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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type=”note”]최근 자신이 직접 겪은 데이트 폭력에 대한 폭로가 연이었고, 이에 대한 공론화가 활발합니다. 금태섭 변호사의 이 글이 폭력 없는 사회를 위한 대화와 토론에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 [/box]

예전에 책에서 남녀 사이의 폭력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서 굳이 안 쓰려고 했는데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어서 간단히 쓴다. 직업상 다른 사람들보다는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 사건을 실제로 접한 일이 많다. 이 글은 그런 경험에서 느낀 점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1. 어떤 부부싸움 사건 

90년대 중반에 검사가 되고 처음 위(?)로부터 노골적인 압력(?)을 받은 사건은 정치적인 사건도, 혹은 재벌 관련 사건도 아닌 부부싸움 사건이었다.

30대 부부였는데 평소 주사가 잦은 남편이 또다시 술에 취해 들어와서 부엌 싱크대에 소변을 봤다.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자 남편이 발로 걷어찼는데 아내가 넘어지면서 다리가 부러졌다. 전치 4주. 사건 다음날 합의가 되었고 수사기록에는 남편을 관대하게 선처해달라는 아내의 탄원서도 붙어있었다. 경찰에서는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폭력 주먹 싸움 남자 손

나는 남편을 조사해서 기소하려고 불렀다. 범행 경위도 불량했고 상해도 가볍지 않았다. 그 당시는 전치 3주 이상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되던 시절이었다. 부부 관계고 합의된 걸 감안하면 구속까지 하기는 그랬지만, 적어도 재판은 받게 해서 집행유예라도 붙여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선배 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이 자기 대학 동기라고 했다. 부부 사이에 있었던 일이고 합의도 되었는데 봐주라는 것이었다.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금 검사가 어려서 잘 모르는데 이런 사건은 원래 그러는 거야.”

기가 막혔지만 일단 조사를 해보겠다고 대답을 했다.

출석 일자에 이 남편이라는 작자는 내 사무실로 먼저 오지 않았다. 선배 검사 사무실로 먼저 찾아가 선배로 하여금 또 나에게 잘 봐달라는 전화를 하게 함으로써 다시금 나를 격분시켰다. ‘이 자식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빽을 써? 어디 한번 보자.’ 나는 일단 우리 방으로 보내라고 했다.

조금 후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 남자가 나를 찾아왔다. 평범한 회사원. 체격도 왜소했고 폭력적인 면모라고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르지도 않은 아내도 같이 왔다. 남편 옆에 서서 애절한 표정으로 앞으로 사이좋게 잘 살아갈 테니 한 번만 봐달라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러고 있으니 참 뭐라고 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머리로는 당연히 남편을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기들끼리 이미 화해해서 잘 살겠다는 부부 사이에 외부인이 간섭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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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오히려 피해자에게 독이 될 수 있어” 

그 나이 정도에서 세대가 갈렸던 것 같다.

나보다 다섯 살 정도 이상 위인 검사들은 부부 사이에 벌어진 폭력 사건이 합의가 되면 거의 무조건 기소유예를 했다. 내 나이 또래 검사들은 합의가 되고 다친 정도가 심하지 않아도 남편에게 최소한 벌금은 물렸다. 가뜩이나 성차별이 심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이혼이 어려운 상황에서 아내를 때리는 놈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들이었다.

언젠가 친한 선배에게 이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폭력을 행사했는데 부부라고 용서를 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세상이 다 그런 거라느니, 원래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느니, 뭐 그런 대답을 하면 가만히 듣고 있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선배는 뜻밖에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 금 검사,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전치 2주 타박상을 입혔는데 합의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적어도 벌금이라도 물려야 하지 않나요? 양형기준에 따르면 70만 원은 해야 하지 않나요?”

– 그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떻게 되다뇨?

– 다행히 그 부부가 이혼이라도 하면 좋은데, 보통은 아내가 이혼을 못 하지. 그러면 남편은 맨날 같은 집에서 아내를 볼 때마다, ‘저년 때문에 내가 벌금 물었네.’라는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러다 보면 또 때리지. 

“(…….)”

– 너희(내 나이 또래 검사들)는 벌금 물리고 나면 정의롭게 결정한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잊어버리겠지. 그렇지만 그게 오히려 피해자에게 독이 될 수도 있어. 마누라 때리는 놈은 대부분 그 버릇 못 고치거든. 우리가 구실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을까?

“(……)”

물론 선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반박하기도 어려웠다.

그때 남편 옆에서 선처를 호소하던 아내도 그런 심정이었을까. 헤어질 수 없는 바에야 가능한 한 후유증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걸까. 물정 모르고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처벌하려는 내가 원망스러웠을까. 혹시 그걸 트집 잡아서 또 때릴까 봐 걱정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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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0년대 이후, ‘참는 여성’은 사라져 갔다 

이런 문제는 2000년대에 접어들 때쯤 극적으로 없어졌다.

그전까지는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대개 친정 부모들이 원만하게 화해하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그런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도 친정엄마가 나서서 이혼을 시켰다. ‘마누라 때리는 놈은 그 버릇 못 고친다’는 게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이혼하는 걸 인생실패쯤으로 여기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전까지는 부부싸움 수사기록에서 “내가 사랑하는 00이에게 다시 손을 대면 전 재산을 다 주고 이혼한다.” 운운하는 각서를 보는 일이 드물지 않았는데, 이때부터는 그런 걸 보기가 어려워졌다. 여성들이 그런 종이쪽지 한 장 받고 참는 일이 없어졌던 것이다.

실제로 경험적으로 보면 가장 재범률이 높은 범죄가 가정폭력과 아동성폭행인 것 같다. 내가 성폭력범죄, 특히 아동 등 약자에 대한 성폭력범죄를 ‘성범죄’라기 보다는 ‘폭력 범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범죄의 동기가 성욕보다는 약자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싶어하는 데 있다고 보면 가정폭력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https://flic.kr/p/5UGXh3 João Carlos Magagnin, Coco Rocha, CC BY
João Carlos Magagnin, Coco Rocha, CC BY

4. 가해자를 감싸주라는 관습적 억압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다른 여러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범죄 또는 가해자-피해자의 역학관계에서 여성은 대단히 약자다. 남편이 (제3자에게) 파렴치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심지어 성추행 사건을 저질렀을 때도 아내가 나서서 피해자에게 사과하러 다니고 합의를 보려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그 반대 경우는 그보다 훨씬 적다.

피해자가 본인이든 제3자든 여성은 남성의 잘못을 감싸주고, 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을 훨씬 크게 받는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남녀관계에서 대표자를 남성으로 여기기 때문에 커플 혹은 그 커플을 둘러싼 관계(예를 들면 가족)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용석 변호사가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국제결혼이 늘었다고 하면서 “전 세계 어느 문화권이나 남자들이 자기보다 약간 계층적으로 밑에 있는 여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 것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통상적인 남녀관계에서 남성을 더 우월하게 보는 것이다.

현장에서 보면 법의 영역에서도 여성은 남자들보다 적어도 10배는 불리하고 10배는 더 참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에게 당한 범죄에 대처하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그 과정에서 실수도 많이 나온다.

Ira Gelb, CC BY ND https://flic.kr/p/9xSTCc
Ira Gelb, CC BY ND

5.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 대한 어떤 훈계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쓴 것은 다음과 같은 글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구한 날 자기를 팬 남자와 헤어진 지 3년만에 그걸 공론화하며 겨우 한다는 소리가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안 때렸길 바랍니다’인 어느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뒤늦은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픈 마음도 전혀 없다.

누군가 당신을 때리는 순간 그는 당신 혼자가 아닌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당신에겐 그걸 함부로 용서할 권리가 없다. 설사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작용으로 연인 관계 중에는 그걸 중단시키는 선택을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관계가 정리된 2012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말하자면 이번에 논란이 된 사건에서 피해자가 3년 늦게 피해사실을 공개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인데, 나는 저 글을 쓴 사람에게 두 가지를 얘기해주고 싶다.

첫째, 위에서 말한 대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피해당한 사실을 밝히기 어려운 사정이 많다는 점이다. 상당히 똑똑하고 현명한 여성들이 피해를 숨기고 살아간다. 직업상 그런 사연을 정말 많이 알고 있다.

그 여성들이 멍청하거나 도덕적 의무감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동의하기 어렵더라도 이해는 가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같은 처지에 있어 보지 않고서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된다.

Amy Clarke, CC BY https://flic.kr/p/7gFVrj
Amy Clarke, CC BY

둘째, 그럼 당신은 부당한 일을 당하거나 목격했을 때 항상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는 질문이다. 글을 쓴 사람을 찾아보니 그렇게 나이가 어린 것 같지 않으니 분명히 체벌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폭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단체기합을 받았을 때, 선배로부터 맞거나 혹은 동료가 맞는 걸 봤을 때(나는 이런 체벌 관행이 우리 사회가 폭력에 무감각해진 첫 번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매번 수사관서에 신고를 하거나 절차를 밟아서 항의했느냐는 말이다. 항상 그러지는 못했으리라는 쪽에 돈을 걸 수도 있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당연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못 했는데), 다른 사람으로부터 맞은 사람에게 “누군가 당신을 때리는 순간 그는 당신 혼자가 아닌 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고 “당신에게 그걸 용서할 권리가 없”으며, “(연애 관계가 종료된 때)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맞은 사람을 다시 때리는 폭력에 다름 아니다. 설사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안 때렸길 바랍니다.’라는 피해자의 말이 비논리적이라고 여겨지더라도 그걸 비난하는 건 맞지 않는다. 저 글을 쓴 사람의 말을 인용하면 “허구한 날” 맞은 피해자에게 조리에 맞는 말을 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것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나.

Partha S. Sahana, CC BY
Partha S. Sahana, CC BY

투사가 아니라고 피해자를 비난해선 안 된다 

피해자 주장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벌어진 사건도 마찬가지다. 어떤 분들은, 특히 성폭력 사건에서는 무조건 피해자의 말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실제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거나 허위사실로 무고하는 피해자도 많고, 그중에 여성도 많다.

그러나 폭력을 당한 것이 분명한 피해자에게 거기에 대처하는 방법이 틀렸다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신고를 늦게 했다거나 방식이 잘못되었다거나 등등) 그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그런 비난을 퍼붓는 것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고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처사다. 만약 반박하고 싶다면, 실제로 법의 영역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온종일 설명해줄 수도 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저런 글에 반박해야 하는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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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댓글

  1.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어떤 일이던 피해자 입장에선 나름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지요… 우리나라의 몇몇 사람들은 가해자 사정은 그렇게 잘 이해하면서 왜 피해자의 사정은 무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글을 동의하는 입장에서 읽어내려가다 다짜고짜 삿대질하는 사진이 나오니 좀 그렇군요. 제가 소양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사진 중 몇개는 언급한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번째, 4번째, 마지막 사진) 초반의 사진들에는 사진 출저가 달리지 않았다는 점도 위화감이 들고요…

  2. 앞으로 편집에 참조하겠습니다. ^ ^ 더불어 슬로우뉴스에서 사진에 별도의 출처 표시가 없는 것은 다음 중 하나입니다.

    1. 슬로우뉴스(필자 제공 포함)에서 직접 제작한 이미지
    2. 출처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원작자가 출처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승낙한) 이미지

    위 본문 이미지들 가운데 출처 표시가 별도로 없는 것은 위 ‘2’에 해당합니다. (사족입니다만, 저 삿대질 사진은 ‘너 자신을 알라’ 식 조크였습니다. ^ ^)

  3. 답변 감사합니다.

    그냥… 이런 일이 있구나 ~ 하고 아무 말도 안 했었는데 급 문책당하는것 같아 전체적으로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반감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찔려서 그랬나 봅니다.

    슬로우뉴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화이팅하세요~

  4. 가정 폭력을 어린 시절에 보고 겪으며 자랐는데요. 우리 사회는 아직 가정폭력 피해자를 가해자의 실수의 원인으로 보는 쓰레기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더욱 피해자들이 세상에 도움의 손길를 못내미는 것이죠. 아픈 세상입니다. 슬픈 세상이구요.

  5. 공감이 됩니다. 이 글을 읽다보니 어릴 때부터 학교 폭력을 묵인했던 지난 날들이 반성이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중 흔히 피해자를 오히려 욕하는 것들이 반복되는 일들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6. 저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훈계랍시고 말을 막 던지는 경험을 너무나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한 말이 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만의 틀에서 자신이 옳고 너도 잘못했다며 주장합니다. 단언컨데 이들도 저에겐 가해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2차 가해자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경찰, 공무원, 그런 주장을 하는 얼굴 없는 악플 등 저와 안면이 없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독하게도 제 부모님, 친구, 지인들이였습니다.

  7.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글쓴 분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정도 위안이 됩니다.

  8. 금변호사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과거 수사 경험담을 공개하시면서 이렇게 예리하게 분석해주시니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의 본질적인 측면-약자를 상대로 한 폭력-이명확히 드러납니다.
    요새 슬로우 뉴스에서 정말 좋은 기사들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슬로우 뉴스 기사에 참 기대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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