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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닝 케이블 안녕.

함께 해서 괴로웠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애플이 ‘마침내’ 라이트닝 포트를 포기했다. 11년 만이다. 어제 발표한 아이폰 15부터는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USB-C 케이블로 충전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왜 중요한가.

USB의 짧은 역사.

  • 1996년 USB-A로 시작해서 2000년 무렵 USB-B와 Mini-USB가 나왔고 2007년 Micro-USB가 나왔다. 모두 한 쪽 방향으로 꽂아야만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USB-C는 2014년에서야 나왔다.
  •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파하드 만주는 “USB-C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낙관하는 이유는 기술의 새로운 안정화 시대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표준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 USB-C 충전기와 케이블을 구입하면 한동안 바꿀 일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 USB-C 포트는 충전 뿐만 아니라 빠른 속도로 신호와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 어느 집이나 온갖 케이블로 가득한 서랍이 있을 것이다. RCA 케이블과 S-비디오 케이블, 디스플레이포트, HDMI, Mini HDMI, Micro HDMI에 이르기까지 케이블과 포트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케이블 상당수가 USB-C 케이블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 USB-C와 동일한 외형의 썬더볼트 포트는 모니터 전원으로 노트북을 충전하면서 동시에 비디오 신호를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 라이트닝 포트가 처음 나왔을 때 Micro-USB가 대세였는데 속도나 안정성에서 라이트닝이 훨씬 앞섰다. 일단 방향을 신경쓰지 않고 꽂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열광했다. USB-C가 자리잡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뒤였다. 한때는 “더 우아하고 약간 더 얇은 포트”였지만 지금은 라이트닝 포트가 USB-C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 아이폰15의 USB-C 포트는 20W 이상 충전기로 30분 동안 50% 충전을 지원한다. 전송 속도도 최대 10Gbps로 빨라졌다.

애플은 왜 라이트닝을 고집했던 걸까.

  • 애플이 USB-C로 간다는 건 MFi 인증과 이에 따르는 매출을 모두 포기한다는 의미다. 아이폰15에 들어가는 케이블에는 MFi 인증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 애플이 정확한 통계를 밝히지 않았지만 액세서리 관련 매출이 30억~40억 달러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었다.
  • 이미 2016년에 맥북 프로에 USB-A 대신에 USB-C 포트를 도입했고 2018년부터는 아이패드 프로부터 USB-C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2019년 아이폰 12부터는 이미 충전 어댑터도 USB-A에서 USB-C로 바뀌었고 케이블도 USB-C-라이트닝으로 바뀌었다. 호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 애플은 이미 2020년부터는 아예 충전 어댑터와 케이블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환경을 생각해서 그냥 갖고 있는 것 쓰라는 제안이지만 덕분에 2년 동안 65억 달러 이상의 이익을 챙겼다. 제작 단가를 줄이면서 액세서리를 별도로 판매할 수 있었고 운송 비용도 40% 줄였다. 탄소 배출을 줄인다는 명분도 덤으로 얻었다.

너무 늦게 도착한 USB-C.

  • 어쨌거나 환영할 일이다. 전통적인 아이폰 마니아들도 그렇고 환경 보호를 위해서도 그렇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충전하던 어댑터와 케이블로 아이폰을 충전할 수 있게 됐다.
  • 삼성전자는 미국 X(트위터) 계정에서 “At least we can C one change that’s magical(적어도 우리는 한 가지 변화를 볼 수 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See 대신에 C를 쓴 것은 신형 아이폰의 유일한 변화가 USB-C 포트 밖에 없다는 언어 유희다.
  • 삼성전자가 긴장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매시어블에 따르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 가운데 44%가 아이폰에 USB-C 포트가 있으면 갈아타겠다고 답변했다. 어쨌거나 아이폰의 단점 가운데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 애플은 잽싸게 라이트닝-USB-C 어댑터를 내놨다. 가격은 미국은 29달러, 한국에서는 4만5000원이다. 지금까지 쓰던 라이트닝 케이블 앞에 끼워서 쓸 수 있다.
  • 적당히 집 안에 굴러다니는 USB-C 케이블을 쓸 수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전문가들은 아무 케이블이나 쓰면 자칫 스마트폰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뉴욕타임스는 주유소에서 파는 5달러짜리 값싼 케이블을 사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전류를 제한하는 칩이 없는 케이블이나 충전 속도가 명확하지 않은 어댑터는 위험하다.
  • 애플은 아마도 무선 충전 맥세이프(MacSafe)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다. 멕세이프 충전기는 라이트닝 케이블보다 훨씬 더 비싸고 마진도 많다. 애플이 아예 무선 충전만 남겨놓고 충전 포트를 없애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 게다가 이미 케이블로 데이터 통신을 하는 시대가 아니다. 맥셰이프 충전기에 근거리 통신(NFC) 기능이 내장돼 있기도 하고 에어드랍도 대안이 된다.
  • 더버지는 새 아이폰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다면 썬더볼트4프로 케이블을 구입하라고 조언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케이블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는 더 길고 강력한 케이블에 투자하는 게 좋다는 이야기다. 최대 100W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이 케이블 하나로 노트북과 모니터를 연결하고 동시에 충전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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