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가 이제 더 이상 쓰지 않는 표현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때 적어도 몇 번씩은 썼던 말들, ‘이쁘다’, ‘몸매가 날씬하다’, ‘키가 크다’, ‘살이 쪘다, 빠졌다’ 와 같은 표현들을 독일에 온 후 써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곳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거의’라고 이야기한 건 가끔 누군가에 대한 인상착의를 설명하기 위해 금발, 큰 키, 곱슬머리, 안경… 같은 말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 누군가의 신체적인 특징이 외모를 평가하기 위해 거론된 적은 없었다.
한국에 살 때 나는 지금보다 겉치장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외출하기 전 화장을 하고 옷을 골라 입는 데 한 시간은 걸렸다. 될 수 있으면 안경을 쓰지 않고 렌즈를 착용하려고 했고, 풀 메이크업은 아니더라도 기초화장 정도는 꼭꼭 하고 다녔다. 화장하지 않으면 “얼굴에 자신 있나 보지?” 하는, 농담을 가장한 비아냥이 날아들거나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난 뒤엔 더 신경 쓰였다. 살이 쪄서도 안 될 것 같았고, 비싼 옷은 아니더라도 깔끔하게, 뭔가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게 입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관념이 더해졌다. 결혼한 여자는 결혼 전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옷과 화장, 날씬한 몸을 잣대로 누군가의 삶의 태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논했다.
지금보다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회식 자리, 남편과 같이 먹는 야식도 문제였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정말 몸이 부은 것이기도 했다. 날씬하지 못한 몸매를 가진 내게 쏟아졌던 수많은 말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다리가 무 같네’, ‘팔뚝 봐라, 팔뚝’, ‘결혼하더니 긴장감이 풀어졌나 봐’…
‘부지런하지 못하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지 않다’는 말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멋진 옷을 입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사회에서 배웠다.
몸매나 옷차림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진 건 이곳에 오고 난 뒤부터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무척 편안해 보였다. 화장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화장하지 않은 사람이 화장한 사람보다 많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옷도 자기가 입고 싶은 데로 입는 게 보였다. 한국에선 어떤 스타일의 옷이 유행하면 거리 전체가 그 옷으로 물결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입는 옷이 유행하고, 어느 배우가 든 핸드백이 동나는 일이 이곳에서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옷을 입거나 똑같은 가방을 드는 일은 자기만의 취향과 색깔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따라서 그런 일은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옷차림만큼이나 놀라운 건 옷 사이즈였다. 옷가게에 가면 똑같은 디자인의 옷이 작은 사이즈부터 XXL사이즈까지 다양하게 있다. 몸매를 드러나게 하는 디자인이나 짧은 스커트도 큰 사이즈가 있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입고 싶은 옷을 골라 당당하게 입고 다닌다. 살이 좀 쪘다 싶으면 조금 헐렁한 디자인의 옷을 입어서 몸매를 커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패션지침 같은 게 없는 것이다.
다리가 굵건 가늘건, 몸이 마른 사람이건 뚱뚱한 사람이건, 똥배가 나온 사람이건 식스팩을 가진 사람이건 그저 자기 취향대로 입고 싶은 것을 입을 뿐이다. 옷에 의해 인간이 선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옷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서로 존중할 줄 아는 공동체.
이곳에서 옷과 가방이 사람을 삼키는 일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