신들이 보도한 주요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시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다. 또한, 시민의 참여에 기반을 둔 데이터 저널리즘 구축을 위해 시민 독자들이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편집국 기자들이 그 진위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열린 편집과 독자 참여로 만들어가는 ‘지적 역동성’

한편, 메디아파르트는 오마이뉴스처럼 시민기자들의 기사 생산을 유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구독자가 자유롭게 편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린’ 편집을 원칙으로 한다. 대화창을 통해 기자들에게 독자들이 기사의 주제나 레이아웃을 선정해준다거나 기사의 방향에 대해 코멘트 하는 방식으로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저널리스트들이 그들만의 ‘밀실’에서 벗어나 독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메디아파르트의 독자 참여 모델에 관한 한 연구, ‘메디아파르트의 기자와 독자-참여자, 협의된 관계’ 에 따르면 이 독자들은 기존 언론의 폐해에 대해 인식하고, 메디아파르트의 저널리스트들과 그 뜻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독자와 편집팀이 밀도 있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지적 역동성’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널리즘 본연으로 돌아가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독자와의 신뢰를 형성하는 것. 메디아파르트가 제시한 해법은 어찌 보면 간단해 보인다. 메디아파르트의 이러한 실험은 한국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일까. 언제까지 언론은 불신을 넘어 환멸에 빠진 독자를 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저널리즘의 위기를 넘어 존립 자체가 불확실해진 한국의 언론 상황에서 이 질문은 너무도 긴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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