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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함과 초침시계: 왜 선관위는 시계 설치를 거절했나

합리적인 비판일까, 맹목적인 불신일까.

선관위 사전투표함 얘기다. 한 선거 관련 단체(선거파티)에서 사전투표함의 감시를 위해 ‘초침시계’를 투표함과 함께 녹화하자고 제안했고, 선관위는 이를 거절했다. 일부 네티즌은 국민TV와 김어준의 파파파이스1가 보도한 이 사건(?)을 온라인으로 전하면서 선관위 결정을 비난하거나 옹호한다.

사전투표함과 초침시계 

사전투표는 8일과 9일 양일에 걸쳐 전국 모든 사전투표소에서 자신이 속한 선거구와 상관없이 신분증만 지참하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유권자의 편의를 고려하고, 투표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선거제도의 진일보임이 분명하다. 사전투표 시간은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이 시간에는 담당 공무원과 참관인들이 입회해 눈 뜨고 지켜본다.

문제는 사전투표가 끝난 뒤에 본 투표가 있기까지의 공백이다. 그동안 어떻게 사전투표함을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지다. 여기에 CCTV가 쓰인다. 선관위 측 설명으론, 사전투표함을 보관하는 공간에는 어떤 것(사람)도 들여놔서는 안 되고, 오직 사전투표함과 이를 녹화하는 CCTV만이 설치된다고 한다.

‘선거파티’ 서정우 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전투표함 보관소 감시활동도 나서나요? 

서정우(선거파티): 일차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것은 사전투표함이 보관되는데, 그걸 CCTV로 촬영을 한다고 했는데요. CCTV로 촬영을 한다고 해도 그 화면 자체가 정지화면이잖아요. 그러면 카메라를 잠깐 끄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무슨 작업을 하고 다시 나와도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신청했던 것이 투표함 위에다 초침이 돌아가는 시계를 하나씩 갖다 놓았으면 좋겠다고 (선관위에) 요청을 했었는데 사실 거절당한 상태입니다.

거절 사유가 서신으로 날라온 것은 아니고요. 구두로 전달해 주셨는데, 시계 안에 배터리가 있는데 그 배터리가 혹시라도 폭발할 수 있다. 저희로서는 납득이 안 가는 이야기인데 저희가 시간을 내서 다시 한 번 찾아가서 요청해 볼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배터리가 아닌 태엽 감는 시계로 가져가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민TV, [사전투표함 보관소에 시계 설치, “폭발 우려 있어서 안 돼요”(2016.04.04)]

선거파티 측의 주장을 다시 요약하면, (선관위를 신뢰할 수 없으니) 사전투표함을 녹화하는 CCTV 화면만으로는 부정 개입을 확실히 막을 수 없고, 초심이 돌아가는 시계를 보관함과 함께 놓고 촬영하자는 것이다.

쟁점과 판단 

위 국민TV 동영상에 담긴 선거파티 측 주장을 중앙선관위 측에 들려주고, 이에 관한 입장을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사건의 쟁점을 정리하고, 판단해보자.

1. ‘시계 배터리 폭발’? 이 논란은 가짜 쟁점이다 

서정우 씨의 주장은 사실일까? 현재로썬 확정할 수 없다. 선관위에 문의한 바로는 “배터리가 폭발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아래는 선관위 일문일답.

– “시계 배터리 폭발” 위험성을 언급했다는데 정말 그랬나.

선관위: 담당자에게 확인해보니 대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배터리(건전지)가 폭발한다거나 불이 난다고 표현한 적은 없다고 한다. 다만, 투표함 주변에 시계 등 외부 물건을 두는 것은 어렵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면서 화재의 위험성 등을 언급한 것이라고 한다.

“시계 배터리 폭발”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화재의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을 선관위로부터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가능성은 무시할 수 있는 가능성인가?

‘화재 가능성'(혹은 더 심하게는 ‘시계 배터리 폭발’)이 선거파티 측 주장처럼 거절 사유라면, 이것은 “납득이 안 가는 이야기”일까. 얼핏 판단하기엔, ‘납득가지 않는 일’로 판단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선거 관리는 가장 높은 수준의 보안이 필요한 중대한 업무다. 통계적으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돌발 상황까지 고려해 준비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투표함에 별도의 장치를 두었을 때 생길 수 있는 ‘화재 가능성’은, 그 가능성이 대단히 희박하더라도, 고려할 만한 위험이다.

하지만 ‘시계 배터리 폭발’이든 ‘화재 가능성’이든 이 사건의 표면적인 쟁점 혹은 가짜 쟁점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런가.

이것은 '훼이크'

이것은 ‘훼이크’

2. 선관위가 ‘초침시계’를 수용했다면? 그랬다면 그게 더 큰 문제 

만약에 선관위에서 선거파티 쪽 제안을 수용해 ‘초침시계’를 사전투표함에 올려놓고, CCTV를 녹화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훈훈하고, ‘해피’하게 이번 일이 마무리됐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파티의 제안은 (강하게 추정컨대) 선거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제안이 수용될 것으로 예상하지 않은) 정치적 퍼포먼스에 가깝다고 본다. 정말 선관위가 ‘초침시계’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선거파티가 선관위에 ‘초침시계’를 제안한 시점은 3월 29일이다.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 이틀 전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 직전에 민간단체의 제안을 선관위가 ‘아, 좋은 제안입니다. 바로 적용하겠습니다’라고 받아들였다면? 그런 선관위를 우리는 신뢰할 수 있을까? 선관위는 이런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고, 또 거절해야 마땅하다. 왜냐고? 선거라는 국가의 중대사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이렇게 답한다:

– 거절한 이유는 뭔가.

선관위: 특정 단체에서 시계를 가져다 놓는다고 해서 이를 즉각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시계’를 갖다 놓는다고 투표함을 더 안전하게 감시한다고 객관적으로 보증할 수가 없고, 모든 사람이 신뢰할만한 객관적인 방식으로 볼 수 없다.

선관위의 답변 ‘취지’를 ‘해석’해 보면, 특정한 단체의 제안을 절차적 확인 과정과 검토, 검증 과정 없이 수용하기는 어렵고, 또 이를 수용했을 때 사회적인 정치적인 당파를 달리하는 다른 시민 그룹, 혹은 그런 단체에서 이런 선관위의 업무 처리 방식을 객관적이라고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것. 내가 판단하기엔 합리적인 ‘거절 이유’다. 선거 보름 전에 민간단체가 제안한 내용이 법률에 의해 엄격하게 규정되는 선거 관리의 방식을 변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도 안 된다.

시계 시간

정치적 이벤트의 사회적 가치와 그 한계 

불과 5년도 채 되지 않은 2011년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일명 ‘선관위 디도스 사건‘을 겪은 유권자로서는 선관위가 못 미더운 게 사실이다. 경찰과 검찰은 최구식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수행비서관(공현민)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국민적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느새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선거파티 쪽의 제안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아니다. 선거파티의 제안은 차기 선거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과 검토 과정을 거쳐 진지하게 논의할만한 제안이다. 하지만 선거를 불과 보름 남겨 놓은 시점에서 선거 관리 방식의 변경을 제안하고, 그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선관위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거파티는 선거와 선관위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고, 또 관심을 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를 기획했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래서 그 행위의 사회적 가치를 넉넉히 이해할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말 작정하고 ‘초심시계’ 제안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선관위를 비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선거는 국가의 중대사고, 그 중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선관위의 관리 방식은 충분히 시간을 두고, 열린 마당에서 투명하게 논의하고, 꼼꼼하게 검토해야 마땅하다. 더불어 이 모든 과정은 법률에 엄격히 규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그동안 선관위에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나.


  1. [김어준의 파파이스#92] 배재정, 손혜원, 박주민 그리고 단일화, 1시간 50분 이후 해당 부분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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