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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미남 BEST 3?

MBC가 제작한 아래 동영상은, ‘리우올림픽 미남 BEST 3’라는 제목을 달고 세 사람의 남성 올림픽 선수를 소개한다. 영국의 다이빙 선수 토마스 데일리, 독일의 기계체조 선수 마르셀 응우옌, 영국의 조쉬 켈리가 그들.

사실 올림픽 선수들을 굳이 외모로 평가하는 것도 그렇고, 복싱 선수를 두고 (미남이니) 얼굴은 때리지 말라는 식의 농담은 충분히 모욕적일 만 하다. 올림픽 선수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올림픽 경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말이다.

‘누나들’ 시선 신경쓰는 ‘성소수자’

하지만 이런 가십성 보도를 완전히 근절할 수도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영상의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으니, 토마스 데일리 선수를 소개하면서 “누나들이 보고 있겠지?” “누나들 지켜봐 주세요.” 등의 속마음(?)을 가진 양 묘사한 것.

토마스 데일리, 흔히 톰 데일리로 불리는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영국의 최연소 선수로 출전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나이는 열 넷. 당시 7위를 기록했던 그는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품에 안았고, 올해 리우 올림픽에서도 다시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만큼 출중한 기량을 검증받은 선수다.

그는 동메달을 획득한 다음 해인 2013년, “할 말이 있어요(Something I want to say)” 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한다. 그는 그동안 여성들을 만나오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말할 정도로 진지한 관계는 아니었으며, 올봄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정도의 남자를 만나게 되었음을 고백했다. 그렇다. 남자다.

YouTube 동영상

그는 유명 각본가이며 오스카 수상자인 더스틴 랜스 블랙과 공개적인 교제를 시작했고, 2015년에는 약혼했다. 다시 말해, 그는 동성 배우자를 두고 있다.

그런 사람이 “누나들이 보고 있겠지?” 같은 생각을 한다고? 가벼운 가십 기사에 너무 과민반응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하물며 이성애자인 기혼자를 상대로도 해선 안 될 농담이다. 농담도 때로는 확연한 모욕이 되는 법이다.

성소수자는 어떻게 지워지는가

2015년, 한국에서는 귀여운 트롤(!) 캐릭터 ‘무민’으로 유명한 작가 토베 얀손(Tove Jansson)의 성 정체성이 문득 화제가 되었다. ‘작가정신’ 출판사가 한국에 낸 ‘무민’ 동화책들에 쓰인 작가 소개가 잘못되었기 때문.

moomin 무민

1914년, 조각가 아버지와 일러스트레이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934년부터 ‘무민’ 시리즈를 발표하기 시작해 (… 중략 …) 토베 얀손은 작고 외딴 섬에 집 한 채를 짓고 홀로 살아가다 2001년 6월 27일,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가정신 출판사의 ‘작가 소개’ 중에서.

이는 명백한 오류로, 토베 얀손은 동성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라(Tuulikki Pietila)와 수십 년을 함께 했다. 많은 사람이 이를 지적하자 작가정신은 트위터 계정을 통해 다음과 같이 해명하기도 했다.

홀로’ 살아갔다는 의미는 ‘결혼하지 않았다’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까지 두루 읽힐 만한 책으로서, 일반적인 사회통념상 결혼을 하여 남편과 자식과 함께 살다 떠난 것이 아닌 정도로만 봐주세요^^*

– 작가정신 출판사의 트위터 계정을 통한 해명(?)

이는 사람들의 분노를 샀고, 무민 공식 계정에 이 내용을 제보하기도 했다. 무민 공식 계정은 토베 얀손과 툴리키 피에틸라가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툴리키를 ‘토베 얀손의 파트너'(“her partner”)로 소개하면서, 이들의 관계, 특히 토베와 툴리키가 1970년대 전 세계를 8개월간 여행하면서 했던 체험이 그의 삶과 작품 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토베 얀손(왼쪽)과 툴리키 피에틸라(오른쪽) (출처: moomin.com) https://www.moomin.com/en/tove-jansson/
토베 얀손(오른쪽)과 툴리키 피에틸라(왼쪽) (출처: moomin.com)

한때 인터넷에는 “성소수자는 당신의 가족, 이웃 친구일 수도 있다”는 홍석천 씨의 발언이 유머 자료로 취급된 적이 있다. 한때가 아니라 사실 지금도 매한가지다. 유머 취급을 받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 명백한 사실을 그저 사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뚜렷하게 밝힌 사람들조차도, 사회는 성소수자로서의 성 정체성, 성적 지향을 도려내 버린다. 약혼반지를 낀 게이 운동 선수는 누나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이빙을 하고, 수십 년을 파트너와 함께했던 레즈비언 작가는 외딴 섬에서 홀로 말년을 보낸 것으로 생애가 수정된다.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성 정체성을 ‘당연히 이성애자려니’ 하고 짐작하는 것까지야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그래도 공개적으로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당당히 밝힌 사람의 용기까지 지워버리는 건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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