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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 근처 프리미엄 아울렛에 갔는데 ‘포트메리온’ 매장 앞에서 발이 얼어붙었어요. 보타닉 가든 홈세트에 마음을 빼앗겨 꼼짝할 수가 없더라고요.

토요일 아침이면 장을 봐다가 가족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남자, 한국 아줌마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테이블웨어 브랜드 ‘포트메리온’을 위시 리스트에 넣는 남자를 만났다.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인 시도우의 김택환 부사장. 평일에는 야근 많기로 유명한 IT업계에서 일하고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며 공부도 하며 여느 남편, 아빠처럼 정신없이 보내지만, 주말에는 기꺼이 주방장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보통의 ‘요리하는 아빠들’처럼 된장찌개를 잘 끓인다거나 새우볶음밥을 맛있게 하는 정도가 아니다. 닭 가슴살로 구워 만드는 닭 요리인 치킨 밀라네즈, 칙피쿠스쿠스와 아스파라거스 볶음을 곁들인 생선까스, 또띠아에 닭가슴살과 토마토를 넣고 구워 만든 치킨 엔칠라다, 맵지 않게 해물의 풍미를 살려 만든 해물찜 등이 최근에 그가 만든 대표 메뉴이다. 주부 9단들에게도 난이도 높은 요리이다. 게다가 주말용 간식으로 블루베리 스콘이나 비스킷도 준비한다.

김택환표 레시피로 만든 요리들
김택환표 레시피로 만든 요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파에야 – 치킨 엔칠라다 – 브로콜리 감자 프리타타

한 번도 요리를 배워 본 적 없는 그가, 취미라기에는 좀 거창한 요리 솜씨를 익히게 된 건 큰딸 소민이 덕이다. 딸 셋 중에 맏이인 소민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토피가 너무 심해 밤에 자다가도 몇 번을 깨고 늘 몸을 긁적였다. 딸을 위해 공기 좋은 동네로 이사했고 먹는 것, 입는 것, 생활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펴야 했다.

소민이는 라면, 콜라 같은 음식은 먹어 본 적이 없어요. 체질상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 되고 쇠고기는 별로 좋아하지를 않아서 게, 새우, 흰살생선과 같은 해물을 주재료로 만들어야 하죠. 게다가 맵고 자극성이 강한 음식을 피하다 보니, 요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닙니다.

한정된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하는 소민이에게 늘 먹는 ‘엄마 밥’보다 좀 더 색다른 맛을 선사하고 싶었다. 영양과 맛을 다 갖춘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기 위해 앞치마를 매기 시작한 게 1년 반 정도 됐다. 소민이를 위해 그가 찾아낸 해답은 스페인, 모로코 스타일의 요리였다. 해산물을 주재료로 사용하며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그 많은 요리책 가운데 스페인 요리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 인터넷을 스승 삼고 좋은 재료와 정성을 조미료 삼아 하나하나 만들며 ‘김택환표’ 레시피를 쌓아 가고 있다.

스페인 대표 요리인 파에야를 만드는 데 육수가 필요했어요. 수산시장에서 서더리 한 마리 2,500원에 사다가 육수를 내어 만들었죠. 가족들이 모두 맛있게 먹었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로 만들다 보니 확신이 서지 않아서 유명하다는 스페인 식당을 찾아 파에야를 시켜 먹었는데…… 단언컨대, 제가 만든 게 더 맛있더라고요!

자신이 만든 요리의 맛을 자랑하는 눈빛에서 이제 그에게 요리는 딸을 위한 음식 만들기 이상의 기쁨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번, 두 번 만들다 보니 자신이 요리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이제 주말 메뉴를 정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일이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의 활력이 되고 있다는 것.

음식을 만들어 예쁘게 그릇에 담아낼 때의 그 뿌듯함은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다 같이 모여 즐겁게 음식을 나누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죠.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까지 마치고 행주까지 깨끗하게 빨아서 마무리했을 때이죠. 화룡점정의 기분이랄까요.

그는 디자인을 전공한 것이 음식의 색상을 맞추고 맛깔나게 담아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웃었다.

김택환
시도우 김택환 부사장

김택환 부사장은 다른 아빠들에게도 요리를 권한다. 백 마디 말보다도 한 접시, 정성과 맛이 살아있는 음식이 가족과 아빠를 이어주는 훌륭한 소통 도구라고 강조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한국의 아빠들에게 요리가 ‘왕따’를 극복하는 비법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리하는 아빠가 늘어 가정의 행복도가 높아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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