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4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군대를 주둔하면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 직후 상황은 어떠했던가. 나이와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국경 지역 민간인들도 나서서 무장하고 싸우는 법을 익혔고, 갑자기 시작된 전쟁은 전 세계 언론에 생중계됐다.
끝내 전쟁 일으킨 러시아, 평화 빼앗긴 우크라이나
전쟁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비무장화,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인 보호,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RO·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 저지 및 중립 유지”를 요구하며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러시아의 공격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140여 곳에 이르는 지역 내 유치원과 병원, 아파트 등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 폭격을 했고, 대량 살상 무기까지 동원했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는 난민은 계속 늘고 있다. 3월 2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 인구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천만 명이 피란을 떠났다. 피란민의 90%는 여성과 어린이다. 남아 있는 이들은 화염병을 만들기도 하고, 러시아군에 직접 맞서거나 자원 봉사하며 나라를 지키려 하고 있다고 한다. 맨몸으로 러시아 탱크를 막아서고 있는 시민의 모습이 외신에 보도되면서 평화를 위한 절박한 외침이 세계 시민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국제 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경제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국제 사회에 전쟁의 정당함을 주장하면서 해외로 연결되는 인터넷 대부분을 즉각 차단했다. 정보를 통제 당한 러시아 국민 대부분이 전쟁 상황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내 언론 통제도 심각하다. 세계 언론을 통해 바로 전파된 러시아 국영TV 생방송 뉴스 도중 전쟁반대 기습시위 사건처럼 말이다. MBC 보도에 따르면 현지 언론은 기습 시위를 벌인 마리나 오브샤니코바(44세)가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으며, 러시아군과 관련한 가짜뉴스 유포 혐의를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고 한다.
공감 없는 편의적 전쟁 보도 쏟아졌다
한편 휴전국인 우리나라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던 때 20대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여야 대선후보들의 전쟁 발언은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대선 TV토론에서 “초보 정치인(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지칭)이 러시아를 자극해 전쟁이 났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당시 대선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을 비판하며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대신 사과를 하기도 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오명을 얻은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상대를 공격할 수만 있다면 어떤 기회든 놓치지 않았고, 언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보다 후보 간 치열한 ‘말 전쟁’을 경쟁적으로 보도하며 부추겼다.
언론은 그렇게 이번 전쟁을 편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장 소식을 직접 취재하는 해외 언론인들과 달리 현지인과 통신 인터뷰를 하거나, 전쟁터와는 거리가 먼 국경 지역 피란민 소식 위주로 같은 장소를 맴돌며 반복해 보도했다. 최근엔 피란민 현장 취재도 줄었고, 전쟁 소식 대부분을 몇몇 국가의 언론과 독립 언론인 또는 현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극단적일 수 있지만, CNN과 BBC, 가디언 등과 같은 해외 언론이 없었더라면 한국은 전쟁보도조차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쟁이 일어난 국가의 언어와 민족은 우리나라와 다르다. 그럼에도 인류애를 저버리고 강자가 약자의 목숨을 빼앗고, 삶의 터전을 짓밟는 행동을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 하루빨리 전쟁이 멈추길 간절히 바란다. 그런데도 한국 언론의 러시아 침공 보도는 아쉬움이 크다. 우선 여전히 볼거리 위주로 전쟁을 관망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 정치와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부 국가의 관점을 비판 없이 따라 하고 있다.
저널리즘 기본 정신을 실천할 용기
이뿐만 아니라 국민이 국제 사회를 균형 있는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현장을 직접 보고 들어서 전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기본 정신을 실천할 용기가 부재하다. 심지어 전쟁으로 물가가 급등한다는 성급한 보도가 쏟아지면서, 장기화되는 전쟁을 불편해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인류애와 공감 없는 편의적 전쟁 보도를 반복하는 언론이 높은 시민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각종 유언비어와 가짜뉴스의 심각함을 알리기 위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진심을 다해 절박하게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국회가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그의 화상 연설을 거절했을 때, 일본 국회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러시아에 압력을 가했다. 이에 대한 질문도 비판도 없는 언론이 더욱 실망스러웠다. (편집자 주: 이 글이 쓰여질 당시엔 아직 젠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거절된 상태였고, 우니라라 국회는 최근 4월 11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참고로 일본은 3월 23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정치·경제·군사 전문가들은 복잡하게 얽힌 국제 외교에서 대한민국은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언론은 세계 시민의 보편적 가치를 인지하고, 시민과 함께 시대정신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주체적 세계관을 가진 성숙된 시민이 있어야 국회와 정부가 정상 외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divide style=”2″]
[box type=”note”]
이 글은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언론포커스’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필자는 최은경 한신대학교 교수(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입니다.
[/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