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 어디에서도 산이 보인다는 것. 저 멀리 북한산이, 도봉산이, 관악산이 성곽처럼, 병풍처럼, 보디가드처럼 버티고 있다. 내가 사는 공간을 감싸고 있는 산을 보면 막연한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어릴 적 엄마 품에 안겨 잠들었던 포근한 기억처럼.

동국여도(東國與圖) 중 도성도 (19세기 초 제작 추정)
동국여도(東國與圖) 중 도성도 (19세기 초 제작 추정)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아마 북한산일 것이다. 북한산은 멀리 경기도까지 산세가 펼쳐져 있고 서울 내에서도 구파발, 구기동, 평창동, 우이동 등 강북의 너른 지역에 두루 걸쳐 있다. 북한산은 산행을 시작하는 들머리가 서울 전역에 펼쳐져 있어서 다양한 조합의 산행 코스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높이는 최고봉이 836미터로 그리 높지 않지만, 바위산의 멋진 산세와 위용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인기가 있다. 아마 북한산에 오르고 싶은 이유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가히 서울의 ‘대표산’이라 할 수 있는 북한산의 많고 많은 봉우리 중에서 대표로 삼을 곳은 백운대다. 북한산에서 가장 높고 만경대, 인수봉과 함께 어우러져 ‘삼각산’의 자태를 뽐내는 곳이다. 북한산 등반을 처음 한다면, 백운대를 추천하고 싶다. 이곳에 오르면 몇 가지 ‘선물’도 얻을 수 있다.

최고봉을 올랐다는 만족감, 혹은 자신감

등산을 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 때문이다. 백운대 역시 결코 부족함이 없이 북한산 최고봉에 올랐다는 만족감을 준다. 백운대 정상에 서면 발아래 서울, 그 복잡한 도시가 평면으로 바닥에 깔린다. 도시 안에서 종종걸음을 칠 때는 소음에, 사람에, 차에, 번잡함이 3차원으로 우리를 에워 싸지만, 백운대에서 보는 서울 시내는 사진 한 컷으로 얌전히 놓여서 미동도 하지 않는다.

눈을 돌리면 봉우리 봉우리 연결된 산자락의 맵시가 저절로 탄성을 불러낸다. 땀 흘리며 오를 땐 머리 위에서 고고하게 내려다보던 봉우리들도 어느새 환한 미소 지으며 내 앞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반가워요!’

그래서인가, 이런 말도 생겨났다.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백운대를 오른 사람과 아직 오르지 못한 사람’.

무섭지만 멋진 산세를 배경으로  2012년 11월 3일
무섭지만 멋진 산세를 배경으로
2012년 11월 3일

깔딱고개의 환희

백운대를 오르는 코스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백운대만을 목표로 산행 코스를 잡는다면 대표적으로 두 군데를 꼽을 수 있다. 북한산성에서 오르는 것과 우이동 도선사에서 오르는 코스다. 어디를 선택하든 백운대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한 번 이상의 깔딱 고개가 있다. 숨이 턱에 차서 말도 잘 안 나올 만큼 힘든 코스가 버티고 있다. 오르막 경사도가 높아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처럼 무겁다. 계단이 이어져, 저 계단을 다 오르면 되겠지 싶지만, 계단을 오르고 나면 모퉁이 돌아 또 다른 계단이 버티고 있다.

초보자들은 대개 ‘그냥 돌아갈까’를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주문처럼 외우게 된다. 참고 올라온 게 아까워서 이를 악물 즈음, 드디어 깔딱 고개의 끝이 보이고 위문이 나타난다(위문은 백운대 바로 아래에 위치해있다). 위문에 잠시 서서 숨을 고르며 뒤돌아 보면 만만치 않은 경사도의 오르막길이 내려다보이고 아직도 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럽게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지난 몇 분간 흘린 땀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환희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유격의 진수

자, 위문까지 올랐으면 이제 백운대를 향한 길은 바위로 이어지는 본격 ‘유격 코스’가 남은 셈이다. 울퉁불퉁 험하게 솟은 바위를 위험하지 않게 오를 수 있도록 철 기둥으로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군대를 가보진 않았지만, 유격 훈련처럼 밧줄이나 철 기둥을 잡고 높고 커다란 바위를 얼마간 올라야 백운대와 만날 수 있다.

북한산 백운대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땅의 ‘아줌마’들의 힘이다. 어찌 그리 유격 코스를 한 번에 잘도 오르시는지… 남자친구의 손에 의지해 다리를 떨며 기는 듯이 바위를 오르는 젊은 여성들은 봤어도 무섭다고 엄살 부리는 ‘아줌마’는 본 적이 없다. 백운대를 오른 여성들에게는 ‘유격 훈련 완료’ 증서라도 줘야 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다.

mt_2_2
백운대에 오르는 ‘유격 코스’
2012년 11월 3일

백운대 정상의 인증샷

힘겹게 백운대에 올라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인증샷 찍기다. 태극기 아래서, 줄 서서 차례차례 인증샷을 찍지만, 배경의 사람들을 피할 방법은 없다(물론 내가 주말에만 북한산을 올랐기 때문일 테지만). 어떤 땐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마치 친구인 듯 얼굴을 나란히 하고 찍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어떠랴, 무려 “백운대”의 인증샷이면 그것으로 되었다!

백운대에서 인증샷 찍기 풍경  2013년 3월 17일
백운대에서 인증샷 찍기 풍경
2013년 3월 17일

‘백운식당’에서 도시락 까먹는 즐거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겨우 인증샷을 찍고 나면 백운대 바로 아래 너른 바위에 앉는 게 다음 순서이다. 사람들이 좁게 앉으면 아마 오십 명은 족히 앉을 만한 곳으로 난 이곳을 ‘백운식당’이라 이름 붙였다. 넓기는 하지만 바위는 기울었고 바위 끝은 벼랑이다. 그래도 삼삼오오 모여 백운대 등정의 기쁨을 나누며 가지고 온 음식을 나눠 먹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앞이 탁 트여 전망도 일품이다.

백운식당의 메뉴는 너무나 다양하다. 저마다 지고 온 배낭에서 도시락이 나오고, 막걸리가 나오고, 보온병에 담긴 커피도 나오고, 어딘 가에선 족발도 나오고 전도 나오고 과일도 쏟아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 위에서 마시는 막걸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막걸리 나누며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는 언제 들어도 활기차다.

백운대 바로 밑 바위에서 도시락 먹는 사람들  2013년 3월 17일
백운대 바로 밑 바위에서 도시락 먹는 사람들
2013년 3월 17일

▶ 등산코스
북한산의 등산코스는 너무나 다양해서 한두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지만, 다른 봉우리를 거치지 않고 백운대를 목표로 오르는 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북한산성 입구 ~ 보리사 ~ 위문 ~ 백운대(약  2시간 반)로 오르는 것과 우이동 도선사 (백운대 탐방지원센터) ~ 하루재 ~ 백운대 (약 한 시간 반) 로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 먹을 것
북한산성 입구에 ‘북한산 국립공원’의 명성(?)에 걸맞게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두부, 도토리묵, 파전, 막걸리가 일반적인 메뉴이지만 닭백숙/볶음과 바비큐 등도 있다.

▶교통
구파발역 1번 출구로 나와 704번 혹은 34번 버스를 타고 산성 입구에서 하차해 10분 정도 오르면 산성탐방 지원센터가 보인다. 오른 쪽에 노약자와 탐방객들을 위해 마련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정문 역할을 하는 ‘대서문’까지 올라가면 좀 더 편안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북한동 마을을 지나 중흥사지 앞을 거점으로 호젓한 등산로가 시작된다.

요약: 구파발역 1번 출구 – 704번, 34번 승차(10분) – 산성입구 하차(도보 10분) – 산성 매표소 – 북한산성 주차장 내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산성 입구까지 도보 이동(3분 소요) (교통 안내 참조: 한국의 산하)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