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대주주였던 엘리엇매니지먼트와 메이슨캐피털 등이 각각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중재 심판(ISDS)에서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 취소 소송을 냈는데 또 패소했다. 항소했지만 100% 패소할 게 뻔하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각각 1500억 원과 800억 원에 이자까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다.

9월20일 국회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손해배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진상 규명과 함께 책임 소재를 가리고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게 왜 중요한가.


  • 당장 국민 세금으로 수천억 원을 물어줘야 할 상황인데 아무런 설명이 없다.
  •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소멸시효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 가장 큰 피해는 국민연금이 입었다. 정부의 해명과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

왜 졌나.


  • 중재 심판에서 졌고 취소 소송에서 졌다. 각각 따로 봐야 한다.
  • 중재 심판에서 손해 배상을 하라는 결정이 나온 건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에 부당하게 압력을 넣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 중재 심판부는 한국 정부의 개입을 국가의 ‘조치(measure)’라고 판단했다.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의 판단했을 뿐 정부가 개입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근혜(당시 대통령)와 문형표(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유죄 선고를 받은 대법원 판례가 중요한 근거로 인용됐다.
  • 취소 소송에서 패소한 건 애초에 중재 심판의 취소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법원은 엘리엇에 중재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있는지를 살폈고 자격이 안 된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 항소를 해봐야 결과가 뻔할 거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애초에 취소 소송의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다. 중재 심판은 한 번으로 끝나고 취소 소송은 중재 심판의 요건을 따질 뿐 법리를 따지지 않는다.

이제 어떻게 되나.


  • 이미 끝난 게임이라고 봐야 한다. 패배를 인정하고 책임을 묻는 일이 남았다.
  • 첫째, 한국 정부는 이재용과 박근혜, 문형표, 홍완선 등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 둘째, 국민연금은 이재용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 삼성물산 합병이 2015년 7월17일이니 10년의 소멸시효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다.
  • 송기호(수륜아시아 변호사)는 “공동 불법 행위의 법리를 검토해 손해 배상을 신속하게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지 킴 간첩 조작 사건의 경우.


  • 전두환 정권 막바지인 1987년 1월의 일이다. 윤태식(사업가)이 아내를 죽인 뒤 망명 신청을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내가 간첩이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장세동(당시 안전기획부 부장) 등이 이를 납북 미수 사건으로 조작해 공안 몰이에 나섰다. 공소시효 만료를 50일 남겨 둔 2001년에서야 진실이 드러났고 정부 책임이 인정됐다.
  • 정부가 피해자 유가족에게 지연 이자를 포함해 46억 원을 지급한 뒤 윤태식과 장세동, 이해구(1차장), 이학봉(2차장) 등에게 구상권 청구 소송을 냈다.
  • 윤태식과 장세동이 각각 정부에 4억5000만 원과 9억1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 수지 킴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정부가 손해 배상을 하되,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수지 킴 사건에서 수지 킴의 유족들이 피해자였다면 이재용 뇌물 사건에서는 국민들과 국민연금이 피해자다.

한국 정부가 입은 손해는.


  • 엘리엇과 메이슨에게 물어줘야 할 손해 배상이 2300억 원(=1500억+8000억 원)인데 지연 이자가 연 복리 5%, 날마다 3000만 원 이상 늘어나는 상황이다.
  • 만약 이재용 등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손해 배상에 이자 비용과 법무 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
  • 당장 정부가 취소 소송에 항소한 상황이라 1년 이상 이자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금 이 순간도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는.


  • 엘리엇과 메이슨이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은 각각 1123만 주와 305만 주였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비밀 약정을 맺어 별도로 659억 원을 받았고 메이슨은 주식 매각으로 1735억 원을 챙겨 나갔다. 이미 실현한 이익을 빼고 중재 심판에서 인정된 손해 규모는 각각 687억 원과 376억 원이었다.
  • 결국 엘리엇의 손해액은 1주에 1만2102원인데 이 기준을 국민연금의 보유 주식 1867만 주로 환산하면 2259억 원이 된다. 메이슨 기준으로 계산하면 1주에 1만2452원, 국민연금의 손해 규모는 2306억 원이 된다. 제일 모직 지분을 통한 상쇄 효과를 고려하면 1358억 원 정도가 된다.
  • 참여연대의 계산에 따르면 이재용 일가가 3.1조~4.1조 원의 부당이득을 얻지만 국민연금은 5200~6750억 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 경제개혁연구소는 국민연금의 손해를 1138억~1658억 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 박근혜 국정 농단 특검에서도 국민연금의 손해액을 1388억 원으로 산정한 바 있다.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다.


  • 엘리엇과 메이슨뿐만 아니라 론스타 소송도 남아있다. 론스타 사건은 손해 배상 금액이 2억1650만 달러였는데 이자가 붙어 3500억 원으로 불어났다. 2년 동안 이자가 300억 원 이상 늘었다.
  • 엘리엇과 메이슨, 론스타까지 모두 더하면 한국 정부가 투자자-국가 소송을 물어야 할 손해 배상이 5800억 원(=1500억+800억+3500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입은 손해를 더하면 7000억 원이 훌쩍 넘는다. 승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취소 소송을 치르느라 지금도 대략 하루에 1억 원씩 이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 론스타 사건은 구상권을 청구할 대상이 마땅치 않지만 엘리엇+메이슨 사건은 명확하다.
  • 김종보(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는 “이재용(삼성전자 회장)은 박근혜와 문형표 등과 불법 행위를 공모한 공동 책임을 진다”고 주장했다.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다.

결론.


  • 한동훈(당시 법무부 장관)이 취소 소송을 낸 걸 두고 권태호(한겨레 논설위원)이 이렇게 평가했다. “자기 돈으로 감당해야 하는 재판이었어도 이런 결정을 내렸을지 의문이다. 만일, 진다는 걸 알고도 소송을 냈다면 ‘배임’이다.”
  • 정부가 답해야 한다. 가뜩이나 한동훈과 이복현(금융감독원 원장)은 론스타 사건 수사 검사였다. 윤석열(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장이었다. 세 사람 모두 이 사건에 책임이 없지 않다.
한동훈과 이복현은 론스타 사건 수사 검사였고, 윤석열은 국정농단 수사팀장이었다. 사진은 2024. 01. 29.
  • 남인순(민주당 의원)은 “신속하게 구상권과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해 국민들의 피해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오기형(민주당 의원)도 “국민연금이 손해 보는 결정을 하게 만든 관련자들에게 소멸시효가 지나기 전에 손해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건태(민주당 의원)는 “정확히 어떤 위반 행위로 1300억 원을 엘리엇에 지급하게 됐는지 자신만만하던 정부는 왜 패소했는지 이 손실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 김은정(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집행위원)은 “삼성물산은 정부의 신뢰를 훼손하고 자본시장의 질서를 교란했다”면서 “불법 합병에 대한 확실한 책임 추궁 없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나 기업 밸류업에 대한 논의가 모두 무의미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 송기호는 “더 늦기 전에 법무부가 세 사건을 전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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