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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 2: 아이폰 5, 한국 언론의 치부를 드러내다

아이폰5와 한국 언론

한국 언론이 아이폰5를 이야기하듯, 아이폰5를 통해 한국 언론을 이야기한다.

9월 13일 새벽, 한국 언론의 눈이 태평양을 넘어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집중됐다. 사상 최대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온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집중시키고 있는 바로 그 기업, 애플이 새 스마트폰 ‘아이폰 5’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언론은 앞을 다퉈 이 가장 비싼 회사의 최고 주력 제품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지독한 혹평을 통해서 말이다.

한국 언론의 냉담한 평가와 대비되는 해외 언론의 리뷰

한국 언론의 평가는 무지막지할 정도로 냉담했다. 공개가 사실상 실패(컨슈머타임즈)했으며 혁신은 없었고(동아일보, 조선비즈, 중앙일보), 심지어 스티브 잡스와 함께 죽었다(SBS CNBC)거나 잡스가 없으니 혁신도 없었다(경향신문)는 얘기까지 나왔다. 실망이라는 말은 예사였고(서울신문) 팔로어로 전락했다는 평가(국민일보)와 외국에서도 혹평을 받는다(아주경제)는 주장도 많이 나왔다. 애플은 열정을 잃어버렸다(서울경제)는 충격적인 혹평까지 들었다(한국일보)고 했다.

그러나 엠바고가 풀리면서 쏟아져나온 현지의 리뷰 기사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 시넷(CNet)이 요약 정리한 리뷰들을 살펴보면, 혹평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시넷 스스로는 높은 평점과 함께 아이폰 5를 ‘에디터의 선택(Editor’s Choice)’으로 추천했으며, 테크크런치는 “완벽에 가깝다(This is the smartphone nearly perfected)”고 평가했다. 혁신적인 변화가 없다는 데는 대부분 뜻을 같이 했지만, 한국 언론에서와 같은 혹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최고의 스마트폰 중 하나다(iPhone 5 is one of the best smartphones)”(슬래시기어), “기대를 충족시켰다(Apple has met those expectations with a gem)”(USA 투데이),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the iPhone 5 is an excellent choice)”(월트 모스버그) 등 호평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물론 단순히 양국 언론의 보도 태도가 혹평과 호평으로 갈린 것뿐이라면, 이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라마다 스마트폰에서 선호하는 기능이 다르고, 따라서 평가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갤럭시 노트 시리즈가 매달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대화면 선호’ 현상이 특히 두드러지며, 안드로이드 선호 역시 매우 뚜렷하다. 따라서 한국에서 아이폰을 혹평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관점의 차이로 보고 넘어가기에는, 한국 언론이 보인 문제는 훨씬 깊고 다양했다. 미디어오늘의 기사 “아이폰을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 기사 좀 끝까지 읽으세요”에서 볼 수 있듯, 한국 언론은 아이폰을 혹평하기 위해 외신의 맥락을 왜곡해 인용했다. 또 아이폰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달리, 국산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찬사 일색의 기사를 내놨다.

틀린 사실의 확대 재생산과 왜곡 과장도 다반사

그러나 이마저도 한국 언론이 아이폰 5를 보도하며 내보인 문제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예 틀린 사실을 쓰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예를 들어 연합뉴스, SBS, 조선비즈, 서울신문 등 여러 언론은 아이폰 5와 경쟁 스마트폰의 사양을 비교하며, 갤럭시 S3가 19시간 음성통화가 가능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갤럭시 S3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갤럭시 S3의 음성통화시간은 460분. 8시간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연합뉴스에서 처음 잘못 보도한 것을 다른 언론에서 확인 없이 인용하면서 생긴 문제로 보이는데, 연합뉴스는 다섯 시간 만에 정정된 기사를 냈지만, 주요 언론에서는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사실을 정정한 기사가 나온 이후로도 계속 잘못된 숫자를 사용했다.

한국일보가 9월 14일 내놓은 기사는 아이폰5의 프로세서가 듀얼코어에 불과하다고 보도하며, “듀얼코어와 쿼드코어는 속도가 배 이상 차이 난다”는 업계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당시 애플은 아이폰의 프로세서가 A6로 이름 붙여졌고, 속도가 전 세대(A5)에 비해 2배 빨라졌다는 내용만을 공개했을 뿐, 그것이 듀얼코어인지 쿼드코어인지는 공개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많은 IT 전문 미디어들은 애플의 새 프로세서 A6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을 때였다. 하드웨어 분야에서 뛰어난 기사를 선보여온 [아난드텍]도 그 정체에 대해 다양한 추정을 내놓았는데, 아이폰 5가 정식 발매되며 그들의 추정은 대체로 맞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듀얼코어이긴 했다. 애플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엄청나게 강력한.

[PC 매거진]은 벤치마크를 통해 아이폰 5가 현존하는 가장 빠른 스마트폰이라고 공인했고, 아난드텍 역시 전반적으로 아이폰 5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자료를 공개했다. 사실 기사 작성 당시 칩셋에 대한 정보는 고사하고 실제로 사용해 본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했던 아이폰 5에 대해 “듀얼코어와 쿼드코어는 속도가 배 이상 차이” 난다는 단순한 수식을 갖다 붙인 것은 애당초 무리수였다. 다른 조건이 유사하다면 쿼드코어가 듀얼코어보다 일반적으로 우수하지만, 그렇다고 프로세서의 성능을 단순히 코어 수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코어 수만으로 성능을 평가한 것은 서울경제디지털타임즈 등 다른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다양한 조건이 고려되어야 할 스마트폰의 성능 평가에서 한 두 가지 척도만 들이대는 것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다른 예로, 카메라폰이 한창 유행할 때부터 휴대폰의 카메라 성능은 오직 화소수만으로 판정내려져 왔는데, 최근의 스마트폰 대전에서도 여전하다. 한편 디지털타임즈의 경우 아이폰 5의 디스플레이 패널 두께가 9.3mm에서 7.6mm로 얇아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디스플레이 패널의 두께가 아니라 본체 전체의 두께다. 조금만 관심이 있었어도 하기 어려운 실수다.

심지어 ‘애플빠’라는 비하 표현까지 등장

국민일보지디넷(ZDNet), 아시아경제, 헤럴드경제 등은 아이폰 5를 보도하며 한층 더 충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사 제목과 본문에서 ‘애플빠’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빠’라는 표현은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인데다 그 유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가 많은 속어로, 과거 한 대선 주자는 비슷한 표현을 공식석상에서 사용했다가 비난을 받고 바로 사과하기도 했다. 어딘가의 무명씨나 쓸 만한 이 표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기사 본문에 오르내렸고, 특히 지디넷은 여러 기사에서 수차례에서 걸쳐 ‘애플빠’라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이스마엘 델 토로라는 이름의 애플빠”라는 지디넷 기사의 문장에서는 그 인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예의조차 보이지 않는다.

몇몇 언론은 기사에서 '애플빠' 같은 비하적인 표현까지 자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몇몇 언론은 기사에서 ‘애플빠’ 같은 비하적인 표현까지 자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되면서, 한국 언론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아이폰 5를 향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단순한 평가의 차이가 아니다. 호평 부분은 잘라내고 혹평 부분만 인용하는 일은 다반사고, 사양을 아예 틀리게 표기하거나, 그 외에도 온갖 틀린 사실들로 애플을 깎아내린다. 비하적인 표현이 지면에 등장하기까지 한다.

데자뷔… 언젠가 본듯한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

이런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비단 오늘 갑자기 나타난 것만은 아니다. 그 ‘옴니아 2’에 대해 한국 언론이 쏟아냈던 찬사 일색의 기사들은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햅틱’을 “‘진화한’ 아이폰”이라 지칭하던 낯뜨거운 기사도 있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옴니아 2는 3년 전 제품이고, 햅틱은 4년 전 제품이다. 옴니아 2를 ‘성능의 옴니아’로 지칭하고, 햅틱을 ‘진화한 아이폰’으로 지칭하던 바로 그 기사들을, 수년이 지난 오늘 다시 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다시, 아이폰 5에 대해 언론이 쏟아내고 있는 저 수많은 기사들은 수 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애플이란 소재를 다루는 한국 언론의 모습은 너무나도 부끄럽다. 수년 전부터, 그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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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뉴스 편집위원, ㅍㅍㅅㅅ 노조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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