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모습이 조금 안쓰럽지만, 그래도 선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서너 살 정도 아래지만, 그냥 친구라 여긴다. 소위 사회에서 만난 친구라 말을 놓았다 높였다 반말 존댓말 섞어서 쓴다. 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끔 나를 언니라고도 부르는데 어려서부터 제 누나를 언니라 불러서 누나라는 소리가 잘 안 나온다고 한다. 키도 멀대같이 큰 애가 언니~ 그러면 솔직히 좀 간지럽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그는 복지센터 같은 곳에서 컴퓨터 가르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다. 선거 시즌이나 시민단체 행사 같은 것이 있을 때 사람들은 종종 그를 소모적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또한 그것 알고 있는데 부르면 가서 도와준다. 흐물흐물한 인간이라 거절도 잘하지 못한다. 일이 끝나면 그는 도로 백수가 된다.
만나서 주로 하는 얘기는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돈을 벌어들이는 일과 거리가 멀다. 본인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을 며칠 전에는 관련 업계 종사자를 만나서 확인까지 하고 온 모양이다. 그리고 변명처럼 하는 말,
“가진 게 너무 없어서 욕심을 내면 마음이 아파, 씨~”
얜 계속 이렇게 살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위해 뭐 하나 챙기는 걸 그렇게 수줍어하는 애가 뭐든 남들과 경쟁을 통해서 얻어야 하는 세상에서 건질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경쟁력도 없는 무능한 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말해버리면 그가 가진 제일 큰 장점은 보잘 것 없는 변명거리가 되어버린다.
사람을 보는 시각도 양극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양극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적인 품성들은 제 이름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그렇고 그런 떨거지의 그것이 된다.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도 못하고,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유익한 일이면 덤벼드는 그런 성품들.
독한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은 이 아이는 아마 이변이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생긴대로 살아갈 것이다.
사는 게 힘든지 얼마 전에 종교에 귀의해 세례를 받았다 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종교적인 애가 뭘 새삼스럽게 종교냐, 했더니 그래도 위안을 받는다며 웃는다. 자고로 모든 애정사는 교회에서 시작되는 법이니 예쁜 처자 하나 구해서 연애해라, 했더니 가진 게 있어야 말이지, 그런다. 얘는 그 말을 무슨 제 주제 파악용으로 사용한다. 사회에 너무 세뇌당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