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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은 ‘성령 강림 사건’을 기리는 그리스도교의 축일 (출처: 작자 미상)
‘혀같이 생긴 불길’이 사람들 위에 내렸다

“누가 죽은 사건은 없어요?”
“기사로 쓰기엔 임팩트가 없어…”

아직 죽은 사람 없다. 임팩트 없는 그 곳 풍경 몇 개 옮겨 본다.  현 생활재활교사 황리예 씨 증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2010년 3월 1일부터 근무)

  • ‘오순절'(장애인 시설)에는 거주인(=장애인)이 200여 명 정도 있다.
  • 목욕은 뭐라 말할 수 없다. 23명을 알몸으로 복도에 줄 세우고, 욕실에 모아 20분에 끝낸다.
  • 남성 교사가 성인 여성 장애인 생리대를 교체하기도 한다.
  • 원생 산책은 교사 마음대로다.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건물 밖을 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 기저귀 교체가 귀찮아 음식을 적게 먹여 원생에게 변비가 생긴 것 같았다. 급식을 제대로 하니 낫더라.
  • 처음 한 대 (때리기)가 어렵지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진다. 솔직히 이렇게 해야 통제가 쉽다.
  • “욕실에서 때려. 사무실이랑 멀고 방음이 잘 돼”라고 어떤 선배 교사가 가르쳐줬다.
  • 나는 안 했다는 거 아니다. 나도 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나왔다.

고백한다, 나도 당신과 다르지 않다

지난주에 있었던 [오순절 평화의 마을 인권침해 증언대회](2013년 2월 6일 오후 2시~5시30분, 이룸센터 2층)에 다녀왔다. 취재를 위해서였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었다. 이 달 초 출간한 [망중립성을 말하다]에 함께 공저자로 참여한 장혜영(필명 ‘해멍’)은 친한 벗이다. 그녀의 여동생은 지적 장애인이고,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증언대회를 주최한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이하 ‘발바닥’)은 오래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시민단체다. 나는 ‘발바닥’이 포함된 장애인 정책 연대체 [탈시설정책위원회]에 정책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장혜영(거주인 가족), 황리예(현 생활재활교사), 신해(전 평화재활원 사무국장), 김정하(발바닥 활동가, 사회), 김재왕(희망법 변호사), 여준민(발바닥 활동가) *왼쪽부터*

이런 인연의 겹이 겹겹이 포개지지 않았다면, 고백한다, 나는 거기,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서 벌어진 장애인 인권 침해를 고발한다는, 그 증언대회에 가지 않았을 거다.

“원생이 맞아 죽거나 어디 부러지지 않으면 그걸 학대라고조차 말씀하지 않는 … 어떤 기자분께서는 거기에는 임팩트가 없기 때문에 기사를 쓸 수 없다는 말씀까지 하시고”(재활교사 황리예)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면 인권문제를 바라보지 않는 그런 것들이 만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기자들이 가끔 저희들한테 전화를 해서 얘기를 하죠. 누가 죽은 사건 없냐고. 우리사회의 인권 수준이 점점 더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들의 감수성이 왜 큰 사건들에만 충격적인 것들에만 집착을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바닥 활동가 여준민)

“누가 죽은 사건”도 아닌 “임팩트 없는” 이야기에 나 역시 큰 관심 없다. 위악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혹여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순가. 어디 장애 시설 문제가 하루이틀 일인가 말이다. 그러니 나는 무슨 특별한 도덕심,  대단한 정의감으로 이런 글 쓰고 있지 않다. 마침 발바닥과 인연이 깊고, 해멍과는 함께 책 쓴 인연이 있었을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증언 대회’라니, 그런 재미없는 곳에 내가 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김정하 활동가는 “도가니 후유증”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사람들이 웬만한 사건 아니면 꼼짝도 안 한다. 이상한 면역력이 생겨버렸다. 기성 언론에선 ‘그림이 안 나온다’는 표현도 종종 쓰나 보다. 사회복지법인(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 특히 지적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체벌과 모욕, 크고 작은 폭행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그림 안 나오는’ 인권 문제다. 하기는 무슨 연예인이 양악 수술한 소식도 아닌데 뭐. 연예인 누구든지 양악 수술 한번 했다 하면 기사가 함박눈처럼 쏟아진다. 그래서 양악수술 하나보다 싶을 정도다.

정상인이라 불리는 ‘예비’ 장애인의 이기심

나는 당신의 도덕심에 호소하고 싶지 않다. 그 말랑말랑한 양심에 의지하고 싶지 않다. 내가 무슨 계몽주의자라도 된 양 훈계하고 싶은 생각, 나에겐 없다. 그러니 나는 우리의 무뎌진 감수성을 깨워서 당신을 잠시나마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하려는 그런 노력, 미안하다, 하고 싶지 않다. 오순절 희망의 마을 전(前)학부모 대표였던 해멍은 그날의 증언을 통해 이런 취지로 말한 바 있다. 시설 교사의 “도덕심이 아니라 전문성을 신뢰했다”고. (관련 글: [나는 어떻게 시설파괴자가 되었나])

평화재활원 전(前)학부모 대표 장혜영(해멍)

나도 마찬가지다. 도덕이나 양심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한 번도 쉰 적 없던 당신의 이기심에 호소해야 하는 문제다. 언젠가 동경대 철학과에서 “왜 우리는 걸인에게 적선하는가”라는 문제를 토론했다고 한다. 어느 학생이 이렇게 답했다. “내가 혹시라도 거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동정심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확률은 낮지만 있을지 모르는 내 미래에 투자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런 이기심, 그런 사회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당신이 거지가 될 확률보다는 장애인이 될 확률이 훨씬 높고, 당신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소중한 누군가가 장애인이 될 확률은 훨씬 훨씬 더 높다. 우리가 흔히 ‘정상인’이라고 말하는 그 비장애인은 달리 말하면 ‘예비’장애인이다. 2011년 현재 전국 장애인은 2백68만 3천477 명이고, 이 중에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7만 2천351 명이다(추정치.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장애인정책과, ‘장애인실태조사’, 2011.). 당신이 만에 하나 만날지도 모를 불행에 가벼운 보험이라도 하나 들란 말이다.

(참고로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 7만여 명은 정신분열, 우울증 등의 정신 장애인은 합하지 않은 숫자다. 병원과 시설에 수용된 정신 장애인의 수는 1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자신을 ‘후발적 장애인’이라고 소개한 한 방청객의 발언 모습.
“여기에서 이야기한 건 내가 겪은 것에 절반밖에는 안 된다. 더 심하다.”

잘못된 틀짓기, “내 직장 잃을까 봐” “내 자식 쫓겨날까 봐”

흔히 ‘시설’이라고 불리는 사회복지법인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인권 침해가 널리 공론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시설 외부에도 있지만, 시설 내부에도 있다. 거기에는 기만적인 틀짓기가 존재한다. 다름 아닌 ‘시설 폐쇄’라는 틀짓기. 시설 장애인 인권 문제가 불거지면 짝말처럼 붙어 나오는 게 바로 ‘시설 폐쇄’다.

장애인 가족 대부분은 시설 도움이 없이는 해당 장애인을 책임지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이들에게 시설폐쇄는 재앙이고 날벼락이다. 그러면 시설 교사들은 어떤가. 당장 먹고 사는 수단이 사라진다는 공포보다 더 큰 공포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는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실제는 어떨까. 이런 과장된 틀짓기와는 딴판이다. 이론적으로 이사회는 시설 폐쇄를 결의할 수 있다. 시설을 운영하는 돈이 이사회에서 나오는 거 아니다. 국가 돈으로 즉,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데 이사회에서 그 돈을 포기한다고? 그런 일은 거의 없다는 게 김정하 활동가의 설명이다. 만에 하나 시설이 폐쇄되더라도 시설 거주 장애인의 권리는 가장 우선해서 보장되고, 교사의 경우에도 대부분 지자체 차원에서 고용승계가 보장된다. 그리고 시설 내 인권문제나 배임, 횡령 등으로 이사진 책임이 확정적으로 문제 되는 경우에도 지자체가 위탁경영을 외부에 맡겨 운영진만 교체하고, 시설 자체는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라진 세계: 야만을 속이지 못하면, 죽음이 우리를 삼키리라

장애인 인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말할 것도 없이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다. 증언 대회를 방청한 양양희 중랑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본인이 장애인이다. 그녀는 “구조적 해결 없이는 시설 장애인 인권 침해는 만성화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면서 “내 직장 잃을까 봐, 내 자식이 그 시설에서 쫓겨나서 내가 책임질까 봐, 이런 이야기만 하고 있어선 본질적인 해결이 어렵다”며 “우리는 동물이나 물건이 아닌데, 중증 장애인이나 지적 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축 취급 받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열변을 토했다.

YouTube 동영상

‘오순절 사건’은 보편적 인권이 우리 사회에서 처한 위기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위기는 아주 구체적이다. 인권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인권은 결국 정신이 담길 수밖에 없는 몸에 관한 근심으로 귀결된다. 몸은 인권의 최후 보루다. 당신에게 목욕을 위해 발가벗고 복도에 줄 서있으라고 한다면, 여자인 당신의 생리대를 남자 교사가 갈아준다면,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나. 그런 ‘짓’이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호칭하는 비장애인 사회에서 벌어졌다면 그 꼴을 그대로 놔뒀을 거냔 말이다.

그러니 이건 무슨 고상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고, 너무 속상해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야 정상인 그런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으로, 무시무시한 평범함으로, 그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화석처럼 굳어졌다. 우리의 시선을 잠시라도 붙잡아 새울 수 있는 건 어쩌면, ‘헉! 훈남 시설교사, 생리대를 들고… 과연?’ 따위의 미끼 제목일 뿐인지도 모른다.

이미 세계는 야만이다. 돈과 권력과 탐스럽게 꿀 흐르는 육체만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그저 야만을 애써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온갖 합리와 이성과 전통과 지혜의 표상들, 가령 법과 제도, 도덕과 관습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깊숙이 자리한 야만을 숨기고, 속인다. 하지만 그 야만을 제대로 숨기지 못하면, 속이지 못하면, 그나마 유지되는 이 세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무시무시한 동물의 왕국으로 변할 것이다.

쉽게 말하자. 이런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일은 ‘죽음’이다. 그 죽음이 만연한 황색 언론이 선정적으로 터뜨릴 수 있는 그런 자극적인 죽음은 아닐지 몰라도, 그 죽음은 인간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엄의 죽음, 인격의 죽음, 인간의 죽음이다.

그 죽음이 당신에게 묻는다.
그렇게 계속 귀막고 있을 거냐고.
그렇게 계속 침묵할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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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금번 오순절 평화의 마을 사태를 지켜보며 한 사람의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로서 많은 부분에 대해 아쉽고 착잡한 마음이 큽니다. 특히 오순절 평화의 마을은 시설 운영이 체계적이고 잘 운영된다는 주변의 칭찬이 정말 많았던 터라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큰 것 같습니다.

    기사를 보면 장애인의 편식을 지도한다는 이유로 모든 반찬을 잘게 잘라 국에 혼합해서 먹인다고 했는데, 사실 시설에는 저작이 전혀 되지 않아 잘게 잘라서 섭취시킬 수 밖에 없는 장애인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음식의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을 혼합해서 섭취시킨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러한 장애인에게 큰 덩어리의 음식물을 그냥 섭취하게 방치하는 것이 더욱 인권을 유린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저녁 7시가 되면 모든 장애인이 취침에 들어가야 하고 이는 교사가 편해지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현재 장애인복지시설의 현실을 보면 관련 종사자는 열악한 처우와 근무환경 속에서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장애인을 365일 24시간에 걸쳐 교대로 케어해야 하는 근무 상황 속에서 종사자 역시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휴식과 가정생활을 영위해야 할 권리가 있으며, 일반 가정에서와 같이 1대1 케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설마다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녁 이후의 시간에는 케어 담당 종사자의 수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강제적으로 취침을 시킨다기보다는 적은 수의 종사자가 많은 수의 장애인의 취침 준비를 시작하여 마무리가 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장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거주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유린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고 그러한 부분이 명백한 사실이라면 그에 따른 어떠한 조치에도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지만, 장애인의 특성이나 현실적 제한성 등으로 인한 부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마치 전국의 모든 장애인복지시설이 거주 장애인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처럼 상황이 비춰지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한 기사에서와 같이 장애인을 화장실로 데려가 때린다던지 욕설을 하는 등 비인격적 행위가 명백한 사실이라면 해당 직원은 응당 처벌을 받고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열악한 조건 속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맡은 바 업무를 천직이라 생각하며 일하는 대부분의 장애인복지시설과 그 종사자를 예비 범죄인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순절 평화의 마을 사태에 대한 기사를 보면, 시설 내 종사자간의 내부적 문제가 있었고 이에 연루되어 해고된 직원들에 의해 사실이 외곡되거나 부풀려 외부로 나가 시민단체를 개입시키는 등의 언론 플레이를 함으로써, 해당 시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전국의 장애인복지시설의 문제로 치부하는 양상을 보며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시설이나 시설 종사자의 문제로 보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 민간 중심의 운영체계에서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운영하는 국공립화체계로의 전환 등의 적극적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2. “이러한 문제를 시설이나 시설 종사자의 문제로 보고 탓만 할 것이 아니라 현재 민간 중심의 운영체계에서 국가가 직접 책임지고 운영하는 국공립화체계로의 전환 등의 적극적 개선 노력” 이라는 말씀이 아주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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