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냐의 북라이더] 어디까지 소설이고 어디까지 경험일까. 한 소년이 편지를 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엄마에게 그리고 편지가 닿을 수 없는 사랑하는 소년에게. (⏳4분)

“엄마가 저를 처음 때리셨을 때, 분명 네 살 때였을 거예요. 손, 번쩍임, 심판. 입가의 활활 타는 느낌. 그리고 그때요. 제가 캘러헌 선생님이 하시던 대로 엄마께 읽는 걸 가르쳐드리려고 엄마의 귓가에 입을 대고, 엄마의 손에 제 손을 포갰을 때요. 우리가 드리운 그림자 밑으로 단어들이 움직였지요. 하지만 (자기 엄마를 가르치는 아들이라는) 그런 행동이 우리 사이의 위계를 뒤집었고, 더불어 우리 두 사람의 정체성, 이 나라에서 이미 엉성하게나마 줄로 매어둔 정체성을 뒤집었어요.” (16쪽)
작가의 수식어가 굉장하다.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젊은 작가’. 2016년 스물여덟에 첫 시집 ‘총상 입은 밤하늘’로 온갖 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됐고, 2019년 발표한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가 뉴욕타임스 독자 선정 ‘21세기 100대 도서’로 꼽히면서 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2025년 시사주간지 이 선정한 차세대 100인 중 한 명이니 우리는 이름을 기억해도 좋겠다. 오션 브엉.
브엉(Vuong)이라는 성은 작가가 베트남 출신이라는 흔적이다. 그는 두 살 때 미국으로 이민해 왔다. 소설 주인공 ‘리틀독’ 역시 이민 가족의 베트남 퀴어 소년이라 어디까지 소설이고 어느 정도 본인의 내밀한 경험이 덧붙여졌는지 헷갈릴 정도로 정교하다. 이 소설은 엄마에게 가닿기 위해 쓰인 편지로 끝까지 달린다는 점, 아름다운 시적 언어에 당황하다가 그 리듬에 어느새 빠져들다 보면 거대한 서사에 압도된다는 점에서 놀랍다.

가족 3대의 서사를 관통하는 시적 언어
베트남 출신으로 네일숍에서 일하는 엄마 로즈는 영어를 못한다. 리틀독은 지극히 사적인 고백을 편지에 담았지만, 엄마에게 가닿기를 바란다는 소망과 달리 수신자에게 전해질 수 없는 독백이다. 리틀독은 로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뿐 아니라 3대에 걸친 가족사를 넘나든다. 리틀독의 묘사는 아이의 렌즈를 통해 어른의 사정을 쓱 밀어넣고 시시콜콜 세밀하여 압도된다. 그의 설명은 모든 감각을 자극하는데 시각적 이미지뿐 아니라 냄새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제가 아는 것은 네일숍이 일터와 미용 작업실을 넘어,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는 곳이기도 하다는 거예요. 그중 다수는 사촌 빅터처럼, 아직 성장기에 수년간 폐로 유해가스를 들이마셔 천식이 생길 거예요. 숍은 또한 부엌이에요. 뒷방의 바닥에서는 여자들이 쪼그려 앉아 전기난로에 올려둔 퍽퍽 튀고 지글대는 커다란 웍을 들여다보고, 큰 냄비에 든 쌀국수가 그 좁고 갑갑한 공간에서 부글부글 끓고 김을 뿜어 정향과 시나몬, 생강, 박하, 카다몸 냄새가 포름알데히드와 톨루엔, 아세톤, 파인솔, 표백제 냄새와 뒤섞여요.” (113쪽)
리틀독의 외할머니 란은 베트남전쟁 시기 살아남기 위해 성 노동자가 됐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따돌림당했던 란의 딸 로즈는 열일곱 살에 리틀독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로즈는 가정폭력의 생존자였고, 언어가 통하지 않은 세상에서 버티면서 아들에게 손찌검하는 가난한 노동자다. 이민자의 아들이자 성소수자인 리틀독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것 자체가 생존 투쟁이다. 란과 로즈, 리틀독은 피해자이고 생존자이지만 작가는 서사보다 순간순간의 아름다움과 온몸을 벼리는 감각들에 주목한다. 개인의 소소한 설렘과 아픔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보편적 서사로서 인류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도 경이로운 경험이다.

리틀독이 만난 미국 소년 트레버
소년 리틀독이 담배농장에서 일하다 만난 트레버는 미국의 저소득 한부모 가정의 소년이다. 햇볕에 빨갛게 탄 목덜미의 백인들을 부르는 멸칭 ‘레드넥’의 세상은 거친 남성성이 지배한다. 소설은 영어를 모르는 엄마와 함께 트레버에게 부치지 못한 리틀독의 절절한 편지다. 두 소년의 장면은 우리가 다 아는 교감과 몸짓을 낯설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색칠한다.
북클럽에서 책을 함께 읽은 S 님은 “뜻밖의 정적과 수치, 경이와 환희, 굴욕과 구원의 줄타기인 성애를 제대로 포착한 작품”이라고 탁월한 묘사를 칭찬했는데 나는 S 님의 묘사에 매혹됐다. S 님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 나누는,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경험이 어떻게 자비와 구원의 통로가 되는지 이만큼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했는데 나는 S 님 덕분에 문학 작품에서, 혹은 우리 삶에서 성애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리틀독와 트레버의 결정적 장면은 사실 어설픈 첫 경험 이후에 벌어진 일인데 트레버의 다정한 마음과 세심한 몸짓은 배운 적 없는 본능이었을까. 미국 영화사 A24가 이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했다는데 이토록 저릿한 풍경을 어찌 담아낼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아찔하게 아름다운 리듬과 운율
소설을 번역한 김목인 님은 싱어송라이터 음악가이자 작가이기도 한데 아찔하게 아름다운 리듬과 운율을 어떻게든 전해준 건 번역가의 공이 크다. 사실 오랜만에 만난 시적 문장에 처음에는 당황했고, 중간에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달리고 나면 여운이 무척 길다.
대수롭지 않게 풀어나간 문장 속에 숨겨진 조각들을 문득 발견하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꼈다. 저마다 오롯이 다른 존재이지만 아름다움을 선언하는 용기와 수줍게 감추려 애쓰는 마음, 그저 관찰하고 기록하는 의지가 우리가 잠시 매혹적인 존재란 걸 계속 각인시킨다.
“지금껏 저는 저 스스로에게 우리가 전쟁으로부터 태어났다고 얘기했어요. 하지만 제가 틀렸었어요, 엄마. 우리는 아름다움으로부터 태어났어요. 누구도 우리를 폭력의 열매로 오인하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그 폭력, 그 열매를 관통했던 폭력은 열매를 망치는 데 실패했어요.”(310쪽)
작가 브엉은 난독증이 가족력인가 했지만 11살에 결국 읽기를 배웠고, 집안에서 처음으로 읽기와 쓰기를 배운 이가 됐다. 그리고 20대에 첫 시집으로 문단을 놀라게 했으니 인생이란! 이 소설을 본인의 북클럽에서 탐독하고 작가 인터뷰를 진행한 두아 리파의 저자 인터뷰 덧붙여본다. 두아 리파가 북클럽을 한다는 것도 놀랍고, 마치 성덕이 된 것처럼 눈을 빛내는 것도 유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