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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학교를 떠난 뒤에는 선생님도 교과서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 성공 스토리와 자기계발서가 쏟아지지만 어쩐지 다른 세상의 지도 같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생각에 귀 기울여 보면, 내가 찾던 해답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혹은 함께 고민하는 이웃에게서 위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 읽기’, 우리 주변 사람의 생각을 읽고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편집자)[/box]

지켜 준다더니
아껴 준다더니
– 개인정보

너를 잡은손
놓지 않을래
– 스마트폰

그는 분명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졌다’는 영국의 어떤 시인처럼, 갑자기 이름이 알려졌다. 불과 일 년 반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그러던 그가 시가 메마른 이 시대에 누구나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서울 시’로 형식도 새로운 ‘소셜’ 시를 던져주며, 이제는 작가로 자리 잡았다.

“재밌는 일을 궁리하다가”

어떻게 시를 쓰게 됐는지 궁금했다. 원래 문학에 관심이 있었을까? 전혀 다른 쪽에서 답이 날아왔다.

“원래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게임업체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조금 일하다가 기획 일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디자인과 기획을 함께했죠. 제게는 기획이 더 맞았습니다. 우연히 인터넷 기업에서 기획자로 일할 기회가 있어서 자리를 옮겼죠. 그렇게 인터넷 기획자로 일하다가, 그냥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글을 쓰게 된 거죠.”

그냥 재미로 썼단다.

“예. 뭐 재미있는 일 없나… 생각하다가… 정말 단번에 몇  편쯤, [서울 시]에 발표했던 글들을 쓰게 됐어요. 그게 2012년 7월 18일이었죠. 쓴 글들을 SNS로 친구들과 나누다 보니, 좋다고 박수 치는 사람도 생겨나고, 그러니까 또 재미있어서 쓰게 되고요. 그러다가 글 들을 묶어 시집을 내게 된 겁니다.”

시집은 전자책으로 발행했다. 전자책 업체인 리디북스에 다니고 있었으니 시집을 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작가들이 책을 낼 때처럼 출판사를 노크하지도 않았고, 혼자서 뚝딱 그림 그리고 편집해서 발행했다. 그 역시도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시집으로 유명해졌지만, 그는 ‘시인’으로 불리는 것이 어색한 모양이다.

“글을 쓰니 작가는 맞지요.” 라고 본인의 직업을 정의했다.

“더 유명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아요”

재미있어서 시를 쓰고, 재미있을 것 같아 책을 냈는데, 2012년 9월에 낸 책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고 방송에 소개되면서 차츰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외부에서 강연 요청도 많이 들어 오고 활동 들이 늘어났다. 더는 ‘직장인’으로 조직에 매어 있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두 가지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 불과 일 년 전 일이다. 그 후에는 ‘하상욱’ 이름 석 자를 걸고 하는 일들, 강연하거나 기업들과 함께 마케팅 프로젝트를 하며 바삐 보냈다.

분명 직장 생활을 하는 것보다 명예도 얻었고, 구체적으로 수입에 대해 묻지는 않았지만,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간 여유도 많아졌다. 보통 이쯤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유명세를 어떻게 더 확장하고 어떻게 더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래서, ‘하상욱’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혹은 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이번에도 예상과는 조금 다른 답이 돌아왔다.

“더 유명해지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외부의 요청을 가리고 자르면서 선택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 혹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의 선을 지키려 했습니다. 제 식대로 표현하자면 ‘재미’ 있는 일, 혹은 그러면서도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기준이라면 기준일 수 있겠네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예상하지 않은 답이 돌아왔다. 하상욱 씨는, 자신만의 기준과 선택, 살아가는 방식이 뚜렷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보통 기업에서 강의하는 경우, 신입 사원 대상의 강의보다는 임원 강의를 좀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혹은 내가 세속적이어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런데 그는 기업에서 강의할 때 신입사원처럼 젊은 층을 만나는 것이 훨씬 좋았다고 했다. 나이 지긋하신 임원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은 ‘고역’으로 느껴질 만큼 힘들었다는 것. 표정 변화와 웃음이 없는 임원 강의는 힘들어서 가능하면 거절하는 편이라고 했다.

예능 프로그램 거절하고 EBS 택하다

또 있다. 지상파 유명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한 방송 제의가 많이 왔음에도 그는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라디오 방송도 KBS와 EBS 두 곳에 기회가 있었는데 EBS를 선택했다. EBS보다는 KBS를 선택하는 것이 ‘보통’의 시각인데도 말이다.

SKT나 코카-콜라 등 유명 브랜드와 마케팅 프로젝트도 했지만, 이것 역시 많은 제안 중에서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고 너무 자주 눈에 띄어 지겨워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런 ‘신중하고도 일반적이지 않은’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개인의 브랜드라는 게 결국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흔히 일반적으로 성공하고 잘 알려지는 비법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잘 나누고 공유하는 것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법일 것 같다는 조언이었다.

‘작가 하상욱’으로서 앞으로의 목표를 붇는 질문에 대한 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흡사 연애하는 것에 비유했다. 지금은 이 일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 있기에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언젠가 지겨워지고 사랑이 식으면 다시 직장인이 되거나 다른 재미있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작가로 알려진 사람. 그러나 유명세에 취해 있기보다는 늘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고 우월감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그의 분명한 원칙이 좋았다.

그를 만난 곳은 EBS의 작은 편집실이었다. 인터뷰, 혹은 미팅을 마치고 사진을 몇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소셜 시인은 마다치 않았다. 세 장을 찍었는데 ‘요즘 피부가 안 좋아져 고민’이라며 사진을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내 아이폰에 담긴 세상의 사진을 품평하며 사진 찍을 때는 웃지 않았던 그가 활짝 웃어 보였다.

하상욱
하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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