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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중꺾정’ 칼럼

2024년 22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준연동형비례제가 유지되었지만, 위성정당이 다시 출현하고 정치개혁의 필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칼럼을 통해 유권자들의 시각에서 오늘의 정치를 비평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오늘 중꺾정 칼럼 필자는 강우진(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한국 민주주의 진로에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이제 곧 치러진다. 두루 알듯이 민주주의 체제는 주권자인 시민이 선거를 통해서 선출한 대표자에게 주권을 일정 기간(대통령 5년, 국회의원 4년) 위임하여 실현하는 체제다. 주권자인 시민과 대리인인 대표자 사이에는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가 내재하고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으로 인해서 선거에서 최적의 대리인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절반 이상 60%에 가까운 시민이 많은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 수행을 지속해서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역설을 잘 드러낸다. 또한, 최적의 대표자를 선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대표자의 수행력에 따라서 다시 선택하거나(reward) 다른 경쟁자를 선택할 수 있다(punishment). 이렇듯 민주주의 체제는 민주적 책임성(democratic accountability)을 고리로 작동한다. 이 민주적 책임성의 고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민주적’일 수 없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서로 다른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는 이중적 정당성(dual legitimacy)을 갖는 행정부(대통령)와 입법부(국회의원) 사이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반해 작동한다. 이 견제와 균형의 작동 양식에 있어서 대통령(5년 단임)과 국회의원 선거(4년)의 선거 주기의 불일치가 중요한 제도 변수다.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9번의 국회의원 선거(제13~21대)가 있었다. 9번의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적 책임성과 관련하여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예외적인 선거는 민주화 이후 처음 치러진 정초선거로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1988)다. 두 번째는 집권 직후 치러진, 이른바 허니문 선거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2008)가 있다. 세 번째는 집권 2~4년 차에 치러진 중간 평가 선거다. 2년 차에 치러진 선거로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2004)가 있고 3년 차에 치러진 선거로는 제16대(2000), 제21대(2020)가 있다. 4년차에 치러진 선거는 제15대(1996), 제20대(2016)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네 번째는 집권 5년 차 마지막 해에 치러진 정권 평가 선거로 제14대(1992)와 제19대(2012)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이준석(전 국민의힘 대표)의 인천대학교 강연 모습. 배경 발표자료에 ‘어퍼컷’ 윤석열과 ‘하이킥’ 이재명 사진이 이채롭다. 2023년 9월 7일. 이준석 인스타그램.

이번 선거 민주주의 변곡점 될 것


한국처럼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선거 주기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의 일차적인 역할은 집권당의 실적에 대한 중간 평가이다. 앞서 사례로 든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윤석열 정부 3년 차에 치러지는 중간 평가 성격의 선거다.

더구나 극심화된 정서적 양극화 속에서 편견과 혐오의 동원에 기반을 두어 역대 최저 득표율 차로 승리한 윤석열 정부 집권 후 한국 민주주의는 수평적 책임성, 법의 지배, 표현의 자유 등 민주주의 체제를 구성하는 핵심 영역에서 후퇴했다. 2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 장래와 관련하여서도 대단히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정권 심판론이 매우 높은 현재 구도에서 유권자는 22대 국의원 선거에서 어떻게 책임성을 물을 것인가이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 제도는 지역구는 단순다수대표제를 비례대표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결합한 제도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묻고자 하는 다양한 선거전략이 난무한다. 대표적으로 대선이든 국회의원 선거이든 선거 때만 되면 출몰하는 ‘몰빵론’, ‘3년은 너무 길다’를 기치로 선거를 앞두고 급하게 창당했지만 적지 않은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비조지민(비례는 조국혁신당, 지역구는 민주당) 구호가 있다. 

“3년은 너무 길다” 조국 페이스북. 2024. 3.

분노와 증오의 정치 사이클의 반복


민주주의 핵심 작동 원리는 분노와 증오에만 기반을 두어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책임을 물어서 어떻게 책임을 잘 실현하도록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촛불 광장 이후에 이러한 분노와 증오의 정치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 

보수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자. 촛불 항쟁으로 인한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문재인 정부를 경험하면서 보수는 정치적 몰락의 위기에 직면했다. 벼랑 끝에 몰린 보수 세력의 핵심 과제는 공적으로 위임한 권력을 사유화해 국가 형성과 산업화의 주역이었다는 보수의 자긍심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타락한 보수를 시대에 걸맞은 보수로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보수 정치세력은 권력화된 보수로부터 새로운 보수로 재탄생하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혐오를 극대화해 동원하는 전략을 선택했고 이를 정치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집권 보수 세력의 혼란은 ‘닥치고 정권교체’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진보의 시각에서 보자. 촛불 항쟁 과정에서 이념과 세대 지역을 넘어서 75%를 넘나드는 시민이 잠정 연합이었던 촛불 연합을 형성해서 부패한 권력의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새로운 정부가 촛불 시민의 뜻에 기반을 두어 민주적 책임성을 어떠한 정책을 통해서 실현할지는 덜 주목했다.

스스로 촛불 정부로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는 행정 권력과 180석에 달하는 의회 권력 그리고 지방 권력까지 장악했지만, 촛불 연합은 해체되었고 20대 대선에서 정권을 내주었다. 촛불 광장에서 이미 한 시인은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김해자, ‘여기가 광화문이다’)라고 외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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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모습. 놀라울 만큼 평화적이고 지속적인 촛불집회는 결국 박근혜 탄핵과 파면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 Ken Shin, CC BY NC
갈등과 합리적인 토론은 민주주의를 자라게 하지만, 증오와 혐오는 민주주의의 뿌리까지 썩게 한다.

복합 위기 속 정책적 대안 논쟁이 사라진 것이 진짜 문제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나라가 당면한 복합 위기 시대 치러지는 중대 선거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탄핵과 ‘데드덕'(dead duck; 가망 없는 사람. 레임덕보다 훨씬 더 심각한 권력 누수 현상)과 같은 주장을 넘어서 다층적 격차와 기후 위기 속에서 소수자와 청년, 서민과 노동자를 어떻게 대변하겠다는 정책적 대안을 둘러싼 논쟁이 사라진 것이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섰던 엘리자베스 워런의 주장은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그녀는 2020년 대선 출마 선언에서 카르텔화된 미국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많은 사람이 트럼프를 미국 민주주의 퇴행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트럼프만 막으면 될 것처럼 주장했다. 하지만 워런은 트럼프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미국의 편향된 시스템의 가장 극단적 최근 현상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분노와 증오에 머무르는 정치는 문제의 본질을 보는 눈을 가린다. 

2017년 1월 20일 제45대 미국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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