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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이 글은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논문을 써야 할 필자가 논문은 잠시 뒤로(…)하고 이세돌과 알파고의 네 번째 대국을 보며 쓴 글입니다. (편집자)[/box]

이세돌 vs. 알파고 제4국. 이세돌이 드디어 이겼다. 그리고 내 논문은 망했다. 이게 다 알파고 때문이다. 지금 얼른 실험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걸 다시 뒤집어 봐야겠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는 성격 때문에, 이번 승리의 기쁨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바둑도 고수들한테 치이고, 인공지능 기술도 치일 거라면, 내 포지셔닝은 바로 드립이닷!

신의 한 수... 가운뎃손가락이 눈에 띄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출처: 홋타 유미 작, 오바타 타케시 그림, "히카루의 바둑", TV 도쿄, 스튜디오 피에로 제작)
신의 한 수… 가운뎃손가락이 눈에 띄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출처: 홋타 유미 작, 오바타 타케시 그림, “히카루의 바둑”, TV 도쿄, 스튜디오 피에로 제작)

이렇게 이세돌 9단이 긴장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렇게 이세돌 9단이 패배로 허우적거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이세돌 본인에게 가장 상처로 남았던 패배는 2001년 LG배 세계기왕전에서 이창호 9단에게 2:0으로 이기다가 3연패 한 기억이라고 한다.

패패승승승, 아니 승승패패패.

물론 그때야 19살 꽃다운 나이였고, 멈출 수 없는 질주를 하던 중 갑자기 당한 패배였으니 그랬겠지만, 늙어서 당하면 더 아프다. 치유도 안 된다. 그래서 이번 승리는 정말 단 꿀과 같은 승리가 아니었나 싶다.

나도 마찬가지다. 최근 커제한테 너무 당해서 상심이 컸는데... (출처: 비디오머그)
나도 마찬가지다. 최근 커제한테 너무 당해서 상심이 컸는데… (출처: 비디오머그)

이세돌 vs. 알파고 제4국 요약 

이번 대국 요약 들어간다. 성인군자야 자기가 못했던 것을 곱씹고 잘했던 건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나 같은 범인들은 원래 자기가 잘했던 것만 하이라이트로 꿈에 나오는 게 아니겠나. 곱씹자. 곱씹자. 계속 곱씹어야지.

장면 1
장면 1

초반은… 응? 2국과 정확히 똑같이 시작했다. 무슨 말인고 하면, 흑을 잡은 알파고가 2국과 비슷하게 시작하자 이세돌 9단도 똑같이 받아줬는데 그다음 수도, 또 다음 수도 알파고가 계속 2국과 똑같이 두는 것이었다!

이래서는 이세돌 9단이 유리하다. 왜냐하면, 이미 2국에 대해서는 뭐가 잘못됐는지 충분히 연구했을 것이므로 계속 똑같이 두다가 문제의 장면에서 변화를 꾀하면 되기 때문이다. 얍삽이(?)를 발견했는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백12로 빗겨갔다. 이놈의 자존심이 뭔지… 상금도 날아갔는데 최고 기사의 체면에 ‘따라 바둑’을 둘 순 없지 않은가… 이 장면, 좀 멋있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괜한 자존심 세우지 말자.

장면 2
장면 2

바둑 격언에 “두 점 머리는 두드려라”란 말이 있다. 흑29가 바로 그런 수였다. 두 점 머리 두드려 맞으면 기분이 진짜 나쁘다. 지하철 옆 사람이 ‘쩍벌’[footnote]다리를 쩍 벌리는 것.[/footnote]을 시작했는데 내가 오므려야 하는 상황이랄까?

그래서 두 점 머리 두드려 맞으면 그리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발끈해서 흑29 아래를 끊어가며 싸움에 돌입하기 마련인데 이세돌은 평소의 이세돌답지 않게 움츠렸다. 지난 3국에서 알파고 전투의 강함을 확인했기 때문일까? 이후는 아래와 같이 확실히 흑이 좋아졌다.

장면 3
장면 3

보다시피 두 점 머리 맞으면 저렇게 된다. 백은 오그라든 반면 흑의 위세가 위풍당당하다. 다시 말해 중앙이 워낙 튼튼해졌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큰 집이 날 가능성이 크고 향후 중앙 전투에서도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결국, 중앙과 상변을 깨기 위해 백이 꺼내 든 수는 백40. 위급할 때 자주 꺼내는 비책 중 하나다. 늘 좋다는 얘기는 아니고, 변화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상대방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세돌이 상대방을 흔들기 시작했다.

장면 4
장면 4

하지만 흑51로 세 점 머리를 또 두드려 맞았다.

이건 뭐랄까, 또 한 번 “눈 깔아!”를 들은 것과 같다. 실제로 이때 해설진은 흥분하며 “이번에도 참진 않겠죠?” 이랬다. 이번에도 참으면 ‘호이가 계속되어 둘리가 되는 상황'[footnote]영화 [부당거래] 중 대사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를 패러디한 유머.[/footnote]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또 참았다. 알파고와의 전투가 두려운 것인가. 이렇게 되면 비세(좋지 않은 형국)가 확실한데 왜 또 참았던 것일까. 결과는 아래와 같이 참혹하다.

장면 5
장면 5

물론 백이 군데군데 집이 많이 났긴 했다. 좌하귀, 좌변, 우하귀, 우변 모두 백 집이다. 하지만 상변의 백이 거의 잡혀있는 모습이고 흑69로 중앙을 지켜서 흑이 거대하게 집이 난 모습이다. 이대로 집을 주어서는 백의 필패. 평범하게 두면 늘 알파고가 우세를 차지한다.

승부수가 필요했다. 백은 아래와 같이 흑35와 백69 사이로 돌을 뛰어들어 삭감(상대방의 집을 줄이는 행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는 않다.

장면 6
장면 6

흑은 흑73으로 버티며 거대하게 집을 지어갔다. 이 수는 마치 ‘그래 봐야 소용없습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하는 수와 같다. 이대로 백72까지 공짜로 흑 집에 갖다 바치며 큰 집을 내어줘서는 백이 이길 수 없다. 뭔가 수를 내야 한다.

하사비스의 말에 따르면 이때 당시 알파고가 예측한 승률이 70%에 달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흑이 좋다. 만약 백이 별다른 수를 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때 터진 게 바로 아래 ‘신의 한 수’ 백78이다.

장면 7
장면 7

이 수를 두기 위해 밤에도 소쩍새는 그리 슬피 울었나 보다.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수다. 어느 정도 힘든가 하면 알파고가 수많은 경우의 수 중 검토하지 못했을 정도로 예외적인 수인 것이다…!

이세돌은 이 수를 두기 위해 7분여를 소모하며 초읽기에 몰렸다. 그만큼 승부처였고, 뭔가 수를 내지 않으면, 방법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백78은 이세돌이 말한 대로 “유일한 수”였고, 이 수로 인해 역전의 불씨를 지폈다.

백 78 "신의 한 수"에 대해 그 수밖에 없었다며 겸손해하는 이세돌 9단. 그 수밖에 없는데 딴 사람은 못 찾아내니까 신의 한 수인 거다.
백 78 “신의 한 수”에 대해 그 수밖에 없었다며 겸손해하는 이세돌 9단. 그 수밖에 없는데 딴 사람은 못 찾아내니까 신의 한 수인 거다. (출처: 비디오머그)

왜 저 수가 신의 한 수인지는 여러 가지 변화도를 다 따져보면 알 수 있으나 이곳은 ‘바알못’[footnote]바둑 알지도 못하는 사람[/footnote]을 위한 공간이므로 놔두도록 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른다는 걸 능숙하게 감춰보도록 한다.

이후 알파고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까지 검토에 없었던 백78을 보고 나니 자신의 승리 확률이 70%였던 게 갑자기 뚝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실수를 연발하는데, 아래처럼 흑79로 받아서는 중앙 백이 살아가는 수단이 생겼다. 명백한 실수다.

장면 8
장면 8
장면 9
장면 9

흑79는 잘못 대응한 수이고, 흑87은 손해수이다.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좌하의 뜬금없는 흑97. 그냥 백 98로 잡혀서는 한점을 그냥 갖다 바친 셈이다. 드디어 알파고에게 멘붕이…

이런 떡수를 보자 인간들도 당황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미 내가 분석했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지 않았나.

“떡수는 곧 사망선고다.”

나 역시도 몹시 당황했다. 하사비스도 이건 “진짜 이겨서” 알파고가 떡수를 둔 것으로 분석했고, 결국 알파고가 돌을 던졌다!

[box type=”note”]참고로 바알못은 진짜 돌을 던져서 포기하는 줄 아시는데, 그냥 돌 두 점을 반상에 올리며 포기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box]

짜릿한 1승! 중요한 장면에서 백 78의 신의 한 수에 흑이 어이없이 대응하며 명국을 졸국으로 만들어버린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인공지능을 바보로 만들었다는 데 정말 짜릿한 쾌감이 있다. 이로써 딥마인드 엔지니어들은 일요일 야근 확정.

알파고는 어떤 방법으로 돌을 던질까? 누군가는 바둑돌로 ‘die’를 쓴다고 드립을 치기도 했으나 알파고는 평범하게 팝업창을 띄우며 불계패를 선언[footnote]더 두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 스타크래프트로 말하자면 gg.[/footnote]했다.

실제로 이 알고리즘은 아자황이 구현한 것으로 아자황은 단순 바둑돌 셔틀이 아니었다. 모든 수의 예상 승률이 일정 승률 이하일 때 돌을 던진다고 한다. 즉, 알파고는 살길이 안 보였던 것이다.

벌써 누가 합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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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알파고는 화면에 띄운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알파고가 포기합니다. 백이 불계승한 결과를 게임 정보에 추가합니다.

AlphaGo Resigns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

[/box]
이쯤에서 이번 알파고 대국과 관련하여 나의 논문과 맞바꾸며 수많은 팁(?)을 날린 나의 예언 적중률을 확인해보자.

승부는 대마 사냥 혹은 사귀생 통어복

알파고는 20~30수 앞을 내다본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승부를 본다면 그 이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빠질 수 없는 쥐구멍에 몰아놓은 뒤 승부를 결행해야 한다. 여기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대마 사냥! 당연히 대마 사냥 과정은 20~30수가 넘어가기 때문에 대마 사냥을 시작할 때야 ‘아, 여기가 위험하구나!’ 하고 알게 되는데 그땐 이미 늦은 거다. 마치 내 인생이 이미 늦은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이것보다 안전한 것으로 “사귀생 통어복[footnote]通漁腹; 물고기의 배를 관통한다.[/footnote]이면 필승”이란 말이 있는데, 귀에 실리를 파고들어 포인트를 획득한 후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상대의 거대한 중앙의 집에 뛰어들면 반드시 이긴다는 뜻이다.

이번 대국은 후자에 해당했다. 왜 그렇게 이세돌 9단이 두 점 머리, 석 점 머리를 맞으면서 굴욕적으로 참았는가 하면, 초반에 싸움으로 승부를 볼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큰 집을 내준 뒤 이를 막판에 깨는 형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역시 이세돌 9단…! 혹시 제 글 본 적이라도 있으시면 제게 술 한 번…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대부분이 사실로 드러났다.

  1. 초반 포석이 공략 포인트라는 것
  2. 맛을 남겨놓는 걸 싫어한다는 것
  3. 수순의 묘를 잘 모른다는 것
  4. 알파고는 미래를 보고 둔 것이 아니라는 것
  5. 패를 잘할까 의문이라는 것
  6. 비관적인 상황에서 알파고는 자멸할 수도 있다는 것

물론 5번 패와 관련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게 아니지만[footnote]3국에서 패를 훌륭히 해냈다.[/footnote], 그때는 주로 자체 팻감[footnote]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패가 난 형태 자체에서 나오는 팻감이라는 뜻. 팻감이란 ‘한번 다른 곳에 두는 것’을 뜻한다.[/footnote]만 사용했고, 또한 패라는 것이 워낙 다양한 종류가 있으므로[footnote]꽃놀이패, 늘어진 패, 반패, 사삼패, 양패 등 다양한 패가 존재한다.[/footnote] 이걸 다 해결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제일 중요한 건 6번! 예상대로 알파고는 갑자기 승률들이 떨어지자 떡수를 두기 시작했고, ‘그냥 진 건가?’와 ‘그냥 이긴 건가?’ 사이에서 결론은 이긴 거로 판명 났다.

오는 15일 마지막 5국을 앞두고 있다. 이세돌 9단의 제안에 따라 이번엔 이세돌 9단이 흑번을 잡을 예정이다.
오는 15일 마지막 5국을 앞두고 있다. 이세돌 9단의 제안에 따라 이번엔 이세돌 9단이 흑번을 잡을 예정이다.

알파고는 왜 무너졌나

마지막으로 ‘제4국에서 알파고가 왜 무너졌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알파고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는 쉬운 장면이든 어려운 장면이든 대부분 비슷한 양의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백78에 대해서도 흑79는 한 1분쯤 생각했을까? 그런데 사실 이 장면은 사실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랜덤 서치)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모든 경우를 다 따져봐야 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레딧의 한 이용자가 분석해 올린 제4국의 이세돌과 알파고의 착수 시간 그래프.
레딧의 한 이용자가 분석해 올린 제4국의 이세돌과 알파고의 착수 시간 그래프.

하지만 알파고는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중한 상황인지 모르기에 실수로 너무나 쉽게 흑79를 뒀고, 이후 흑87 정도가 돼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백78의 가능성을 놓쳤다. 백78의 가능성을 알았더라도, 그 이후의 변화를 놓친 것이다. 이것 역시 랜덤 서치에서 오는 구멍이다.

사실 사람은 분위기란 걸 느낀다.

‘아, 지금 뭔가 상대방이 여길 깨러 들어오겠구나….’
‘지금 뭔가를 노리고 있구나….’
‘내 등짝이 서늘한 걸 보니 곧 등짝 스매시를 당하겠구나.’

그런데 알파고는 그런 위기감 없이 승률 70%에 취해 룰루랄라 바둑을 뒀고, 결국 의외의 수에 패배하고 말았다. 사실 승부처는 중앙밖에 없었는데, 그곳에 ‘더’ 집중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의외의 수’라는 것이 중요하다. 알파고는 먼저 정책망(policy network)에 의해 사람이 잘 두었을 법한 수를 추천받는데 사실 백78과 같이 끼우는 수는 잘 안 나오는 수다. 따라서 이것은 트리 서치에서 실패했다기보다 아예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사진 출처: liz west, go pieces CC BY 2.0
사진 출처: liz west, go pieces CC BY 2.0

결국, 이세돌의 일격에 알파고는 무너졌고, 알파고는 눈 버리는(?) 떡수들을 날리며 멘붕을 표현, 결국 GG를 날렸다. 이세돌 9단 축하축하!

그리고 이세돌은 마지막 대국인 5국에서 흑돌을 선택했는데, 알파고가 지금껏 백으로 둘 때 강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알파고와의 대국이 막판 집을 세는 데까지는 안 갈 가능성이 크니 중간에 끝내기엔 흑이 오히려 유리할지도 모르겠다.

바알못 님들이 이해 잘하셨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제 논문 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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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T-Robotics(t-robotics.blogspot.kr)에도 실렸습니다. 글 표제와 본문은 슬로우뉴스 편집원칙에 따라 일부 수정, 보충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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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1. 논문쓰시느라 바쁘실텐데 좋은글 감사한데요 전 정말 궁금한게 저 나중에 기보의 93 수 오른쪽옆에 앞파고가 나중에 놓게 되는데.. 정말 그게 어떤 의미가 있어서 놨을까? 하는 점이 궁금합니다. 알파고는 의도가 없이 놓지 않고 이기기 위해 놓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만약 의도가 있었다면 정말 한심한 프로그래밍인데 그럴리가 없고, 어떤 나쁜 의도(예를 들어 져주자..)를 가지고 그 자리에 놓았을 것 같다는 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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